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한철] 내포독자

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2026. 3. 1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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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내포독자(Implied reader)는 이른바 독자반응비평의 주요 용어 중의 하나이다. 이 말의 뜻을 간추려 말한다면 텍스트 안에 작자가 상정한 이상적인 독자이다. 그러니까 글쓰기란 내포독자에게 말 건네기이다. 작자의 간절함이 내포독자의 간절함과 호흡을 같이 할 때 그 글은 성공적인 것이 된다. 뭐 이따위 글이 있어! 지면 아깝잖아? 하는 반응은 텍스트 밖 작자와 텍스트 안 독자와의 호흡 불일치, 혹은 작자와 내포독자의 관계에 대한 단순사실의 맹목이나 필자의 둔감과 무지에서 온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에서 이따금 호명하고, 상정하는 '당신'이 그와 같은 데, 내포독자는 실제일 수도 있고 가상일 수 도 있다. 또 그것은 경우에 따라 관념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다.

글을 쓸 때, 말을 할 때 나는 일반적으로 설정하는 목표의 100% 달성에 만족하지 않는다. 초과달성을 꿈꾸고 또 그렇게 되도록 의도하고 사유한다. 독자, 혹은 청중의 심리와 기대를 정확하게 읽어야 그것은 가능하고 문맥과 환경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면 초과달성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나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20여 년 전 나는 어느 일간지에 1주일에 세 차례씩 '시와 함께'를 연재한 적이 있었다. 보기 드문 롱런이었다. 그 글을 쓸 때 다음 사실을 명심했다.

신문에 실린 문학이야기를 문학서적의 그것과 같은 태도로 읽는 사람은 없다는 것, 문학전공자도 신문소설을 읽을 때는 서재를 벗어나 거실 소파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는 것, 신문은 말 그대로 新聞, News paper라는 것, 그러므로 신문의 독자는 문학개론이나 죽은 시인의 넋두리를 들으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 서툰 인생론에 감동하는 현대인은 사라진 지 오래라는 것, 뿐만 아니라 이제는 아무도 인용 작가의 허명에 끌려 다닐 만큼 어리석지는 않는다는 것, 나태를 은폐하기 위한 필자의 지적 현시에 속는 문화적 문맹은 더 이상 없다는 것.

강가에 앉아 그리움이 저물도록 그대를 기다렸네
그리움이 마침내 강물과 몸을 바꿀 때까지도
난 움직일 수 없었네
바람 한 올, 잎새 하나에도 주술이 깃들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은 모두 그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매순간 반딧불 같은 죽음이 오고
멎을 듯한 마음이 지나갔네
기다림, 그 별빛처럼 버려지는 고통에 눈멀어
나 그대를 기다렸네

가령, 유하의 시, 「너무 오랜 기다림」을 텍스트로 한 어느 하루 분의 해설은;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된장이나 김치처럼 그리움, 기다림, 또는 외로움 같은 정서들은 유행을 타지도 않고 시간의 침식을 받지도 않는 듯하다. 그것이 진정한 것이라면 모든 그리움은 멎을 듯한 마음의 흔적이며 누구에게나 기다림은 너무 오랜 기다림이다. 나는 지금 첫사랑의 무덤을 하염없이 쓰다듬는 검은 외투의 실루엣, 주술 깃든 여인의 젖은 눈을 보고 있다. 그리움이 저물도록, 기다림의 날들은 얼마였을까. 아마도 한평생이 걸렸으리라." 와 같다. 이 글은 꼼꼼한 텍스트 읽기가 아닌 한평생 첫사랑의 무덤을 안고 사는 내포독자에게 보내는 내 간절한 편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