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에어버스·보잉에 핵심부품 공급… 날개끝서 피워낸 '연료혁신'
샤크렛 5000호기 달성… 글로벌 공급망 핵심 파트너 위상 굳혀

대한항공은 지난 23일 부산 강서구 대한항공 테크센터에서 'A320 샤크렛 5000호기 납품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브누아 슐츠 에어버스 최고 조달 책임자(CPO)도 참석해 대한항공이 개발한 항공기 구조물과 생산 시설을 둘러보며 기술력과 역량을 직접 확인했다.
여객·화물 운송 사업을 주력으로 해온 대한항공이 이 같은 성과를 달성한 배경에는 1976년 설립된 부산 테크센터가 있다. 대지 총 73만㎡, 건물면적 31만㎡ 규모로 항공기 부품 제작, 정비, 개조부터 설계와 개발에 이르는 항공우주산업분야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곳이다. 1970년대 항공기 국산화를 통한 자주국방 실현을 위해 설립된 이곳이 국내 최초·최대 항공기 정비·제조 거점이 됐다. 현재는 항공기 정비·수리(MRO), 부품 제작을 비롯해 무인기·발사체 제조까지 역량을 확대했다. 50년간 축적된 경험이 샤크렛 5000호기 달성이라는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유종석 대한항공 안전보건 총괄 겸 오퍼레이션 부문 부사장은 축사에서 "오늘의 5000호기는 단순한 생산 실적을 넘어 대한항공이 글로벌 항공우주 산업의 핵심 파트너로서 역량을 입증한 것"이라고 했다. 여객·화물 운송에서 항공기 부품 제작까지 사업 영역을 성공적으로 넓혔다는 평가다.
특히 연료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샤크렛을 대한항공이 독점 제작·공급하는 점은 글로벌 부품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 세계 항공업계가 탄소 중립이라는 과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샤크렛은 미래 수익성을 견인하는 성장 동력이 될 전망이다.
날개 끝에서 피어난 혁신 '샤크렛'
이번 성과는 대한항공이 10년 넘게 공들여온 회심의 부품이다. 대한항공은 2010년 에어버스 A320 시리즈 성능 개선 사업 국제 입찰에서 일본, 프랑스, 독일 기업을 제치고 샤크렛 제작사로 최종 선정됐다.
샤크렛은 A320 항공기 날개 끝에 부착하는 높이 2.4m의 L자형 구조물이다. 와류(Vortex)를 방지해 공기 역학 성능을 대폭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와류는 날개 위와 아래의 기압 차이로 인해 생기는 회오리바람이다. 와류가 클수록 비행기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연료를 더 많이 쓰게 된다. 그런데 날개 끝을 샤크렛처럼 크게 구부리면 와류가 줄어 회오리바람을 약화시킬 수 있다.
와류가 줄어든 만큼 연료 소비량도 줄어든다. 항공기 날개에 샤크렛을 적용하면 연료 효율을 약 4%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곧바로 운영비 절감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연료비로 1000억원을 쓰는 기종이 있다면 4% 절감만으로 연간 40억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수십대에서 수백대 비행기를 운영하는 항공사가 전체 기단에 샤크렛을 적용하면 매년 수천억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탄소배출 저감 효과도 뚜렷하다. 샤크렛 한 쌍이 줄이는 탄소 배출량은 연간 700~1000톤 정도로 알려져 있다. 소나무 약 10만~15만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양과 맞먹는 수준이다.
항속 거리도 증가한다. 기존에는 연료가 부족해 경유해야 했던 도시까지 직항으로 도달할 수 있다. 줄어든 연료 무게만큼 화물을 더 실어 수익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보잉과 함께 구축해온 글로벌 포트폴리오
사실 대한항공의 부품 사업 포트폴리오는 에어버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양대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으로까지 넓게 뻗어 있다.
1986년 보잉 747 날개 구조물 제작을 시작으로 보잉 717·737·767·777·747-8 등 다양한 기종의 항공기 부품을 제작해왔다. 2004년에는 보잉과 보잉 787 드림라이너 구조물 국제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하면서 단순 하청에서 글로벌 개발 파트너로 지위가 격상했다. 주어진 설계도면에 따라 부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보잉과 협력해 설계와 공법 개발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부품 개발에 있어 대한항공이 원천기술을 축적하게 된 배경이다.
대한항공은 현재 보잉 787 드림라이너의 후방 동체와 레이키드 윙팁, 플랩 서포트 페어링, 애프터 바디 등 핵심 구조물 제작을 맡고 있다. 구조, 공력, 복합재 기술이 동시에 요구되는 고난이도 영역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보잉에 납품하는 부품 가운데 연비 개선의 핵심으로 꼽히는 것은 레이키드 윙팁이다. 샤크렛처럼 날개 끝에서 발생하는 와류를 줄여 연료 소모를 감소시킨다. 곡선을 이루며 위로 꺾인 형태의 샤크렛과 달리 날개 끝이 수평에 가깝게 유지된 상태에서 뒤쪽으로 길게 뻗은 형태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레이키드 윙팁은 보잉 787 드림라이너와 같은 장거리 노선용 대형기에 적용된다. 고고도 순항에는 위로 꺾인 형태보다 날개 끝이 뒤쪽으로 길게 연장되는 구조가 공기 저항을 줄이는 데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항공은 2005년 보잉과 레이키드 윙팁 공급 계약을 체결한 이후 현재까지 해당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쌓아온 윙팁 제작 경험과 노하우가 샤크렛 개발·생산 역량으로 이어지며 윙팁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반이 됐다.
이 외에도 비행기 동체를 이루는 주요 구조물과 후방 랜딩기어 수용부, 애프터 바디 등 다양한 항공기 부품을 제작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대체불가 파트너 되려면?
항공기 제조업은 수많은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산업으로 한 기업이 모든 부품을 독점 생산하기보다는 전 세계 여러 제조사가 각 부품을 분담해 생산하고 보잉, 에어버스 등 완제기 제조사에 공급하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는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부품사들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특히 특화된 기술력을 보유한 부품사는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최근 항공업계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항공기 성능 개선에 사활을 걸고 있어 샤크렛, 레이키드 윙팁처럼 독보적인 필살기를 가진 부품사일수록 공급망 속에서 갑(甲)에 가까운 을(乙)로서 높은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
대한항공은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항공기 산업에서 이미 탄탄한 인프라와 신뢰를 구축한 만큼 앞으로 가속화될 친환경 항공기 시대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주요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설계 권한을 보잉, 에어버스 등 완제기 업체가 쥐고 있어 이들이 제시한 조건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한계가 있다.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완제기 업체가 채택하지 않으면 빛을 볼 수 없다. 게다가 중국 등 후발주자가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며 시장 진입을 가속화하고 있는 만큼 초격차를 확보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탄소중립이 전 세계 항공업계의 주요 과제로 부상한 가운데 연료 효율을 개선하는 고부가가치 부품 분야에서 기술을 선점하는 것이 해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료 효율은 수익성과 직결될 뿐만 아니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규정에 따라 탄소 배출량이 기준치를 초과할 경우 배출권 구매 등 막대한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샤크렛, 레이키드 윙팁을 잇는 혁신적인 부품의 연구·개발이 필요한 이유다.
검증된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망 내 신뢰성과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항공산업은 가격 경쟁력보다는 안전과 신뢰에 훨씬 높은 점수를 주는 신뢰 기반 산업이기 때문이다.
완제기 업체들이 주도하는 공급망 질서 속에서 대한항공이 대체불가능한 파트너로서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항공기 제조사들이 먼저 찾을 수밖에 없는 독보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