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계열사에 칼 빼든 공정위...정몽규 HDC회장 고발

최지희 2026. 3. 18.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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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6개월새 총수 3명 연속 고발
친족·재단 은폐·그림자 계열사 모두 겨냥
재계 지정자료 제출 앞두고 전면 점검 압박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이재명 정부 들어 대기업 총수 일가의 친족회사ㆍ그림자 계열사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가 본격화하고 있다. 작년 9월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체제 출범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DB그룹ㆍ영원무역ㆍHDC 등 재벌 총수 세 명이 잇달아 검찰에 고발됐다. 계열사를 지정자료에서 빠뜨려 사익편취 규제망을 피해온 관행에 공정위가 정면으로 칼을 들이댄 것이다.

공정위는 HDC그룹 정몽규 회장이 2021~2024년 지정자료를 제출하면서 동생 일가 8개사, 외삼촌 일가 12개사 등 총 20개사를 소속회사 현황에서 누락한 사실을 적발해 17일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누락 행위 자체는 정 회장이 총수로 재임한 20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최장 19년에 달하지만, 공소시효를 감안해 2021년 이후 행위만 고발 대상으로 삼았다.

공정위가 이번 고발에서 가장 무게를 둔 것은 ‘고의성’이다.

HDC 지정업무 담당 임직원과 정 회장 비서진은 자료 준비 과정에서 해당 친족회사들로부터 계열 요건(친족 지분율 30% 이상)에 해당한다는 확답을 받았다. 누락이 적발될 경우 예상되는 제재까지 내부 검토했다. 정 회장은 이 사안을 직접 보고받고 “친족들을 만나보라”고 지시했으면서도 계열 편입이나 친족분리 등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동생 일가인 인트란스해운 대표가 누락 사실 확인 직후 17년간 맡아온 HDC 계열사 임원직을 갑자기 사임한 것도 공정위는 연관성 은폐 시도로 봤다. 누락 회사들의 자산 규모는 연간 1조~1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번 연속 고발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감사원이었다. 올해 2월 정기감사에서 윤석열 정부 시절 공정위가 19건의 지정자료 허위제출 사건 중 단 1건만 고발하고 나머지 18건은 경고로 처리했던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이후 이재명 정부 들어 새로 취임한 주병기 위원장은 40일 사이 DB그룹 김준기 창업회장(2월 8일ㆍ15개사 누락)과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2월 23일ㆍ82개사 누락), 정몽규 HDC 회장을 차례로 고발했다.

공정위는 세 사건을 모두 “총수 일가의 지배력 유지 및 사익에 활용하기 위한 장기 은폐”로 규정했다. 비영리재단 산하 계열사든, 친족 명의 분산 회사든, 자산 기준 회피 목적의 누락이든 유형을 가리지 않고 고발로 이어졌다. 특히 HDC 사건의 경우 일부 범죄사실의 공소시효가 4월 초로 임박한 상황에서도 고발을 강행한 점이 눈길을 끈다. “시간을 끌면 넘어간다”는 기존 재계의 인식과 법인 과징금으로 마무리되던 관행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공정위 관계자는“총수 일가의 사익편취와 계열사 은폐는 의도적 착취 행위”라며 “앞으로도 총수 일가 승계ㆍ지배력 확대 과정에서의 일감 몰아주기와 우회 자금지원을 엄정 제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계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대형 로펌들은 이미 대기업 계열사 현황 전면 점검 컨설팅 수요가 급증했다고 전한다. 지정자료 제출 시즌인 4~5월이 다가오면서 압박은 더 커지고 있다.

한 대기업집단 법무 담당 임원은 “친족독립경영 요건 판단이 생각보다 복잡해 내부적으로도 불안한 부분이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수 점검에 들어간 곳이 한두 곳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 발표에 대해 HDC 측은 즉각 반박했다. HDC는 “해당 회사들은 정 회장이 지분을 전혀 보유하지 않고 있고, 1999년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이후 거래도 없었던 곳”이라며 “지분 보유나 거래관계 없이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돼온 친족 회사들에 대한 신고 과정에서의 단순 누락으로, 고의로 은폐할 부당한 의도나 동기가 없었음을 추후 소명하겠다”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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