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ㆍ재건축 공사비 갈등 전국 확산… 지방 정비사업까지 ‘도미노’
코로나19 등 전쟁 이전부터 누적된 갈등… 미ㆍ이란 전쟁이 기름 부어

[대한경제=한형용 기자]공사비 인상 갈등이 서울을 넘어 지방 정비사업 현장으로 번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누적된 원자재ㆍ인건비 상승에 미ㆍ이란 전쟁 여파까지 겹치면서 갈등이 한층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올해 공사비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미ㆍ이스라엘-이란 무력 충돌 이후 3월 말부터 서울 주요 사업지에 증액 요청이 본격화됐다. 가장 긴박한 현장은 은평구 대조1구역이다. 올해 10월 입주를 앞둔 ‘힐스테이트 메디알레’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나프타 수급 불안과 공기 지연 가능성을 공식 통보했다. 이 사업장은 지난해 이미 2566억원 규모 증액에 합의한 상황이어서 조합의 반발은 더 커지고 있다. 여의도 한양아파트, 마천4구역 등 주요 사업장에서도 입찰 당시 대비 최대 70%가 넘는 인상을 요구하며 갈등이 현실화되고 있다.
공사비 갈등은 서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부산 광안2구역(드파인광안) 재개발조합은 시공사인 SK에코플랜트와 협상 끝에 증액 요구를 553억원에서 289억원까지 낮췄지만 합의엔 이르지 못했다. 결국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증액 검증을 신청했고, 결과는 준공 예정인 6월 전후 통보될 전망이다.
지방에서는 아예 대형 건설사가 이탈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부산 우동1구역(DL이앤씨), 부산 촉진2-1구역(GS건설), 인천 금송구역(DL건설), 남광로얄(SK에코플랜트) 등에서 조합과 공사비 합의에 실패해 계약이 해지됐다.
조합원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분담금 증액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노량진뉴타운 8구역은 공사비가 평당 498만원에서 816만원으로 뛰었고 추가 분담금이 7억원을 웃돌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조합원들의 선택지도 마땅치 않다.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조합원 지위 양도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서울시가 규제ㆍ대출 완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국토부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8개 협회를 긴급 소집해 간담회를 열었고, 4월부터 시공사 입찰 단계부터 공사비 변동 가능성을 명기하도록 하는 ‘공사비 변동기준 의무화’도 시행됐다. 다만 법적 강제력이 부족해 업계 반응은 회의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전국 정비사업으로 번질 도미노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한다. 정비사업 도급 계약 대부분이 공사비 산정 기준 시점을 ‘실제 착공일’로 삼는 구조여서, 이주ㆍ철거에만 평균 2∼3년이 걸리는 정비사업 특성상 전쟁 등 다양한 변수로 발생하는 물가 상승분이 공사비에 고스란히 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사비 부담은 이미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 2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한국건설기술연구원)는 133.69 잠정치로 전년 동월 대비 2.04% 상승했다. 이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3월 지수는 더 가파르게 상승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진행 중인 공사에서 공사비 분쟁이 발생하거나 공사 지연ㆍ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고, 고유가가 6∼8개월 이상 지속되면 공사 중단을 겪는 곳도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업계와 조합 안팎에서는 초기 낮은 조건으로 정비사업 시공권을 확보한 뒤 이후 비용을 높이는 구조가 반복될 경우 시장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형용 기자 je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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