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시대, 비무장지대의 위기와 기회 [김연철 칼럼]

한겨레 2026. 3. 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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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9일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에 위치한 판문점에서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 대원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전쟁의 시대다. 협상은 폭격을 위한 속임수고, 외교는 길을 잃었으며, 결국 군사만 남았다. 언제나 전쟁의 시작은 선택이지만, 전쟁의 끝은 알 수 없다. 전쟁이 또 다른 전쟁을 낳는 이유는 폭력의 상처 때문이다. 개인 혹은 집단 차원의 상처는 힘으로 누를 때는 잠복했다가 어느 순간 역사의 복수로 분출한다. 스스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다. 동시에 작은 불씨라도 적극적으로 찾아서 꺼야 한다.

물론 중동과 동아시아의 차이만큼 이란과 북한도 다르다. 북한은 이란과 달리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다. 군사력 차원에서 ‘억지의 균형’이 유지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균형은 불안정하다. 미국의 이익만 앞세우는 달라진 미국이 핵우산, 즉 확장 억지를 계속 제공할지 의문이다. 제공한다 해도 값은 올라갈 것이다. 유럽처럼 미국을 대신해서 핵우산을 제공하는 프랑스가 동아시아에는 없다. 핵무기의 확산이 구조적으로 어렵지만, 확산의 의지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동전쟁에서 ‘연루’의 위험성이 눈앞에 펼쳐졌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상호 합의가 필요하고, 작전통제권 환수를 서둘러 군사주권을 회복해야 한다. 동북아시아의 대립과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외교적 역할을 넓히고, 남북 관계의 안정적 관리도 더욱 중요해졌다.

현재 충돌의 가능성이 높은 공간은 비무장지대다. 북한은 2024년 10월부터 적대적 두 국가를 주장하면서, 군사분계선을 국경으로 만들고 요새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연결을 끊고 지뢰를 매설하고 장벽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얼마 전 9차 당대회에서 국경의 요새화를 다시 강조했다.

비무장지대는 면이다.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은 철조망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으나 군사분계선은 그렇지 않다. 1953년 정전협정이 맺어질 때 1292개의 군사분계선 표지물을 설치했다. 그동안 부서지거나 비에 떠내려가서 지금은 200개도 남지 않았다. 오랜 세월 충돌의 가능성 때문에 유지·보수가 어려웠다. 대화의 시대에는 비무장지대라는 면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군사분계선이라는 선이 중요하지 않았다.

북한이 두 국가를 주장하면서, 면이 아니라 선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안타깝게도 군사분계선은 구조적 오차가 존재한다. 1953년 당시 표지물을 설치할 때도 선이 묘지나 마을을 관통하면 지형에 따라 북쪽이나 남쪽으로 옮겼다. 표지물이 사라진 상황에서 유일한 합의의 기준은 정전협정 당시 군사분계선을 그린 지도다. 그러나 축척 5만분의 1 지도에서 볼펜이 그은 선의 실제 폭은 50m다. 오차 범위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정전협정 이후 7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물길이 달라지고 습지가 이동하고 지형이 변했다. 그동안 유엔사 차원에서 혹은 국내적으로 측지계를 활용해서 군사분계선 지도를 수정했다. 물론 유엔사와 우리 군의 군사 지도가 다르다. 당연히 북한과 합의한 적은 없다.

작년에 북한이 국경화 작업을 하면서, 10여차례 충돌이 벌어질 뻔한 결정적 이유도 남북한이 생각하는 군사분계선이 달라서다. 북한의 공사 인력이 기준으로 삼는 선은 우리가 정한 군사분계선과 달라서, 결과적으로 ‘침범’이 발생한다. 그때마다 우리 군은 정해진 규정에 따라 경고 방송과 경고 사격을 했다. 2025년 11월 국방부가 군사분계선을 둘러싼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군사 회담을 제안한 이유다. 북한은 응답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 쪽의 경고 사격에 대해 유엔사에 항의했다.

현재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열려 있는 소통 창구는 북한과 유엔사의 전화다. 매일 오전과 오후 두번 정상적으로 통신 점검을 한다. 유엔사가 비무장지대의 충돌 방지를 위해 권한만 내세우지 말고, 정해진 책임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남북한과 유엔사가 한자리에 모여서 군사분계선을 합의해야 우발적 충돌을 막을 수 있다. 남한은 북한에 대화를 제안하고 북한은 유엔사에 항의하는 3자 간의 불통을 반복할 때가 아니다.

비무장지대는 충돌을 방지하는 완충 공간이다. 북한은 두 국가의 국경으로 선을 주장한다. 서해 해상 경계선은 1953년에도 합의를 못 했고, 육지의 군사분계선도 구조적 오차가 존재한다. 그동안 선의 한계를 면의 지혜로 보완했다. 면은 충돌을 예방하고 흡수하지만, 합의 없는 선은 대결의 불씨다. 당장 충돌을 막는 선을 합의하기 위해 모여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한 새로운 면의 설계가 필요하다. 선을 둘러싼 위기를 면을 위한 기회로 전환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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