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커플 마일리지 합산도 높은 벽…“혼인 신고 국가에 거주해야”

“가족끼리 마일리지를 합쳐서 여행 가는 다른 부부들처럼 평범한 행복을 바랐을 뿐이에요.”
동성 혼인이 법제화된 미국 하와이에서 지난해 2월 동성 배우자와 혼인한 박예진(36·가명)씨는 지난달 26일 대한항공 가족 마일리지 제도에 배우자를 등록하기로 했다. 하와이주 혼인 증명서와 국내 사실혼 관계 공증 서류까지 제출했다. 하지만 항공사는 끝내 둘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한항공 쪽은 “국외에서 발급된 혼인 증명서를 제출한 경우, 해당 증명서를 발급하고 법적 효력을 인정하는 국가의 거주 자격이 추가로 확인된 회원에 한해 가족 등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동성혼인을 법제화하지 않은 국내 현실을 이유로 한 일상 속 차별이 만연한 가운데, 대한항공 가족 마일리지 제도가 지닌 벽도 동성부부들 사이 논란이 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외국에서 혼인을 인정받았더라도 해당 국가에 거주하지 않으면 마일리지를 공유할 수 있는 ‘가족’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입장인데, 그 기준이 들쑥날쑥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대한항공은 ‘스카이패스’ 회원을 대상으로 배우자·자녀·부모 등 가족으로 등록된 경우 서로 마일리지를 양도하거나 합산해 항공권 구매에 사용할 수 있는 가족 마일리지제도를 운영한다.
가족 마일리지 가입을 거부당한 건 박씨만이 아니다. 2023년 4월 미국 하와이에서 혼인한 조삼식(36·가명)씨도 대한항공에서 가족 등록을 거부당했다고 한다. 항공사 쪽이 “특정 관계를 배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서도 “혼인 증명서를 발행한 국가의 법적 영향력 아래 거주하면서 관계가 현지 법령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라고 답했다는 게 조씨 설명이다.
하지만 앞서 외국 혼인 증명서 제출만으로 대한항공에서 가족으로 인정받은 사례도 있다. 지난 2019년 캐나다에서 혼인한 한국 국적 40대 여성 부부인 크리스·아리 부부는 항공사 쪽에서 가족 등록을 승인 받았다. 크리스씨는 한겨레에 “당시 신분증과 혼인 관계를 증명하는 서류 외에 추가 증빙 서류를 제출할 필요는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등록을 시도한 동성부부들과 달리, 혼인 국가에서의 거주 자격까지 증명할 필요는 없었다는 의미다.

동성부부와 마찬가지로 국내에 법적 혼인 신고는 하지 않은 다른 사실혼 관계에 대해서는 손쉽게 가족 인정이 이뤄지는 점도 이들 부부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한다. 온라인 결혼 정보 카페 등에는 혼인 신고 전 사실혼 공증 서류를 제출해 가족 등록을 먼저 한 뒤 합산된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구매해 신혼여행에 나서는 방법이 ‘꿀팁’으로 공유된다. 대한항공 쪽은 마찬가지로 사실혼 공증서류를 낸 박씨 부부에게 “혼인 신고 진행 시 즉시 부부로 법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적격성을 근거로 사실혼 증빙을 수용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박씨는 “이성 부부들과 똑같이 결혼식을 하고 재산을 합치고, 생활 동반자로 함께 살아가는데 가족으로 인식되는 것조차 거부당하고 있다”며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2024년 대법원이 동성 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등 동성부부 권리가 일부 확대됐지만, 일상적인 서비스 이용에 있어 여전히 개별적으로 권리를 다퉈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최새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공익인권변론센터)는 “민법상 동성혼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동성 부부의 마일리지 회원 가족 등록은 기업의 의지 문제”라며 “‘국내 법령을 준수하는 것 뿐’이라는 대한항공의 답변은 변명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실제 대한항공과 합병 절차가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은 동성 부부가 동성혼이 법제화된 국가의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면, 별도의 추가 증빙 요구 없이 가족 등록을 승인해 주고 있다.
최 변호사는 “포괄적인 제도가 없는 상황에선 기관의 개별적인 인권 감수성과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혼 법제화를 통해 보편적인 제도로 모든 부부가 같은 제도의 혜택을 받고 권리를 누리며 의무를 수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l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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