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었음’ 청년과 꼰대 부장[뉴스와 시각]
아침 조깅을 마치고 돌아와 서툰 칼질로 고기를 손질하는 이 남자. 토치로 아슬아슬한 불맛까지 입히고는 홀로 식사를 시작한다. 배달 음식이나 라면으로 때우는 일은 거의 없다. 집밥으로 아낀 식비는 대부분 미국 주식에 투자한다. 큐큐큐(QQQ), 큐큐큐엠(QQQM), 슈드(SCHD)에 꾸준히 넣은 돈들이 이제 어엿한 배당금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매 영상에 수백 개 댓글이 쏟아지는데, 남자를 부러워하는 글이 압도적으로 많다. 상사와의 불필요한 갈등, 소모적인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내면을 다질 수 있는 초연함을 닮고 싶어 한다. 요즘 유튜브에서 핫한 30대 백수 생활기다.
‘쉬었음’ 청년들이 정작 쉬고 있는 것은 미래를 위한 노력이 아니다. ‘나 때의 열정과 노력이 없다’거나 ‘요즘 애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기성세대 시선과 달리, 이들 대부분은 놀고먹지 않는다. ‘쉬었음’ 청년 상당수가 멈춘 것은 사내 정치를 위해 원치 않는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거나, 왜 필요한지도 모를 형식적인 보고서를 만드는 데 하루를 쏟는 일, 현재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상사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하는 조직 생활이다.
실제 한국은행의 ‘쉬었음 청년층의 특징 및 평가’ 보고서를 보면, ‘쉬었음’ 청년층 증가세는 직장을 다녀본 경험이 있는 청년들 사이에서 뚜렷하다. 취업 경험이 있는 ‘쉬었음’ 청년은 2019년 36만 명에서 2025년 47만7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취업 경험이 없는 ‘쉬었음’ 청년층 인구는 10만 명 수준에서 큰 변동이 없다. 퇴사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발적’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잡코리아가 2022년 공개한 ‘직장인 퇴사 이유’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 직장인들의 가장 큰 퇴사 이유는 ‘적성에 맞지 않아서’(44.0%)에 이어 ‘조직문화가 맞지 않아서’(32.0%), ‘연봉에 만족하지 못해서’(30.0%)였다. 흔히 얘기하는 ‘워라밸 불균형’이나 ‘낮은 연봉’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와 경제단체들은 ‘일하고 싶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대기업 여부, 연봉의 많고 적음을 주로 말한다. 그러나 기성세대가 점령한 이 논의의 장에 ‘조직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세상은 미친 듯이 빠르게 흐르는데 일하는 방식은 더디게 변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은 요즘도 후배가 만든 보고서를 가로채 기막힌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대충 지시하고는 결과물이 나오면 “내 의도는 이게 아니었다”며 인신공격성 비난을 퍼붓는다. 일과 중 충분히 지시할 수 있는 업무였는데도, 퇴근 직전이나 주말 직전에 ‘마치 지금 막 생각난 듯’ 일을 던지는 상사도 여전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요즘 정치권은 이런 김 부장 같은 꼰대들 정년을 5년 더 늘려주겠다고 한다.
기술 혁신이나 규제 개혁 같은 구호가 쏟아질 동안 일하는 문화를 바꾸려는 시도는 늘 뒷전이었다. 청년들 의견은 선거 때만 반짝 주목받았다. 그나마 외부 시선에 노출된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 전반에는 아직 꼰대 문화가 견고하다. 오늘날 ‘쉬었음’을 선택한 건 청년들이지만, 내일 도태되는 것은 변화를 거부한 기업, 이를 방조한 정부일 것이다. 시간은 결국 청년들 편에 서 있다.

김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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