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중고 거래(Resale) 일명 ‘세컨핸드 트렌드’가 불고 있다. 중고 거래에 거부감이 없고 지속가능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20~30세대 사이에서 ‘세컨핸드’가 일종의 ‘힙한 소비’가 되는 것. 새 상품보다 저렴한 가격대의 중고 의류를 잘 발굴하는 ‘리커머스 리터러시(Recommerce Literacy)’족들을 겨냥한 세컨핸드 전문 브랜드들도 점점 ‘맞춤형 서비스’로 성장해 가는 중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세컨핸드(중고 거래)’ 트렌드가 전 세계 Z세대를 중심으로 일상적인 소비문화로 자리해가고 있다. 중고 거래 시장은 지난 2020~2021년을 기점으로 ‘취미 소비’, ‘지역 기반’, ‘가치 소비’라는 뉴노멀 트렌드와 맞물리며 빠르게 성장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국내 중고 거래(리커머스) 시장은 2024년 약 30~35조 원에서 2025년 약 43조 원 규모로 성장이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다. 국제 컨설팅 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 등이 발표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세컨핸드 의류 시장은 일반 패션 시장보다 3배 빠르게 성장하며, 2030년까지 3,600억 달러(한화 약 512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고 거래가 ‘헌 물건 거래’라는 이미지에서 ‘재테크 수단’으로 거듭나며, 합리적 소비·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세컨핸드 시장은 새로운 틈새시장이 됐다. 이곳에서 희귀한 아이템을 발견하는 것이 2030세대 사이에서 일종의 놀이, 일종의 ‘득템’의 경험이 되는 취향 거래 시장이 된 것이다. 그들은 온오프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스타 또는 인플루언서들이 착용한 브랜드나 희귀한 빈티지 아이템을 찾는다. 대표적인 예로 그들이 마치 할머니의 다락방에서 발견한 것만 같은 의류부터 빈티지 시계, 그릇, 쥬얼리 박스 등을 소비하기 시작하자, 인테리어 및 소품 분야의 주요 인기 품목에서 ‘그랜마코어(Grandma-core)’ 트렌드가 주목받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열린 무신사 유즈드의 오프라인 플리마켓(사진 무신사)
이처럼 세컨핸드 시장의 중심에 선 젊은 세대들에 대해 리커머스 테크 플랫폼 번개장터 관계자는 “새 상품에 집착하지 않는 젊은 세대는 리커머스 리터러시(Recommerce Literacy, 중고 제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효율적으로 거래하는 문해력), 소비 비용을 회수하고 새로운 소비로 연결하는 순환형 소비(recommerce)에 영민한 것이 특징이다”라고 설명했다.
중고 거래 서비스 시장이 넓힌 ‘취향 스펙트럼’
앞서 언급했듯 소비자들은 이제 취향 아이템을 발굴하는 핵심 채널로 중고 거래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먼저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KREAM)에서 중고 명품 거래 서비스 ‘빈티지(Vintage)’ 개편 이후 6개월간의 성과 데이터를 공개한 결과에서도 이 같은 성향이 뚜렷하다. 크림이 지난해 8월 기존 중고 명품 서비스를 ‘빈티지’로 리뉴얼하며 브랜드 라인업을 확장한 이후 2026년 1월 31일까지 6개월간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빈티지 카테고리의 전체 거래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3%, 거래액이 93% 증가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이 같은 성장 배경에는 거래 품목을 하이엔드부터 니치 아이템까지 확장이 있었다. 가격대와 ‘취향 스펙트럼’을 동시에 넓히며 이용자 수요를 폭넓게 흡수한 것. 과거 가방 중심의 전통적인 명품 거래를 넘어, 이제 소비는 확고한 취향을 반영하는 영역으로 확장됐다. 크림의 빈티지 서비스에서 주얼리 및 액세서리를 포함한 패션잡화 카테고리의 거래 건수도 전년 대비 203% 늘었다. 특히 마니아층이 두터운 주얼리 브랜드 크롬하츠의 ‘타이니 크로스 참’의 경우 크림의 빈티지 서비스 개편 이후 가장 많이 거래된 품목에 올랐다.
크림이 발표한 서비스 개편 성과 데이터(사진 크림)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중고 리커머스 거래는 ‘글로벌 문화 현상’으로도 성장하는 추세다. 번개장터가 지난 한 해 동안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 ‘2025 세컨핸드 리포트’에 따르면, 200여 개국에 제공되는 서비스 ‘번장 글로벌’을 통해 한국에서 약 7,800km 떨어진 시리아로 ‘페이커 포토카드’가 판매됐고, 약 1만 3,000km 거리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는 K-뷰티 기기가 배송됐다. 특히 여성의류 부분에선 글로니(GLONY)와 쓰리타임즈(threetimes) 등 K-디자이너 브랜드가 판매 상위권에 오르며 ‘K-패션 역직구’ 열풍을 주도했다.
국내 거래에서는 제주 서귀포와 강원 양구 사이의 574km를 가로질러 ‘아델(Adele) LP’가 거래되는 등 원하는 물건을 위해서라면 전국 단위 탐색을 마다하지 않는 유저들의 ‘취향 중심적 이동’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2025 세컨핸드 리포트’에 따르면 취향을 반영한 중고 거래가 글로벌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사진 번개장터).
