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Why] 유럽 의회 훈장 메르켈, 왜 박수 대신 야유 받았나
러 가스에 의존, 에너지값 급등
후임 메르츠도 “탈원전은 잘못”

유럽의회가 유럽 공로 훈장 중 최고 등급 수훈자로 전현직 국가 정상 세 명을 발표했는데 이 중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이름이 호명될 때 의사당에서 야유가 쏟아졌다고 폴리티코 유럽판이 11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은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 의사당에서 신설된 유럽 공로 훈장 올해 수훈자를 발표했다. 훈격이 가장 높은 최고 수훈자로 메르켈과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선정됐는데 메르켈이 호명될 때 의사당 내에선 박수 대신 큰 야유가 터졌다는 것이다. 유럽 의회 의원 숫자는 각국 인구에 따라 배분되는데 독일(13%·720명 중 96명) 비중이 가장 크다.
메르켈에게 쏟아진 야유는 2005~2021년 재임 뒤 퇴임한 그에 대한 평가가 극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폴리티코는 “16년간 총리를 지낸 메르켈은 안정적 리더십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재평가받고 있다”고 했다.
메르켈이 이끌었던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은 이념적으로 중도 우파를 표방하지만 집권기 메르켈의 에너지 정책은 ‘탈원전’을 기치로 내걸었다. 2010년 단계적 탈원전을 기조로 하는 에너지 정책을 세웠는데, 이듬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자 원전 17곳 중 8곳을 즉시 가동 중단하고 나머지 원전도 2022년까지 폐쇄하기로 했다. 러시아 천연가스를 독일까지 직접 수송하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대안으로 삼았다.
당시 미국과 동유럽 국가들은 이 가스관이 유럽의 대러시아 에너지 종속을 가속화하고 러시아의 정치적 무기로 악용될 것이란 이유로 강력 반대했지만 메르켈은 기조를 바꾸지 않았다. 메르켈의 에너지 정책은 재임 시절 높은 국민적 지지에 힘입어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퇴임 이듬해인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독일은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유럽 진영을 압박하고자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차단하자 독일의 전기 요금은 치솟았다. 그럼에도 이미 시작된 탈원전 정책은 그대로 진행됐고, 후임인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의 올라프 숄츠 총리 집권기였던 2023년 4월 마지막 원전이 영구 폐쇄됐다.
원전 폐쇄 뒤 태양광·풍력 등 재생 에너지로 전기 수요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고, 독일이 유럽 주변국의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까지 오면서 독일 정치권에서는 탈원전을 비판·후회하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와 함께 ‘메르켈이 러시아에 지나치게 유화적이었기에 전쟁이 터졌다’는 비판까지 나오면서 메르켈에 대한 성토는 더욱 커졌다.
유럽의회에서 메르켈에 대한 야유가 쏟아지던 날 독일 출신 유럽 지도자들도 잇따라 탈원전에 대한 각성·후회 발언을 내놨다. 메르켈 총리 시절 국방부·노동사회부·가족청소년부 장관 등 요직을 도맡았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민간 원자력 정상회의에서 “유럽이 원자력 에너지를 외면한 것은 전략적 실수였다”고 말했다. 기민당 정권을 이끌고 있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현 독일 총리도 이날 베를린을 방문한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와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폰데어라이엔의 발언에 대해 “같은 의견”이라며 “잘못된 정책이지만, 결정은 돌이킬 수 없다. 유감스럽지만 현실이 그렇다”고 했다.
메르츠는 당내 라이벌이었던 메르켈의 탈원전 정책에 줄곧 비판적이었지만, 현재 해체 작업 중인 원전을 재가동하려면 신규 건설에 버금가는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원전 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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