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잃었다” 안전공업 화재가 옆 공장을 덮친 뒤

골치 아픈 이웃이었다. 지나갈 때마다 기름 냄새가 너무 심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으면 기름기가 차 창문에 눌어붙을 정도였다. 내부에서 처리가 안 되는 탓에 밖으로 유증기를 흘려보내는 것인지, 그 공장은 거의 매일 창문이 열려 있었다. 그곳에서 내뿜는 냄새와 기름기 오염 때문에 편히 창문을 열어놓지 못하고 지냈다. 구청에 여러 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화마가 삽시간에 건물을 삼켰다. 계단으로 대피하기를 포기한 공장 직원들은 연기를 뿜어내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소방 당국은 불길이 크고 빠르게 번진 원인 중 하나로 공장 내부에 퍼져 있던 유증기를 지목했다. 공장 천장에 기름방울이 맺혀 있었다는 공장 직원의 증언도 전해졌다. 이웃 공장 직원까지 이미 알고 여러 차례 민원을 넣었던 ‘위험 요소’가 사고 이후에야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지적되기 시작했다.
그 공장은 대전시 대덕구 문평동 소재 자동차 부품 공장인 주식회사 안전공업이다. 3월20일 화재로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 14명이 죽고 60명이 다쳤다. 손주환 안전공업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그날의 ‘인재’가 덮친 피해는 안전공업에만 그치지 않았다. 방치된 위험은 이웃 공장의 앞날까지 가로막았다. 안전공업 바로 옆, 대덕구 문평서로 17번길 55에 있는 전자부품 제조업체 엘엔티가 그 유탄을 맞았다.
“모든 것을 잃었다”
그날 바람은 하필 옆 공장을 향해 불고 있었다. 오후 1시17분 안전공업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불씨는 안전공업 담장을 넘어, 동쪽으로 불과 6m 떨어진 엘엔티 건물 1층으로 옮겨붙었다. 안전공업 쪽 불길이 차츰 잡히던 오후 5시 엘엔티 건물 3층 창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형우 엘엔티 대표(48)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형우 대표는 화재 경보음이 울리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3월20일 오후 1시10분께 화재 경보음이 건물 전 층에 울렸다. 경보음을 듣자마자 1층 사무실에서 뛰쳐나왔는데, 누군가 ‘벨이 너무 시끄러우니 끄고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더라. ‘손도 대지 말고 빨리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외쳤다. 밖으로 나와 보니 옆 공장인 안전공업에서 자욱한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금방 잡힐 불길이 절대 아니었다. 전 직원을 바로 퇴근시키고, 몇몇 직원과 근처에 남아 상황을 지켜봤다.”
이 대표는 2015년 전자부품 제조업체 엘엔티를 설립했다. 초창기에는 자본금이 부족해 당시 거주하던 세종시 집까지 팔아가며 사업에 매진했다. “수익 나는 족족 회사에 다 쏟아부었다.그래서 이곳에 공장을 마련할 여건을 만들 수 있었다.” 4월14일 현장에서 만난 이 대표는 기자에게 거래처를 하나하나 읊었다. “삼성 에스원, 코텍, 디엔티···.” 이 대표에게는 지난 10년의 분투를 증명하는, 성적표와 다름없는 이름들이었다.

