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업계 “불평등·양극화 해소 위해 연대 기금 고민을”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바꿔야 한다. 성과에 따른 정당한 보상으로 ‘인재 제일’ 원칙을 되살려, 우리의 당당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은 23일 오후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진행된 투쟁결의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조는 회사 영업이익 15% 성과급 지급과 성과급 상한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사쪽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다음달 21일부터 6월7일까지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집회엔 약 4만명의 조합원이 참여해 ‘노조의 힘’을 과시했다.
이날 오전엔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소속 회원들이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인근에 모여 노조 파업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반도체 공장의 지분을 갖고 있는 사람은 주주들이지, 직원들이 아니다. (파업으로) 공장이 멈추면, 주주들에게 직접적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조는 실적이 좋을 때는 과도한 성과급을 요구하면서, 실적이 좋지 않을 때는 책임을 분담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반도체 기업의 천문학적 이익을 두고 노동자들과 주주들이 공개적으로 맞서는 이례적 모습이 연출됐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노동자 1인당 4억~6억원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의 성과급이 지급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업의 ‘슈퍼 이익’을 두고 어떻게 분배를 해야 하는지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제도로 강제할 수 없으니, 반도체 노사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소수 대기업에만 집중되는 보상 체계가 산업 경쟁력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며 노사가 함께 이익 배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협력업체 등 다 같이 열심히 했는데 왜 과실은 완성업체만 가져가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원·하청 노사와 지역사회, 주주 등이 모여 여러가지 분배 방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승 부산대 교수(경제학)는 “반도체 사이클(순환)이 있어 불황을 대비해 잉여금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국민들의 위화감이 큰 만큼, 미래 발전을 위한 사회 공헌적인 투자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생기금 등 성과를 사회와 나누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반도체 슈퍼 이익이) 기업이나 해당 노동자만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지 않냐”며 “눈앞의 실리에만 얽매이기보다 연대기금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미 여러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2017년 만들어진 공공상생연대기금은 박근혜 정부 때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받은 성과급 약 1600억원을 사회적 연대를 위해 내놓으면서 설립됐다. 우분투재단도 2019년 사무금융 노사가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목표로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해 세운 조직이다.
기업의 성과 배분 문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거론돼왔지만, 뾰족한 해법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2011년 대기업이 원가 절감 등으로 목표치를 초과하는 이익을 냈을 때 일부를 협력사와 나누는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후 ‘협력이익배분제, ‘협력이익공유제’ 등 이름을 바꿔가며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재계가 반대하면서 번번이 무산됐다.
박다해 이준희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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