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군부인’ 작가는?…신인 전면에 내세우는 K드라마 [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한경비즈니스외고 2026. 4. 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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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의 한 장면 / MBC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은 지난 4월 10일 첫 방영되기 전부터 많은 화제가 됐다. 아이유, 변우석 등 스타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큰 관심이 쏟아졌다. 이 작품은 입헌군주제인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삼은 로맨스물로 화려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제작비는 3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걸맞게 방영 전부터 광고 완판 기록을 세웠으며 타임지가 꼽은 ‘2026년 가장 기대되는 한국 드라마’에도 꼽혔다. 첫 방영 이후에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4회 시청률은 13.8%까지 치솟으며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국내외에서 디즈니플러스를 통해서도 공개되고 있는데 공개 5일 만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한국 시리즈로 등극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쓴 작가는 누구일까? 시청자 가운데는 드라마 시작 전에 나오는 이 문구를 눈여겨본 이들이 꽤 있을 것 같다. 여기엔 이런 문구가 나온다. ‘MBC 드라마 극본공모 당선작’. 드라마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유지원 작가의 데뷔작이다. 신인 작가의 작품은 주로 단편 등 작은 규모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작품은 베테랑급 작가들의 드라마처럼 제작됐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고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21세기 대군부인’뿐만 아니라 최근 신인 작가들의 손에서 K드라마 주요작이 잇달아 탄생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레이디 두아’와 ‘월간 남친’, KBS의 ‘은애하는 도적님아’ 등도 신인 작가가 썼다. 그럼에도 국내외에서 흥행에 성공하거나 화제가 됐다. 오랜 시간 국내 드라마 시장은 베테랑 작가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신인 작가들은 오랜 시간 보조 작가 등으로 지내며 언젠가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젠 데뷔작과 함께 단숨에 무대 중간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심지어 매일같이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서도 당당히 살아남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K드라마 열풍에도 내부적으로는 정체됐던 국내 드라마 시장이 새로운 ‘스토리텔러’들의 덕분에 활기가 돌고 있다.

 웹툰 원작 말고 순수 창작극으로 승부

이야기의 시작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작품들과 확연히 차별화되는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간혹 독특하고 창의적인 드라마가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원작’을 검색하곤 한다. 알고 보면 드라마의 원작이 따로 있고 그 원작은 주로 웹툰이나 웹소설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존 드라마 시장에도 뛰어난 필력과 탄탄한 구성을 자랑하는 작가들은 많다. 하지만 참신함, 독창성은 또 다른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갈증을 느꼈던 드라마 업계는 결국 자유로운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웹툰 또는 웹소설을 원작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젠 신인 작가들을 적극 활용하여 순수 창작극으로 진검승부를 벌이기 시작했다. 기존엔 신인 작가가 중급 이상 규모의 작품을 선보이기 어려웠다. 그런데 분위기가 바뀌어 데뷔작부터 대작으로 기획되곤 한다. 해당 방송사나 OTT는 이들의 작품을 대표 콘텐츠로 삼고 있는 것이다. 완성도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원석 같은 아이디어, 차별화된 소재로 승부수를 띄운 셈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신인 작가의 드라마에선 보기 어려웠던 스타 배우들도 등장하게 됐다. 방송 전부터 화제성이 높아지니 성공 확률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됐다.

다소 부족한 완성도는 이미 시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PD와 스태프들이 함께 채워 나가는 경우가 많다. ‘21세기 대군부인’엔 ‘김비서가 왜 그럴까’, ‘환혼’ 등을 연출한 박준화 PD가 참여했다. ‘레이디 두아’엔 ‘인간수업’, ‘마이 네임’ 등을 만든 김진민 PD가 연출을 맡았다.

한 명의 신인 작가가 오롯이 집필의 부담을 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 집필’의 형식을 통해 여러 명이 함께 작업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에 유플러스TV, 디즈니플러스 등에서 방영됐던 ‘메스를 든 사냥꾼’은 조한영, 박현신, 홍연이, 진세혁 신인 작가 네 명이 같이 쓴 작품이다. 이는 미국 등 해외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신인 작가로부터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집단 창작을 통해 위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어 각광받고 있다.

 새로운 스토리텔러를 찾아라!

신인 작가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 배경은 드라마 산업 구조 자체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방송 채널이 늘어나고 OTT 등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산업은 대대적으로 재편됐다. 스타 작가를 중심으로 작품을 편성해서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판이 깔린 것이다. 특히 글로벌 OTT는 참신하고 파격적인 콘셉트를 가진 작품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신인 작가에게 훨씬 많은 기회가 돌아가게 됐다. 글로벌 OTT는 신인 작가 데뷔작임에도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하고 베테랑 감독과 스타 배우를 연결해 줬다. 이 같은 움직임은 방송 채널과 다른 OTT에도 확산됐다.

대형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드라마 제작이 이뤄지고 있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스튜디오가 직접 IP를 기획하고 소유하면서 개별 작가의 역량 못지않게 스튜디오 전체의 기획력이 드라마 성패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으로 떠올랐다. 신인 작가로부터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발굴하기만 하면 이후엔 기획 PD 등 여러 전문가가 함께 모여 아이디어를 어떻게 보완해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발전시키는 시스템도 갖추게 됐다.

갈수록 신인 작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도 늘어나고 있다. MBC는 ‘21세기 대군부인’ 제작을 계기로 극본 공모전 규모를 더욱 키웠다. 기존에 선정하던 최우수상(상금 5000만원), 우수상(상금 3000만원)에 더해 올해엔 대상(상금 1억원)을 신설했다. 작업 공간과 창작 지원금도 별도 제공하고 현장 견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CJ ENM은 신인 작가와 작곡가를 지원하는 ‘오펜’ 사업을 2016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이 사업을 통해 276명의 작가와 115명의 작곡가가 배출됐다. 작품으로는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신하은 작가·1기), ‘슈룹(박바라 작가·3기)’ 등이 오펜에서 탄생했다. 오펜 역시 매년 공모를 통해 신인 창작자들을 선발하고 집필 공간, 창작지원금 등을 제공하고 있다. 현장 견학, 역사 강의 등 작품 집필을 돕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의 저자 조너선 갓셜은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하는 마음은 중대한 진화적 적응이다. 그 덕에 우리는 삶을 일관되고 질서정연하고 의미 있게 경험한다. 삶이 지독하고 소란스러운 혼란에 머물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이야기 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장르, 언제든 편하고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장르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지독하고 소란스러운 혼란의 일상에서 드라마는 하나의 휴식이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중심에 선 신인 작가들 덕분에 오늘의 휴식이 더욱 기다려지고 흥미롭게 느껴진다. 매일 새롭게, 매일 더 깊이 이야기를 탐닉할 수 있게 됐으니.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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