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백성이 함께 살려던 성"…북한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마지막 관문' [로컬이슈]

이나경 기자 2026. 3. 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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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수도성곽’ 세계유산 등재 눈앞
숙종, 병자호란 교훈... 백성 위한 방어 구축
한양도성·북한산성·탕춘대성 연결한 성곽
발굴 조사·복원으로 북한산성 가치 재조명
조선 자주국방 의지·국가 운영 주체성 눈길
북한산성의 성벽. 한 타에는 총을 쏘는 세 개의 구멍이 있는데, 가운데는 근총안으로 가까운 적을 양 옆은 원총안으로 멀리 있는 적을 조준한다. 홍기웅기자

4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와 서울 은평구 사이에 자리한 북한산국립공원 초입은 평일 오전임에도 등산객들로 붐볐다. 산길을 확인하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안내판 앞에 모여 있었고, 중장년층 한국 등산객들 사이로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가 섞여 들렸다. 케이팝과 드라마로 시작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이제는 자연과 역사, 문화유산을 직접 경험하는 여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도심을 병풍처럼 둘러싼 북한산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뜻밖의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바위 능선을 따라 이어진 돌 성벽이다. 수백년 전 수도 한양을 지키기 위해 쌓은 북한산성이다. 이 성곽은 지금 ‘한양의 수도성곽(Capital Fortifications of Hanyang)’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향한 마지막 절차를 밟고 있다. 박현욱 경기문화재단 경기역사문화유산원 책임연구원과 함께 북한산성 일대를 걸으며 이 성곽이 품고 있는 역사와 의미를 되짚어봤다.

북한산성의 6개 대문 가운데 정문에 해당하는 대서문. 홍기웅기자

■ 병자호란의 교훈... 숙종이 구축한 수도 방어 체계

북한산성의 시작은 조선이 겪은 전쟁의 기억에서 비롯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조선은 수도 방어 체계의 취약성을 절감했다. 특히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지만 수도와 백성을 함께 보호하지 못했던 경험은 조선 사회에 큰 교훈으로 남았다.

숙종은 왕만 피신하는 성이 아니라 백성까지 함께 지킬 수 있는 방어 체계를 구상했다. 그 결과 구축된 것이 ‘한양의 수도성곽’이다.

행정 중심지인 한양도성, 군사 방어 거점인 북한산성, 그리고 백성의 피난과 장기전에 대비한 창고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탕춘대성이 서로 연결된 수도 방어 체계다. 위급 상황에서 수도 인구 전체를 산성으로 피난시켜 장기전에 대비하는 전략이 담겨 있다. 북한산성은 단순한 산성이 아니라 수도와 백성을 함께 지키기 위해 구축된 방어 체계의 핵심 거점이었던 것이다.

대서문을 지나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거대한 돌 성벽이 바위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성벽을 이루는 돌 하나하나가 성인 키만큼이나 크다. 수백년의 세월을 버텨온 돌 사이에는 이끼와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북한산성 성곽은 북한산 능선을 따라 약 11.6㎞에 걸쳐 이어진다. 해발 80m에서 830m까지 이어지는 험준한 산세 위에 세워졌다. 낮은 지대에서는 성벽을 높게 쌓고 능선이 높아질수록 성벽 높이는 낮아진다. 산 자체가 방어벽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성벽을 이루는 돌의 크기도 이전 시대보다 훨씬 크다. 조총과 화포가 등장하면서 전쟁 양상이 바뀌자 화포 공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성곽 구조가 변화한 것이다. 실제로 일부 성벽에는 6·25전쟁 당시 포탄 흔적이 남아 있다.

북한산성 북문. 훈련도감 유영과 상운사에서 북문지역 수비와 관리를 맡은 것으로 파악된다. 홍기웅기자


■ 백성 향한 의지, 동아시아서도 보기 드문 체계

성벽 곳곳에는 ‘총안’이라 불리는 사격 구멍이 설치돼 있다. 가운데는 가까운 적을 겨냥하는 근총안, 양옆은 먼 적을 겨냥하는 원총안이다.

북한산성 방어는 조선 후기 수도 방위를 담당했던 삼군영 체제와도 연결된다.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 세 군영이 성곽 구간을 나눠 맡아 방어를 담당했다. 박 연구원은 성벽을 가리키며 “오늘날로 치면 수도방위사령부와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며 “북한산성은 수도 한양을 지키는 외곽 방어 거점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승려들이 함께 산성을 지켜 왔다.

수도 전체를 방어하기 위한 성곽 체계라는 점에서도 ‘한양의 수도성곽’은 동아시아 성곽 가운데서도 독특한 사례로 평가된다.

