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이 되살린 ‘정용재집’ 국역 발간

전정훈 기자 2026. 3. 1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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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대부 삶과 사상 담긴 수백 년 전 ‘기록의 가치’ 알리다

조선중기 명신 정헌공 임권의 삶과 사상을 담은 문집이 수백 년 세월을 넘어 한글 국역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풍천임씨 소간공파 종중이 선조의 시문을 모은 「정용재집」을 국역해 발간했다. 풍천임씨는 고려 개국공신 임온을 시조로 하는 가문으로 조선시대에 다수의 문신과 학자를 배출한 명문가다.

이 가운데 소간공파는 조선의 명신 소간공 임유겸의 후손 계통으로 학문과 절의를 중시하는 가풍을 이어온 종중이다. 「정용재집」은 조선 중기 문신 임권의 시문을 모은 문집이다. 

국역 정용재집.
정용재는 임권의 호이며 본관은 풍천이다. 그는 시조 임온의 13세손으로 소간공 임유겸의 아들이자 관찰사공 임추의 아우다. 문집은 1938년 8월 후손들에 의해 처음 편찬됐다. 임형준이 저작 겸 발행자를 맡았고 발행소는 임창순 가(집안)이었다.

당시 발행인으로 기록된 임창순의 주소는 양주군 회천면 율정리 10번지로 돼 있다. 이는 정헌공의 묘소가 있는 지역 인근으로, 선영을 중심으로 후손들이 문집 편찬 작업을 진행했음을 보여준다. 문집 서문에는 "임정헌공께서 돌아가신지 3백여 년 만에 완성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오랜 세월 흩어져 있던 선조의 글을 후손들이 정리해 문집으로 엮었음을 의미한다.

「정용재집」에는 임권이 남긴 다양한 글이 수록돼 있다. 시와 상소문, 기문, 서문, 제문 등 여러 형식의 글을 통해 당시 정치 상황에 대한 인식과 학문적 사유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상소문에는 국가 운영과 정치 현실에 대한 그의 견해가 담겨 있어 조선 중기 사림정치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시문에서는 선비로서 지향했던 삶의 태도와 도덕적 성찰이 드러난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정용재집을 조선 중기 사대부 문학과 정치문화를 연구하는 데 의미 있는 문헌으로 평가하고 있다.

임동빈 풍천임씨 소간공파 회장(오른쪽)이 지난해 7월 5일 소간공 묘역에서 새로 편찬한 족보 헌보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풍천 임씨 소간공파 종중 제공>
# 조선 명신 정헌공 임권, 그의 삶과 발자취

「정용재집」의 주인공인 임권은 호는 정곡, 별호는 정용재, 시호는 정헌이다. 때문에 정헌공이라 불린다. 정헌공 임권은 1486년 1월 5일 한성부 진장방 삼청동계 팔판동에서 태어났다. 당시에는 자식을 낳으면 본가를 떠나 외가나 특수관계의 집안에 맡겨 양육하는 일이 많았는데, 정헌공도 태어나자마자 형과 함께 외가에서 양육되다가 4세 때 부친이 문과에 합격함에 따라 다시 올라왔다.

풍천임씨 소간공파 종중.
10세 전후에 '소학과 사서삼경'을 두루 읽었으며 한성부의 5부 학당 중 북학에서 수학했다. 1507년(중종 2) 진사시에 합격하고 1513년(중종 8)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훈련원권지로 임명됐다. 그후 승문원 등 여러 요직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단을 배척하거나 여러 재상의 비리 사실을 논박하는 등 언론의 결기를 보여줬다고 한다.

1519년(중종 14) 사헌부지평으로 있을 때 조광조 등 사림이 정국공신의 개정과 위훈 삭제를 주청하는 공론에 따랐다가 기묘사화 때 헌납에서 승문원박사로 좌천되기도 했다. 1537년(중종 32) 김안로가 실각하고 그의 당여인 허황·채무택 등이 제거되자 복직해 병조와 예조의 참의로 중용됐다.

