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대전환, 미래 지도를 그린다] 3. 잠든 남북협력기금, 국제 평화협력의 자산으로

이은경 기자 2026. 3. 1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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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만 가는 평화통일 종잣돈…“국제교류에 활용해야”

'평화·통일 의지'의 실물 증거
기금 18조 육박…인천도 80억
근본적 한계 지적…일부 폐지

現 남북 경색·국제 정세 불안
기금 사용, 국제로 넓혀가야
인천, 中 도시와 협력 필요성

한·중·러·몽 지방정부 협의체
'광역두만강개발계획' 활동 중
한때 北도 동참…좋은 사례 평가
▲ 2025년 12월 4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5차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협의회'에서는 GTI를 동북아의 실질적 협력기제로 발전을 내용으로 하는 모스크바선언을 채택했다. /사진제공=GTI 홈페이지

남북협력기금은 남북의 상호교류와 협력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990년 관련법이 제정되어 1991년부터 조성되었다.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로 가기 위한 여비이자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종잣돈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조성된 금액은 18조에 육박한다.

그러나 실제 목적에 맞게 사용된 금액은 많지 않다. 역설적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이었던 2016년, 개성공단 폐쇄로 가장 많은 돈을 지출했다. 개성공단 투자기업의 손실을 보상하는 남북경제협력사업보험(경협보험)에 써야 했기 때문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지출이 잠시 늘었으나 한반도 정세가 다시 경색되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쓰임새 못 찾는 지방 남북기금

지자체의 상황은 비슷하면서도 더 좋지 못하다. 1998년 강원도가 광역지자체 최초로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조성하면서 다른 광역지자체들도 뒤따랐다. 2003년부터는 파주시를 시작으로 일부 기초지자체에서도 기금이 생겼다. 2004년부터 조성된 인천광역시의 남북교류협력기금은 현재 약 80억원에 달하지만, 주로 시민 대상 사업이나 경상경비로만 쓰이고 있다.

남북관계가 개선된 시기에는 좀 낫긴 했지만, 지자체의 기금 운용은 남북 교류가 주로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 2021년 '남북교류협력법'이 개정되어 지방자치단체를 남북 협력사업의 주체로 명시했으나, 이미 남북관계가 악화일로에 접어든 뒤였다. 지자체 예산도 빠듯한데 쓸모없이 쌓여만 가는 남북협력기금을 다른 곳에 쓰거나 없애자는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 동안 남북의 대립이 고조되면서 기금의 축적과 지출을 중단한 경우가 늘었고 대구, 울산 등은 아예 폐지해 버렸다.

▲닫힌 남북과 불안한 국제 정세

지출 대상이 분명한 만큼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중앙정부의 남북협력기금도,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기금도 갈 곳 없이 쌓여만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히려 북한은 2023년, 대한민국은 적대국이자 교전국일 뿐이라며 통일을 부정하고 남북 교류를 전면 거부하는 이른바 '적대적 두 국가론'을 천명했다. 올해 2월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9차대회에서도 우리 정부의 관계 개선 노력을 폄훼하면서 김정은이 직접 한국을 '영원한 적'이라 부르고 '동족의 범위에서 영원히 배제'한다고 말했다.

국제정세도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4주년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은 멈출 기미가 없고 2023년 팔레스타인에 이어 이란에서도 전쟁이 발발했다. 우리가 위치한 동아시아는 분단된 한반도뿐만 아니라 양안 갈등,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 이 모든 혼란의 구조적 동인인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부딪히는 공간이다. 더구나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 대만을 둘러싼 중·일 갈등의 고조처럼 역내 국가들이 점점 전세계적 분쟁과 미중 패권 경쟁에 얽혀들고 있다.

▲남북기금, 국제평화 용도 넓혀야

운용 수익이나 기부도 있지만 두 기금은 대부분 정부 출연금으로 채워진다. 언제 실제 목적에 사용될 수 있을지 모를 기금에 국민의 세금을 계속 투입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실물 증거로서 수십 년 축적된 기금을 폐기하기에는 그동안의 노력과 인내가 너무 아깝다. 자칫 우리조차 평화와 통일로부터 돌아섰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사용 범주를 넓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교류협력에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북한의 적대적 태도가 여전한 데다 국제질서가 힘의 논리로 점철되고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지금, 평화에 대한 기여가 먼 미래의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실천 방안일 것이다.

또한 본디 우리의 통일은 평화를 대전제로 삼고 있다. 자의적인 기금 전용이 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지만, 각국의 상호 감정과 이해를 향상시킬 수 있는 청년 교류나 문화·체육 활동, 보편적 휴머니즘에 기초한 보건·의료 지원, 기후변화 대응 등에 일부를 사용해 보는 것이 어떨까? 이웃 국가의 참여까지 끌어들여 공동의 작은 평화를 지향하는 국제기금을 조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천이 시작할 수 있는 협력 모델

인천을 비롯한 지자체가 앞서갈 수도 있다. 관련 조례를 개정하여 남북교류협력기금 일부를 국제 평화협력기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현재 진행 중인 한중FTA 2단계 협상 과정에서 한중 지방정부 평화협력기금 조성을 제안하고, 한중FTA 지방협력 시범지구인 인천이 중국 도시들과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동일한 금액을 출자해 공동 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국제 평화협력은 북한의 참여를 유도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2018~2019년 남북관계의 훈풍이 가장 강했던 시기에도 중앙정부 이외의 남북 교류 구상은 주변 국가와 국제기구를 경유한 다자 협력 형태가 많았고, 실제 접촉 역시 중국 동북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국·중국·러시아·몽골이 참여하는 접경협력플랫폼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에는 북한도 과거 참여한 바 있다. 인천을 비롯한 4개국 14개 지방정부가 GTI 지방정부협력체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앙과 지방이 함께하는 동북아 국제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국제 평화협력기금은 현재와 같은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도 다자 협력을 통해 북한을 협력의 틀로 유도하고, 평화를 통해 통일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형진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광역두만강개발계획 (GTI·Greater Tumen Initiative)

한반도 북부, 중국 동북, 러시아 극동을 연결하는 접경 개발·경제협력을 위한 다자협의체. 1992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동북아 접경협력 구상에서 출발했다. 현재 한국·중국·러시아·몽골이 참여하고 있으며 인천을 포함한 14개 지방정부가 산하의 지방정부협력위원회(LCC)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은 2009년 탈퇴했으나, 한반도 정세 완화 시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국제 평화협력플랫폼으로 평가된다

조형진 교수는

인천대학교에서 중국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현대중국학회 총무위원장이자 인천대 중국연구소 소장이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중국정치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중국 대한민국대사관 선임연구원, 중국학술원 부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중국 중산대학과 대만 정치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있었다. 현재 중국의 국내 정치와 농촌 문제, 한중 관계 등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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