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치유받았어요” 겹겹이 쌓은 선과 빛으로 세상과 호흡
어릴 적 사촌형을 따라 시작한 미술
관찰력 다지고 대회 수상으로 자존감 키워
소묘 통해 사물 이해하고 탐구로 확장
분주한 학교 밖에서 찾은 집중의 시간
“다른 이들도 그림으로 안정과 행복 느끼길”
경남도민일보는 BNK경남은행·경남교육청과 함께 '청소년 드림스타'를 만납니다. 재능이 있고 자신의 꿈을 향해 묵묵히 달려가는 학생들을 응원하는 기획입니다. 많은 관심과 박수를 부탁합니다.

차곡차곡 쌓아온 8년의 시간
유겸 학생은 여섯 살 때 처음 미술학원에 다녔다. 한 살 위 사촌형을 따라간 것이 시작이었다. 크레파스로 색을 칠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사촌형이 그림을 그리는 게 멋있어 보여서 같이 시작했는데, 해보니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후 한 번도 그림을 놓은 적이 없다. 영어학원과 태권도학원도 다녔지만, 끝까지 남은 것은 미술이었다.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2학년이 된 지금까지 8년 가까운 시간을 그림과 함께해왔다.
수채화와 풍경화, 일러스트 등 다양한 장르를 경험했다.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소묘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학원 수업도 대부분 소묘 위주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는 1년 남짓 됐다.
소묘는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연필로 빛과 어둠을 표현하며 입체와 질감을 완성해야 한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유겸 학생을 가르친 유병희 미술학원 원장은 "사진처럼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요. 높은 집중력과 끈기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학생 대부분 긴 작업 시간에 지루함을 느끼지만 유겸 학생은 다르다. 한 번 자리에 앉으면 두 시간 수업 동안 거의 자리를 뜨지 않는다. 화장실을 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끝까지 집중한다.
명암을 한 단계씩 쌓아가는 반복 과정도 묵묵히 이어간다. 지도 교사는 그를 '가장 성실한 학생'이라고 평가했다. 완벽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성향 탓에 작업 시간이 길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만족도도 높다.

작품으로 드러난 관찰의 힘
유겸 학생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작품은 '소화기'를 그린 그림이다. 원기둥과 구, 사각형 등 다양한 기하 형태가 한 대상 안에 담겨 있어 구조가 복합적이다. 소묘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완성한 작업이다. 투박하지만 형태를 정확히 잡아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서 '끝까지 해냈다'는 성취감이 더욱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기술적 완성도보다 스스로를 넘어선 경험이 더 크게 남아 있다.
'망치' 작품 역시 그에게 의미 있는 작업이다. 금속에 맺힌 반사광과 손잡이의 질감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이전보다 한층 성장한 표현력을 보여준다. 밝음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입체감을 살려냈다.
유겸 학생은 기억 속 이미지를 옮기기보다 눈앞의 대상을 다시 바라보며 그린다. 사과를 그릴 때도 익숙한 형태 대신 표면의 굴곡과 그림자의 흐름을 세심하게 살핀다.
최근에는 묘사를 넘어 구조와 기능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이 나사는 왜 여기에 있을까?', '이 부분은 어떤 역할을 할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물의 원리를 이해하려는 태도다. 관찰이 자연스럽게 탐구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유겸 학생이지만, 그림 대회에서 상을 받을 때만큼은 다르다. 상장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표정이 한층 밝아진다.
"그림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노력한 만큼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서 정말 뿌듯해요."

종이 위에서 피어난 치유
유겸 학생에게 그림은 마음을 다잡는 시간에 가깝다. 종이와 연필 앞에 앉으면 복잡한 생각이 잦아든다. 학교의 분주한 분위기와 달리 학원에서는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어 한결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명암을 차곡차곡 쌓는 과정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보다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가 더 편안해요.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으면서 스트레스도 풀려요."
그는 그림을 진지하게 대한다. '내 손이 가장 소중하다'고 할 만큼 애착이 깊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이제 미술이 내 진로다"라고 말한다.
장기적으로는 미술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넘어 자신의 길로 삼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특히 관심을 두는 분야는 건축과 구조물이다. 풍경화보다 아파트와 주택, 다리나 도로 설계 같은 대상을 즐겨 그린다. 자연은 바라보는 대상이지만, 건물은 직접 설계하고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다.
특히 직선적이고 질서 있는 구조, 견고한 형태에서 심리적 균형을 찾는다. 자신이 설계한 집이 실제로 세워지는 미래를 그려본다. 종이 위의 선이 현실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에게 그림은 일상의 '충전'이다. 학원에서 작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다시 연필을 잡고 싶어진다.
"미술로 치유를 받았어요. 다른 사람도 그림을 통해 안정과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유겸 학생은 변함없이 종이 위에서 선을 쌓고 빛을 찾는다. 연필을 쥔 소년은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세상과 맞닿아 간다.
/문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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