정헌공은 명종 즉위 이후 공조판서와 의정부 좌우참찬을 지냈다. 이후 정헌대부로 승진해 중종·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1557년(명종 12) 6월 17일 좌참찬으로 직무를 보던 중 사망했고, 8월 22일 경기도 양주 치소의 북쪽 회암면 율정리에 있는 선영 건너편 왼쪽 언덕에 장사를 지냈다. 묘비문은 그의 벗인 양곡 소세양이 지었다. 후일 '조선명신록'에 올랐으며 회암서사에 배향됐다.

# 시문과 상소에 담긴 선비정신

「정용재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된 석인본이다. 권두에는 1935년 6월 송규헌이 쓴 서문과 1933년 5월 후손 연준이 쓴 서문이 있으며 권말에는 후손 진과 형준의 발문이 있다.

시는 모두 38편이다. 첫 시의 세주에서 밝힌 것처럼 '황화집'에 수록된 시들을 추출한 것이 대부분이다. 황화집은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과 이들을 영송한 조선의 접대관들이 서로 주고받은 시와 문을 실은 시문집이다.

1988년 첫 출간된 정용재집.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서(편지)는 세 편의 간찰이다. 첫 번째 편지는 1516년(중종 11) 9월 종형에게 보낸 편지로 승정원 승지로 재직할 때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다. 바쁜 관직 생활 와중에 통정대부와 호군을 제수하는 인사에서 국왕의 결재가 이뤄졌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낸 것이다. 두 번째는 승지 윤개에게 보낸 것이며 세 번째 편지는 왕학이 보여준 시에 대해 사례하는 내용이다. 

소(상소문)는 모두 7편이다. 1517년(중종 12) 10월 부제학 김정과 연명해 이행을 구제하려는 수원부사 이성언을 탄핵하는 상소문 등 여러 소가 담겨 있다. 

전은 국가나 왕실의 경사 때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다. 1551년(명종 6) 3월 실록 편찬을 축하하면서 그 일에 참여한 수찬관에게 임금이 잔치를 내려주자 이에 사례하는 글이다. 이 외에도 연행일기와 실록초(조선왕조실록에서 정헌공 관련 기사를 초출해 정리한 것) 등이 담겼다.

# "3백 년 숙원 결실"…후손들이 밝힌 발간 의미

임동빈 소간공파 종중회장은 발간사를 통해 "양지 바르고 드넓은 언덕 위에 영면해 계신 소간공 그리고 둘째 아드님 정헌공. 그분들의 무궁한 은덕이 자손에게 길이 드리워지고 있는 이때 정헌공의 시문집 '정용재집'의 번역이 마무리됐다. 오랫동안 숙원이었던 이 작업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돼 뜻 깊고 감격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정헌공은 「조선명신록」에 수록된 풍천임씨 3세 4대 명신 가운데 한 분이며 역사에서 강직하고 올곧은 군자로 칭송받고 있다"며 "정헌공의 성품과 포부는 바로 가문의 내력이자 소간공의 가르침이었다. 이 문집이 모쪼록 선조의 행적과 고결한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돼 우리 문중의 자부심을 드높이고 후세에 길이 전해질 보루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동빈 중종 회장이 국역 책자를 들어보이고 있다.
번역에 참여한 이는 풍천 임씨 후손인 임민혁 문학박사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의례문화연구소장과 문화유산공감 대표를 맡고 있다.

임 박사는 "조선시대사를 전공하다보니 종중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무엇이 중요할까 생각해보니 논어에서 말하는 계술이었다"며 "이번 문집 번역에서 선조께서 정치의 혼란에 통곡하고 죽음을 무릅써가면서 직언하며 외교관으로서 임무 완수에 충정을 다하고, 가족을 애틋이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자니 크게 감명받았다"고 전했다.

고문헌 속에 머물던 선조의 기록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는 작업은 단순한 번역을 넘어 역사와 정신을 이어가는 문화적 계승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정용재집」 국역 발간은 조선 선비문화의 한 단면을 오늘에 전하는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된다.

양주=전정훈 기자 jjhun@kihoilbo.co.kr

안유신 기자 ays@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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