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주총 안건 열어보니··· ‘자사주 방패 정관’ 줄줄이

주재한 기자 2026. 3. 17. 15:0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상법 개정 대응 속속···이사회 구조 개편·사외이사 독립성 논쟁도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가 강화되자 주요 상장사들이 주주총회를 앞두고 정관 개정을 통해 자사주 활용 예외 규정을 마련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사주 활용 범위를 넓히는 정관 조항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사실상 '정관 방패'를 세우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17일 민간 기업지배구조관련 전문연구소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발표한 주주총회 의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SK아이이테크놀로지, 미래에셋증권, 셀트리온 등 여러 기업이 이번 정기 주주총회에서 자사주 보유·처분 관련 정관 조항을 신설하거나 변경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이는 최근 개정된 상법의 영향이다. 개정 상법은 기업이 취득한 자기주식을 원칙적으로 1년 이내 소각하도록 규정하면서도 일정한 사유가 있을 경우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보유하거나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정관에 '경영상 목적을 위한 자사주 활용' 근거를 명시하는 방식으로 제도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실제 SK이노베이션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정관에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사업구조 개편, 인수합병 등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자기주식을 보유하거나 처분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자사주 보유·처분 관련 조항을 정관에 신설하는 방안을 주주총회 의안으로 올렸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사주가 인수합병이나 전략적 제휴, 임직원 보상 등 다양한 재무 전략에 활용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활용 여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특히 자사주는 신규 주식 발행 없이도 지분 구조를 조정하거나 자본 정책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경영 수단으로 꼽힌다.

다만 연구소는 이러한 정관 개정이 자사주 활용 범위를 과도하게 넓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자사주 처분이 경제적 실질에서 제3자 대상 신주발행과 유사해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와 의결권을 희석시킬 수 있다며 주주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경영상 목적이라는 포괄적 사유가 정관에 포함될 경우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 등 특정 목적에 활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 이사회 구조 개편도 잇따라…소수주주 견제 논쟁

이번 주총 시즌에서는 자사주 관련 정관 개정과 함께 이사회 구조를 조정하는 안건도 동시에 등장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이사 정원 상한을 기존 15명에서 9명으로 축소하는 정관 변경안을 상정했다. 연구소는 이사 수 상한이 줄어들 경우 주주가 추천할 수 있는 이사 후보의 수 자체가 제한될 수 있고 집중투표제 활용 기회도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카카오페이 역시 이사 정원을 상한 방식으로 규정하는 정관 변경안을 올렸다. 정관상 이사 정원이 이미 채워질 경우 주주가 새로운 후보를 추천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한화시스템의 경우 이사 임기를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정관 변경이 추진되고 있다. 임기가 길어질수록 주주총회를 통한 이사 평가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비판적 평가도 가능한 대목이다.

사외이사 독립성과 보수 체계 문제도 일부 기업 주총 안건에서 함께 도마에 올랐다. LS증권에서는 회사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소속 고문이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되면서 이해상충 우려가 제기됐다.

총수 또는 지배주주 보수 문제도 논란이 됐다. 한화시스템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미등기 임원 신분으로 상당한 보수를 수령하고 있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김 회장은 2025년 회사에서 50억4000만원의 보수를 수령했는데, 이는 전문경영인 중 보수 최상위 수령자인 이태길 부사장(미등기)의 급여 및 상여 합계액 약 13억3000만원(퇴직소득 및 퇴직소득 한도 초과액이 포함된 기타 근로소득 제외) 대비 3.79배 수준이다. 김 회장은 2024년에도 43억2000만원(차상위 보수자의 7.76배)의 보수를 수령했다. 이외에도 김 회장은 ㈜한화, 한화솔루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에서 미등기임원을 겸직하면서 보수를 받고 있다. 연구소는 지배주주가 여러 계열사에서 겸직하며 다른 경영진보다 높은 보수를 받는 구조는 합리적인 보수 체계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법률 실무에서도 관련 자문 수요가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0대 로펌 중 한 곳에서 기업총괄센터장을 맡은 A변호사는 "최근 공시 사례를 보면 임직원 보상 목적의 자사주 처분을 위해 주총 승인을 받는 기업이 적지 않다"며 "소각 원칙이 강화된 이후 기업들이 정관 근거나 활용 계획을 어떻게 설계할지 문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률 전문가는 "경영권 방어나 전략적 제휴, 인수합병 등을 위해 상당 규모의 자사주를 보유해 온 기업의 경우 단기간에 이를 모두 소각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며 "이 때문에 보유·처분 계획을 미리 정관이나 주총 결의로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부연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