중국의 경우 베이징 성벽처럼 거대한 평지 성곽이 중심이었고 일본은 천수각을 중심으로 한 성곽 방어 체계가 발달했다. 반면 한양은 도성을 중심으로 외곽 산성과 보급 성곽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수도 전체를 방어하는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 잊힌 성곽에서 세계유산으로

북한산성의 가치가 항상 주목받았던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성곽과 행궁 유적 상당수가 훼손됐고 오랫동안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 역사 속에서 잊혀질 뻔한 유산이었다. 이후 발굴 조사와 복원 정비 사업이 이어지면서 북한산성의 가치가 다시 조명되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산성 행궁지 발굴을 통해 조선 후기 산성 운영 체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들이 확인됐다.

현재 북한산성은 한양도성, 탕춘대성과 함께 길이 42.75㎞의 ‘한양의 수도성곽’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기도와 고양특례시, 서울시, 국가유산청이 협력해 공동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서로 다른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성곽이지만 조선 후기 수도 방어 체계라는 하나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된 유산이기 때문이다. 

박 연구원은 “수도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구축된 성곽 체계는 조선의 자주국방 의지와 국가 운영의 주체성을 보여주는 역사”라고 설명했다.

원효봉 정상에 오르자 현대의 도시민들 사이로 수백년 전 곳곳을 누볐을 백성과, 태평성대에도 전쟁에 대비해 만들어진 길다랗고 험준한 봉우리를 아우른 성곽이 내다 보인다. 한양을 지키기 위해 쌓았던 돌 성벽은 이제 그 역사와 의미를 세계와 공유하는 순간을 앞두고 있다.

(아래에서 위로) 한양도성~탕춘대성~북한산성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수도성곽’이 담긴 지도. 경기문화재단 경기역사문화유산원 제공

박현욱 경기역사문화유산원 책임연구원 “북한산 찾는 사람에게... 성곽 이야기 전할 것”
지난 4일 북한산성에서 박현욱 경기역사문화유산원 책임연구원이 한양의 수도성곽 체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가 등지고 있는 대서문은 1712년 숙종이 행차 당시 성내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한 북한산성의 정문이다. 대서문~중성문~대남문에 이르는 길은 어영청 유영이 관리했다. 이나경기자

북한산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은 서울과 경기 북부를 내려다본다. 연간 수백만명이 찾는 산이지만 오랫동안 이곳에 거대한 조선의 산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 잊혀진 유산을 10년 넘게 붙잡아온 사람이 있다. 박현욱 경기문화재단 경기역사문화유산원 책임연구원이다. 그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한국위원회 이사로도 활동하며 ‘한양의 수도성곽’ 세계유산 등재 작업을 이끌고 있다.

박 연구원이 북한산성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11년. 경기문화재단 북한산성 문화사업팀으로 발령받으면서였다. 당시 북한산은 ‘등산의 명산’으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정작 산성의 실체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기본적인 자료조차 정리돼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가장 기초적인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성곽 전체를 새로 측량하고 서울시와 고양시의 행정 경계까지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 알려졌던 경계선이 잘못 그려졌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사람들이 산등선을 경계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측량해 보니 아니었습니다. 지적을 다시 맞추면서 지도 자체가 바뀌었죠.”

이후 북한산성 행궁지 발굴과 성곽 보수 정비가 이어졌다. 2012년부터 시작된 행궁지 발굴은 여러 차례 조사를 거쳐 현재까지 복원과 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도 본격화됐다. 처음에는 북한산성 단독 등재를 시도했지만 한양도성과 함께 ‘한양의 수도성곽’으로 묶어 추진하라는 권고를 받으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서울시, 고양시, 국가유산청 등 여러 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작업이었다.

세계유산 등재 과정은 흔히 ‘외교전’에 비유된다. 각국이 자국의 유산을 등재하기 위해 경쟁하고 견제하기 때문이다. 한중일은 특히 세계유산 등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서 서로 경쟁 의식도 있고 견제도 심하다. 하지만 박 연구원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교 전략’이 아니라 유산 자체의 가치라고 강조한다. 그는 “외교적인 수사로 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유산이 가진 가치와 보존 관리가 제대로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양의 수도성곽’은 세계유산 등재의 마지막 단계에 가까워졌다. 오는 9월에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현지 실사가 예정돼 있다. 실사단은 한양도성과 탕춘대성, 북한산성까지 약 43㎞에 이르는 성곽을 직접 확인한다. 이를 대비해 연구진은 모의 실사와 전문가 점검을 반복하며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내년 7월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10년 넘게 이어온 연구의 시간 속에서 그는 세계유산 등재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한다. “세계유산 등재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성곽이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인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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