2024년 엘엔티는 사업 확장을 위해 안전공업과 마주 보는 문평동 3층짜리 공장 건물로 이전했다. 90억원 넘게 대출을 받아 건물 전체를 매입하고 리모델링했다. “작년에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과의 계약도 따냈다”라고 말하며 이 대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해 엘엔티 매출은 약 96억원이었다. 회사는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3월20일 화재로 엘엔티는 멈춰 섰다. 불에 타지 않아 밖에서 보면 여전히 깔끔한 석고보드 외장재와 달리, 공장 내부는 아수라장이 됐다. 1층의 조립 공간은 완전히 타버렸고, 건물 내부의 패널 마감재들이 열기에 뒤틀려서 뜯겨 나갔다. 바닥과 벽면 곳곳에 새까만 그을음 자국이 새겨졌다. 고가의 정밀 설비들도 열기와 수증기를 머금고 망가졌다. 〈시사IN〉이 엘엔티 내부 CCTV를 확인한 결과, 이 건물에 불이 붙은 시점은 안전공업 화재가 발생하고 1시간이 지날 무렵이었다. 3월20일 오후 2시4분 엘엔티 공장 1층의 출하장에 불이 붙었고, 불길은 9분 뒤인 2시13분 출하장과 연결된 창고로 번졌다.
엘엔티는 이번 사고로 직원 절반을 내보내야 했다. 이형우 대표에 따르면 4월14일 현재 직원 103명 가운데 51명(용역업체를 통해 고용한 29명 포함)이 회사를 떠났다. 남은 직원 52명 중 11명은 5월 내 유급휴직을 신청할 예정이다. 회사를 떠난 직원들은 주로 생산 공정 마지막 단계에서 완제품을 확인하던 ‘출하 검사’ 인력이다. 당분간 완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 탓이다. 이 대표는 “같이 회사를 키운 사람들인데,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지 않겠나. 그게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당장 다가오는 전자부품 생산 납기를 맞춰야 한다. 화재 다음 날인 3월21일부터 이 대표는 생산을 위탁할 공장을 급하게 물색했다. “구미에 있는 다른 공장에 부탁해 긴급 생산을 시작했다. 우리 직원을 매일 구미로 파견 보내고 웃돈을 줘가며 간신히 납기를 맞추고 있다. 납기를 못 맞추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일부 업체에는 일감을 반납했다. 반납한 규모만 올해 예상 매출액의 20% 수준이다.”

불에 탄 공장을 원상복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엘엔티는 우선 그을음이 심한 안전공업 방향의 외벽을 철거하고 세척과 전기 배선 공사를 다시 할 계획이다. 고가의 설비를 새로 살 돈은 보상이 끝나야 마련될 것 같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정확한 피해액은 손해사정사를 통해 산출하고 있다. 현재로서 엘엔티 측이 추산한 피해 규모는 약 180억원(건물 70억원, 장비 50억원, 집기류 10억원, 자재 20억원, 영업손실 30억원)이다. 이 대표는 “적자를 내고 생산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멀쩡히 잘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날 수도 있다. 그 상황만은 막을 방법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엘엔티 건물 2층과 3층 일부를 임차해 사용하던 영세기업들도 이번 화재로 막심한 피해를 보았다. 화장품 제조업체 ‘또르르’는 2021년부터 엘엔티 공장 건물 2층 일부를 본사 사무실과 연구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번 화재 열기로 화장품 제조 기계가 고장 난 것은 물론이고 저장해둔 모든 원료와 부자재를 손실했다. 윤길영 또르르 대표(60)는 이렇게 말했다. “사무실에 화학물질과 말린 허브 등이 있었는데, 고열에 오래 노출돼 전부 쓸 수 없게 됐다. 계약이 ‘올스톱’돼서 앞으로 파장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또르르는) 코로나19 대유행 때 거의 죽었다가 간신히 살아났다. 작년 매출이 드디어 2019년 수준으로 회복됐는데, 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다. 코로나 때는 장비와 시설이라도 그대로 남아 있지 않았나. 이번에는 모든 것을 잃었다.”

