[세상 읽기]무관심의 질주
로스앤젤레스(LA)에 다녀왔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서울과 비교하면 LA 시내는 기괴할 정도로 한적했다. 텅 빈 도시를 가득 채운 것은 자동차였다. 차를 타고 시내를 지날 때마다 눈에 띈 것은 두 가지였다. ‘렌트 가능’ 푯말이 붙은 집들과 거리에 즐비한 홈리스들. 빈집이 이렇게 많은데도 홈리스가 넘쳐난다는 게 의아하면서도 약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홈리스들이 무섭다는 감정이 교차했다.
하지만 자동차를 탄다면 그들을 굳이 대면할 필요는 없다. 홈리스의 텐트 역시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이 될 뿐이다. 홈리스가 밀집한 한 동네는 방치된 장소처럼 느껴졌는데, 모두가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도시라면 어쩐지 납득할 만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말끔한 차림의 사람들이 모여 플리마켓을 열고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거주할 곳이 없는 불안과, 거주하는 곳이 위험해지는 불안 사이에서 안전한 무관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관광객인 나 역시 구별된 장소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자동차 안에서 묘한 안전감을 느꼈다.
여전히 인종차별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은 노골적인 차별보다는 세련된 분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동차는 이 세련된 분리에 속도감을 더한다. 부유한 동네와 가난한 동네는 이 속도에 비례하듯 더욱 멀찍이 떨어져 있다. 해안가의 부유한 동네에선 웃통을 벗은 채 자전거를 타던 한 흑인 청년이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위험하기보다는 다소 이상해 보였는데, 어쩌면 그저 분리된 공간을 침범한 투박한 침입자였을지 모른다.
인간이 나와 다른 모습을 한 사람에게 공포를 느끼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같은 인종과 언어, 종교, 심지어 계급에 더 큰 애착을 느끼는 정치적 부족주의 역시 그런 점에서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렇다면 부족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할 때, 우리는 무엇을 공유하는 것일까? 그것은 생존에 대한 불안과 안전에 대한 감각일 것이다. 사회계약의 신화는, 우리가 서로를 향해 “나는 무기를 내려놓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해야만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고 가르친다.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는 사람들은 과연 그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자동차의 속도가 만든 안전에 대한 감각이 총기소유를 정당화하는 미국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온한 관광객의 처지에서 일상으로 돌아와보니, 서울에서 뚜벅이로 이동하는 나도 차를 타고 질주하는 미국인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산책로를 한적하게 뛰고 있는데 앞서가던 행인이 느닷없이 고개를 돌려 가래침을 뱉는 순간, 공중도덕이 남다른 이와 완벽히 분리되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온다. 냄새나는 지하철 칸에서는 가능한 한 빨리 탈주하고 싶어진다. 자동차보다 빠른 속도로 그들을 앞질러 달아나고 싶다. 광활한 땅도, 총기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사는 한국인들은 그래서인지 아파트의 울타리를 더 견고하게 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낯설고 이상한 사람들 속에서 스마트폰만 바라본 채 서로를 외면하기로 결심한 듯한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는 이들과 닮아 있다.
경계를 만들고 삶의 속도를 차별화하면서 우리는 찰나의 안전을 얻는다. 분리를 통해 공포는 쉽게 무관심으로 바뀐다. 하지만 안전에 대한 공통의 감각을 가질 수 없을 때 공동체라는 말은 공허해진다. 서로의 삶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 사회에서 차이는 경험되기보다 경계의 대상으로 추상화된다. 넘쳐나는 홈리스 역시 주거의 문제로 이해되기보다 외부 침입자에 대한 공포로 손쉽게 치환될 수 있다. 공동체 내부의 안전이 불균등해질수록,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서로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려고 할 것이다. 이 무관심의 질주를 멈추고 서로의 차이를 대면할 수 있을까? 그때 우리는 비로소 공동체를 회복할 작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른다.

조무원 정치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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