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호르무즈 파병, 튀르키예 균형외교에서 배워야 - 동맹과 국익 사이

이승훈 2026. 3. 1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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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 없는 전쟁에 참가할 의무 없어…동맹 존중하되 국익 중심의 사고 해야
튀르키예, 나토 회원국이지만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의 영토 사용 승인 거절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한 유조선 [사진제공=연합뉴스/로이터]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충돌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며 중동 정세가 다시 한번 불안정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전쟁의 시작 과정과 명분을 둘러싸고 국제사회에서는 적지 않은 논란과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분쟁이 주변 지역으로 확산할 가능성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 속 미국은 한국과 일본 등 주요 동맹국들에게 중동 해역과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을 명분으로 군함 파견과 군사적 협력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의 국제 정세는 냉전 시기와 같은 단순한 진영 대결의 구도가 아니다. 전쟁의 명분과 정당성에 대한 국제적 논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동맹국이 자동적으로 군사적 참여를 결정해야 하는 시대도 이미 지나가고 있다. 오히려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동맹을 존중하면서도 국익을 중심으로 전략적 선택을 하는 균형 외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제공=연합뉴스/AP]


이 점에서 주목할 사례가 바로 튀르키예의 외교 전략이다. 튀르키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심 회원국이며, 군사력 또한 나토 내에서 미국 다음으로 손꼽히는 수준이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사실상 유일한 서방 군사동맹 국가라는 점에서 전략적 중요성은 매우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튀르키예는 지난 수십 년간 주요 국제 분쟁에서 단순히 서방 진영의 전략에 종속되는 외교를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자국의 안보와 국익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외교 전략을 추구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이라크 전쟁이다. 당시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기 위한 군사 작전을 준비하며 북부 전선을 열기 위해 튀르키예 영토와 군사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미국은 약 6만 명에 달하는 미군 병력의 배치와 함께 튀르키예 영토를 통한 이라크 진입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튀르키예 의회는 치열한 논쟁 끝에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당시 튀르키예 국민 여론의 80% 이상이 전쟁 참여에 반대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압도적인 반전 여론이 의회의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결국 튀르키예는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직접적인 전쟁 참여는 거부하고 제한적인 군수 지원 수준에 머무르는 절충안을 선택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튀르키예 의회는 미국이 요청한 미군 배치와 영토 사용을 승인하지 않았다. 나토 동맹국이 미국의 군사 요청을 의회 표결로 거부한 이 사건은 국제정치에서 ‘3월 1일 결의안(March 1 Motion)’으로 불리며 지금도 전략적 자율 외교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이 결정은 단순히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 사건이 아니라,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국의 안보 환경과 국민 여론을 고려한 현실주의적 외교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튀르키예의 이러한 외교 전략은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튀르키예는 서방의 대러 제재에 전면적으로 동참하기보다는 협상과 중재를 강조하는 입장을 취했다. 실제로 흑해 곡물 협정과 같은 중재 외교에서 튀르키예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왼쪽) 터키 대통령 [사진제공=연합뉴스]


또한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 문제, 최근 중동 정세에서도 튀르키예는 단순한 진영 외교보다는 중재자 이미지와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외교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국제정치에서 흔히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 또는 ‘균형 외교’로 설명된다. 즉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외교적 선택의 폭을 확보하여 자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외교 전략이다.

한국이 처한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외교·안보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지만 동시에 중동 에너지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가진 국가이기도 하다. 중동 지역의 불안정은 곧 한국 경제와 안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동 지역 분쟁에 대한 대응 역시 단순한 동맹 논리만으로 결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동맹은 외교의 중요한 기반이지만 그것이 곧 자동적인 군사 참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복잡한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는 동맹과 국익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는 외교적 지혜가 더욱 중요하다. 튀르키예의 사례가 보여주듯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자국의 전략적 선택을 확보하는 외교는 충분히 가능하다.

오늘날 국제정치는 다극화와 복합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국가의 외교적 역량은 동맹에 대한 단순한 충성도가 아니라 얼마나 전략적으로 국익을 판단하고 행동하느냐에 의해 평가된다. 튀르키예의 사례는 동맹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국익을 중심으로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한국 외교가 참고할 만한 중요한 교훈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 외교에 필요한 것은 동맹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도, 반대로 동맹을 부정하는 감정적 접근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동맹을 존중하면서도 국익을 기준으로 전략적 판단을 내리는 성숙한 외교다. 동맹과 국익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외교가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과제이며, 동시에 미래 외교의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선택이 될 것이다.

오종진 한국외대 튀르키예-아제르바이잔학과 교수


오종진 한국외대 튀르키예-아제르바이잔학과 교수
現 한국 중동학회 부회장
現 아시아언어문화 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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