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에세이〉“잃을 수 없는 셰익스피어”…영화 ‘햄넷’의 헌사
김정숙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영화의 첫 머리에 16~17세기에는 '햄넷'과 '햄릿'을 함께 사용했다는 자막이 등장한다. 영화는 사전정보가 없어도 16~17세기가 배경임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이 주된 소재임을 단박에 짐작하게끔 한다.
어머니로부터 약초의 효능을 배우고 숲의 정령마냥 영적인 능력을 타고나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네스(배우 제시 버클리). 그녀는 아름드리 나무둥치의 뿌리와 뿌리 사이 마치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움푹 패인 곳에서 낮잠을 즐기고 맹금인 매를 손 위에 올려 먹이를 주는 자연인 처녀다.
어느날 아네스가 궁금해진 마을의 라틴어 교사 윌리엄 셰익스피어(배우 폴 메스컬). 윌은 아네스에게 죽은 아내를 저승에서 되살려온 최고의 로맨티스트 오르페우스 신화를 들려준다. 어쩌면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살려낸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이들에게 상징이 되고, 영화의 복선일 수 있다. 급기야 둘은 사랑에 빠져 8살 연상인 나이차,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숲에서 산고를 치르고 태어난 맏딸 수재나(아역배우 보디 레이 브레스낙)에 이어 이태 후에는 쌍둥이 남매가 태어난다. 쌍둥이 남매가 태어나던 날, 동생으로 태어난 딸아이가 숨을 쉬지 못한 채 죽은 상태였지만, 아네스는 아이를 떼놓지 않고 기어이 살려낸다. 숲의 정령이기에 앞서 어머니의 간절함이 빚어낸 결과이리라.
쌍둥이 남매인 햄넷(아역배우 자코비 주페)과 주디스(아역배우 올리비아 라인스)는 곧잘 역할을 바꿔 가족들을 못 알아차리게 하는 놀이를 하곤 한다. 햄넷은 아빠와 함께 무대 위 배우처럼 검을 휘두르는 놀이를 즐긴다. 이 놀이들 역시 복선에 해당한다.
윌은 가장으로서 일을 해야 하는데, 가업인 가죽세공이 숨막히게 싫을 뿐 아니라 글쓰기도 여의치 않아 폭발 직전이다. 이를 잘 아는 아내 아네스는 윌을 런던으로 보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도록 내조하기로 한다. 쌍둥이딸 주디스의 태생적 허약함 때문에 엄마 아네스는 아이 셋과 함께 스트렛퍼드에 남기로 하고. 윌이 떠난 후, 집안에 우환이 깃든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어찌 행복한 일만 있을 수 있으랴. 행복이란 99%의 우여곡절 속에 1% 피어나는 짤막한 찰나인지도 모른다.
영화 말미에 '극중극'이 등장한다. 우선, 16~17세기 런던의 극장 풍정이 인상적이었다. 의자 없이 서서 관람하는 구조라는 점도, 로얄석인 2층과 3층도 마찬가지인 입식 구조라는 것도 과거의 런던을 들여다보는 흥미가 새로웠다. 무대 맨 앞줄은 팔꿈치를 기댄 채 관람할 수 있어서 무대와 객석의 공간적 간극이 없었다.
무대에 팔을 기대고 관람하던 배우 폴 메스컬의 연기가 압도적이었다. 그녀가 팔을 벋어 햄릿 배우(배우 노아 주프)에게 손을 내밀자 배우의 눈빛과 그녀의 눈빛이 따사롭게 교차한다. 그녀뿐 아니다.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햄릿 배우를 향해 손을 벋는다. 무대 예술에만 일어나는 소통된 공감과 현장의 감동이다.
"영국은 인도를 잃을지언정 셰익스피어는 잃을 수 없다"는 토마스 칼라일,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언급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위대함을 대변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한 논문이 영문학사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위대한 극작가였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학력이 일천한 한 인간이 52년을 살면서 38편의 장막 희곡과 154편의 소넷(sonnet), 장시 2편을 써낼 수 있을까 싶어, 그의 작품을 두고 가짜라는 설마저 있다.
셰익스피어는 고등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음에도 타고난 언어구사 능력이 있었고 연극배우와 극작활동을 겸한 만큼 무대예술에 대한 천부적 감각이 있었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 만큼은 대학을 나온 학식 있는 대학재사들을 뛰어넘었다. 그는 무한한 모순의 복합체로서 인간을 내면의 명징한 관념으로 드러내고 있다. 인간에 대한 치열한 인식이 당대로부터 낭만주의-실존주의-포스트 모더니즘을 관통하는 오늘날까지 이어짐으로써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고전임을 체현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