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윤 어게인’ 지지자 글 공유…문제적 인플루언서의 무게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일론 머스크는 스스로 ‘천재 사업가’와 ‘문제적 인플루언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이번엔 자동 번역 기능을 자랑하려던 가벼운 리트윗이 도마 위에 올랐다.
머스크는 지난 9일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에 한국어 게시물을 공유했다. 해당 글은 한 한국인 이용자가 “외국어 게시물이 한국어로 보인다”며 번역 기능에 놀라움을 표현한 내용이다. 이어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면 프로파간다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장도 포함돼 있었다. 머스크의 공유 이후 이 게시물은 하루 만에 수천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빠르게 확산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해당 글 작성자가 한국 정치에서 특정 진영, 이른바 ‘윤 어게인’ 지지 성향을 가진 인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급속히 확산됐다. 결과적으로 머스크는 국내에서 정치적 논란이 큰 메시지를 아무런 맥락 없이 글로벌 플랫폼 위로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머스크가 한국 정치의 맥락까지 이해하고 리트윗했을 가능성은 낮다. 그는 아마도 “번역 기술이 세상을 연결한다”는 메시지에 홀렸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문제다. 머스크의 소셜미디어 사용 방식은 늘 ‘맥락 결핍’ 상태에 가깝다. 콘텐츠의 파급력은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 콘텐츠가 가진 정치적·사회적 맥락에는 종종 무심하다.

이 같은 장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머스크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가벼운 발언, 무거운 파장’이라는 공식을 반복해왔다. 2018년 7월 15일, 태국 동굴 구조 작전을 둘러싸고 영국 잠수 전문가를 향해 “소아성애자”라고 공격했다가 국제적 비판과 함께 명예훼손 소송까지 이어졌다. 같은 해 8월 7일에는 “테슬라를 주당 420달러에 비상장 전환 고려, 자금 확보”라는 트윗을 올려 시장을 뒤흔들었다. 결국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제재와 벌금, 이사회 의장직 사임으로 이어졌다.
2020년 5월 1일에는 “테슬라 주가가 너무 높다”고 단 한 줄을 남겼다가 실제 주가 급락을 불러왔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봉쇄 정책을 “파시즘”에 비유하는 등 과학적 논쟁과 동떨어진 발언으로 논란을 키웠다. 2021년에는 비트코인 결제를 허용했다가 5월 12일 환경 문제를 이유로 돌연 중단을 선언하며 암호화폐 시장을 출렁이게 했다. 2023년 11월 15일에는 반유대주의 음모론 게시물에 동조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글로벌 광고주 이탈이라는 후폭풍을 맞기도 했다. 사건의 종류는 달라도 즉흥적 발언, 대규모 확산, 뒤늦은 수습 등의 패턴은 놀랄 만큼 유사하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단순히 “트위터를 좋아해서”라고 보기엔 부족하다. 머스크의 소셜미디어 사용은 기업가라기보다 인플루언서에 가깝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무엇보다 ‘재미’를 우선한다. 문제는 그가 가진 영향력이다. 머스크의 계정을 거치면 수천만 명에게 도달한다. 이번 한국어 리트윗 역시 하루 만에 수천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머스크는 기술이 장벽을 허물고,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면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번역 기술이 좋아질수록, 오히려 각국의 정치적 메시지와 갈등도 더 빠르게, 더 넓게 확산된다. 이번 사례는 그 역설을 그대로 보여준다. 언어 장벽은 사라졌지만, 맥락의 장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머스크는 아마 이번 논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늘 그랬듯 다음 트윗으로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플랫폼의 ‘확성기’를 쥔 인물에게 요구되는 책임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기술을 만든 사람과, 그 기술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파장을 관리하는 사람은 이제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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