동묘에 공존하는 Z세대와 실버세대
‘명품보다 동묘 앞 할아버지 할머니 패션’이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르는 이곳, 동묘. 중고 거래와 빈티지 상품의 붐이 일고 있다고 해도 온라인 플랫폼이 주축이 되다 보니 이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동묘에선 그 열풍을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과거 어른들의 놀이터였던 이곳엔, 이제 10~20대로 보이는 고객층부터 외국인 관광객, 실버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풍경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된다. 일례로 동묘에 있는 미국 직수입 빈티지숍 루스는 손님 중 대부분이 1020세대이고 가죽 재킷과 양복을 입은 7080대 실버세대들도 이곳을 찾는다. 현재 루스가 판매 중인 빈티지 의류는 폴로, 리바이스, 칼하트, 엘엘빈, 나이키, 아디다스 등 각종 브랜드 상품부터 마니아층이 확실한 데님 셔츠, 서스펜더 팬츠, 가죽 재킷까지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가격은 의류 100g당 약 2,000~3,000원대로 판매 중이다 보니 새 옷을 구매하는 것보다 부담 역시 적은 편이다.
동묘의 골목 풍경(사진 이승연 기자)
이 밖에도 동묘의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 사이엔 다양한 구제의류 가게가 즐비해 있다. 방문객들은 길거리 노점상의 옷 무덤 사이에서도, 벽에 걸린 옷걸이에서도 보물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목걸이, 반지, 시계 등 액세서리 종류까지 판매 중인 빈티지 상품이 한가득하다. 여기저기서 가격 흥정을 하는 사장님과 손님의 모습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현재 블로그나 SNS 등을 통해선 동묘 빈티지 추천 가게, 브랜드 의류 시세 등 쇼핑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젠지 세대 사이에선 이곳을 찾기 전 사전 검색은 필수처럼 여겨진다.
복합 쇼핑몰에 등장한 세컨핸드 브랜드
빈티지 및 구제 상품은 쉽사리 구매할 수 있지만, 중고 상품의 위생이나 품질 관리에 대해 우려를 갖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이러한 걱정을 불식시키려는 ‘세컨핸드 브랜드’들을 백화점, 복합 쇼핑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컨핸드 스토어 ‘비바무역’(사진 이승연 기자)
미국 빈티지 의류부터 앤티크 상품까지 판매하며 인플루언서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이 퍼진 ‘CYC코퍼레이션’의 경우 롯데백화점 매장, 팝업스토어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속 가능성, 오래된 가치의 새로움이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추구하는 ‘비바무역(VIVA)’도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의 팝업 이벤트를 오픈한 데 이어, 동대문에 위치한 복합 쇼핑몰 던던에 ‘비바무역 을지’ 매장을 개점했다. 비바무역의 경우 오프라인 매장 방문 시 진열되기 전의 제품들을 다림질하는 모습이나, 자체 검수 과정을 통해 검열된 가품을 ‘FAKE’ 전용 옷걸이에 진열해 전시한 뒤 폐기 처리하는 등 세컨핸드 브랜드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한 퍼포먼스 또한 선보이는 중이다.
패션 브랜드의 중고 상품 유통 변화 모색
최근 패션 리세일 시장은 개별 브랜드 단위의 운영을 넘어, 다양한 브랜드를 아우르는 플랫폼 중심 구조로 소비 흐름이 이동했다. 뿐만 아니라 옷장 정리의 번거로움을 해결해 주는 수거 및 위탁 판매 서비스들 역시 인기를 끌고 있다.
패션 브랜드 회사들도 중고 의류 리세일 플랫폼에 뛰어들고 있다. 먼저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이하 코오롱FnC)은 2022년부터 자사 몰인 코오롱몰과 함께 자체 중고 거래 서비스 ‘오엘오 릴레이 마켓(OLO Relay Market)’을 선보이고 있다. 오엘오 릴레이 마켓은 코오롱스포츠와 럭키슈에뜨, 캠브리지 맴버스, 레코드 등 자사 브랜드를 중심으로 운영 중인 데 이어, 올해부턴 리세일 매입 대상을 약 160개의 타사 브랜드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엘오 릴레이 마켓에서 매입 접수가 진행된 상품은 세탁과 경미한 수선, 등급화 과정을 거쳐 재판매되며, 가격은 신제품 대비 60~80% 수준으로 책정된다. 타사 제품 판매 시 보상은 코오롱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오엘오 포인트’로 제공된다.
코오롱몰, 중고거래 플랫폼 오엘오 릴레이 마켓(OLO Relay Market) 정식 론칭(사진 코오롱 FnC)
LF는 지난 9월 자사 브랜드의 중고 의류 마켓 플랫폼 ‘엘리마켓(L RE: Market)’을 정식 론칭, 중고 비즈니스 전문 스타트업 회사 ‘마들렌메모리’와의 제휴를 통해 LF의 주요 브랜드 제품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중고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엘리마켓에서 현재 판매 가능한 브랜드로는 헤지스, 마에스트로, 알레그리, 바네사브루노, 아떼 바네사브루노, 빈스, 레오나드, TNGT, 리복 등 LF 자사 브랜드, 본사와 협의 완료된 수입 브랜드 약 15여 개다.
LF의 리세일 마켓 서비스 엘리마켓(사진 LF)
국내외 중고 거래 플랫폼에선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등 대표적인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거래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개인 간의 거래 등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명품 리셀 시장에서 진품 인증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탄소 절감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슈가 대두되고, 중고 제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되면서 글로벌 브랜드들도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버버리와 구찌는 리세일 플랫폼 ‘더 리얼리얼’과 파트너십을 맺었고, 발렌시아가, 알렉산더 맥퀸 등 럭셔리 브랜드들도 리세일 플랫폼 파트너십을 맺은 바 있다. 그 밖에도 일부 럭셔리 브랜드들도 엄선된 상품을 수집해 다시 새로운 고객에서 선보이는 리텐션(Retention, 고객 유지) 전략을 선보이거나 보증서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자체적인 리세일 전략을 시도함으로써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되, 지속가능성 스토리텔링과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소비층을 유입하고 있다.
[글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각 브랜드, 이승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