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시대의 역설, 뿌리가 무너지면 미래도 없다- 이도영(한국폴리텍Ⅶ대학 창원캠퍼스 금형가공시스템과 교수)

지금 세계는 거대언어모델(LLM)과 생성형 AI가 이끄는 지능의 대전환기를 건너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GPU 한 장에 국가의 운명이 엇갈리고, 구글과 메타 같은 글로벌 빅테크들은 칩 개발 전쟁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5나노, 3나노라는 미세 공정의 수치와 유려한 알고리즘의 화려함에 열광하는 사이 정작 첨단 산업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땅 밑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영웅들의 존재는 잊혀가고 있습니다. 바로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등 대한민국의 제조 산업 가장 밑바닥을 지탱하는 뿌리산업입니다.
흔히 뿌리산업을 과거의 낡고 진부한 기술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기술의 본질을 망각한 착각입니다. 아무리 천재적인 설계자가 설계한 AI 반도체라 할지라도 이를 현실에 구현해 낼 초정밀 금형이 단 1마이크로미터의 오차도 없이 제작되지 않거나 극한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표면처리를 거치지 못한다면 그 반도체 칩은 결코 세상의 빛을 볼 수 없습니다. 테슬라가 자동차 생산의 패러다임을 바꾼 ‘기가캐스팅(Gigacasting)’ 공법 역시 결국은 거대 금형과 주조 기술의 결정체이고, 삼성전자가 최첨단 파운드리 리더십을 유지하는 근간에는 숙련된 뿌리 기술이 집약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숙련공의 은퇴와 청년층의 기피라는 이중고 속에 사람이 없어 공장이 멈춘다는 현장의 비명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첨단 산업이라는 화려한 왕관은 뿌리산업이라는 견고한 머리 없이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는 진리를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정부에서도 뿌리산업 진흥을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파편화된 지원과 단기 성과 위주의 정책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뿌리산업은 단순히 버티는 산업이 아니라 혁신하는 산업으로 재정의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3D 이미지를 벗고 ACE(Automatic, Clean, Easy) 산업으로의 체질 개선이 절실합니다.
그 열쇠는 바로 피지컬 AI에 있습니다. 수십 년간 축적된 숙련공들의 감각과 제조 현장의 방대한 데이터를 AI로 학습시켜 공정을 지능화하고 자율화하여야 합니다. AI가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대신하고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고부가가치인 공정 설계와 기술 고도화에 집중하는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져야 인력난을 극복하고 청년들을 다시 현장으로 불러 모을 방안이라 생각합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디지털 문명의 모든 편익은 결국 숙련공들의 땀방울이 서린 금형 틀과 용접봉 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뿌리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과 더불어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선 제조 지능화를 향한 전략적 투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입니다. 뿌리가 튼튼해야만 대한민국의 AI 반도체라는 꽃도 비로소 지속 가능한 미래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도영(한국폴리텍Ⅶ대학 창원캠퍼스 금형가공시스템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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