방사선 차폐 시공 업체인 ‘램파트’는 오는 5월 신사업 성과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또르르와 같은 층에 입주한 램파트는 이번 화재로 방사선 해석 플랫폼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 5년간 쌓아온 빅데이터를 모두 잃었다. 서광식 램파트 대표(45)는 고장 난 서버를 데이터 복구 업체에 맡겨봤지만 실패했다. “당시 급하게 대피하느라 전원을 못 내리고 도망쳤다. 컴퓨터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기름기 섞인 그을음이 기판에 내려앉으면서 전기 불꽃이 튀었다. 그때 모든 부품이 타버렸다.” 램파트는 5월10일 그간 개발해온 방사선 해석 플랫폼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번 화재로 발표에 사용하려던 데이터를 모두 날렸다. 서 대표는 직원 여섯 명 중 한 명에게 사직, 한 명에게 육아휴직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건물 2층과 3층에 입주해 있던 방산업체 ‘포벨’, 미끄럼 방지(논슬립) 제품 제조업체 ‘건화’, 태양광업체 ‘에이피온’도 화재 피해를 비껴가지 못했다.
안전공업의 연락을 기다린다
이형우 엘엔티 대표는 2024년 문평동 공장으로 사옥을 옮긴 후, 안전공업 쪽에서 나는 소음·분진·악취 문제로 매해 여름 대덕구청에 민원을 넣었다고 말했다. 4월15일 대덕구청 환경과 관계자는 〈시사IN〉에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안전공업 관련 악취 문제로 총 10건, 소음 문제로 총 3건이 접수됐다”라고 설명했다. 악취 민원이 접수될 경우, 구청은 현장에 방문해 ‘공장이 오염물질 배출 허용 기준을 초과했는지’를 측정한다. 대덕구청 환경과 관계자는 “그동안 기준 초과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화재 발생 다음 주, 대전시는 안전공업 화재 피해 기업을 모아 간담회를 열었다. 안전공업 협력업체, 엘엔티, 엘엔티 건물에 입주한 기업 등이 이 자리에 참석해 피해 상황을 공유했다. 4월7일 대전시는 엘엔티 건물 입주 영세기업을 한 번 더 모았다. 이 자리에서 대전신용보증재단 관계자는 피해 기업에 업체당 최대 2억원을 2년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자와 보증료는 대전시가 대신 부담하는 제도였지만, 신청 기업의 신용점수가 일정 이상이어야 했다. 이에 관해 또르르 측은 “신용점수가 낮은 기업은 있어도 사용할 수 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피해 기업들은 신속한 사고 원인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야 본격적인 배상 절차가 시작될 수 있어서다. 안전공업과의 소통 창구를 마련해달라는 목소리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장재화 건화 대표(43)는 “이자 보전, 보증료 면제도 감사하지만,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안전공업)를 빼고 피해자와 관공서만 모여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사고 원인이 빠르게 밝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살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서광식 램파트 대표 역시 “현재 안전공업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없어 답답하다. 대전시에든 소방에든 이번 사고 조사가 어떻게 진행 중인지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형우 엘엔티 대표는 화재 다음 날 안전공업 측 관계자라고 밝힌 한 여성이 공장을 방문해 사과한 뒤로는 접점이 없었다고 말했다. 램파트, 건화, 또르르 등은 안전공업의 연락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시사IN〉은 피해 기업 배상 방안을 묻기 위해 안전공업이 선임한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연락했으나,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화재 2주 후인 4월3일 엘엔티는 변호사를 통해 안전공업에 협조 요청을 담은 내용증명을 보냈다. 본격적인 법적 절차에 돌입하기 앞서, 상호 협의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엘엔티 측 박재형 변호사(법무법인 LKB평산)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우선 손해 액수를 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공장에 보관하고 있던 부품 물량을 정확히 산출하고, 얼마만큼 손해가 발생했는지, 또 엘엔티가 납기를 지키기 위해 들인 별도의 비용이 얼마인지 입증이 필요하다. 만약 안전공업이 협의에 응하지 않으면 소를 제기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실제 소송으로 다투게 된다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2~3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사 위기인 피해 기업들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옆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엘엔티 건물에는 여전히 탄내가 가득했다.

대전/글 문준영 기자·사진 조남진 기자 jun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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