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경 칼럼] 나이 들면 불행한가?

디멘시아뉴스(dementianews) 2026. 3. 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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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

늙으면 불행한가?
나이가 들수록 표정이 점차 옅어진다. 눈과 귀가 어두워지니, 글자도 잘 안 보이고, 남의 말도 잘 못 알아듣는다. 잘 안 들리다 보니 어쩌다 입을 열어 내놓는 말이 어눌하다. 예전처럼 움직임이 수월치 않아 넘어지기 쉽고, 뼈마디가 연결되는 곳은 다 저리고 쑤신다. 균형이 잡히지 않아 지팡이나 보행기의 보조를 받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 자주 들락거리고, 먹는 약 종류가 점점 많아진다. 젊은 날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 땅에 남아 있는 날 수가 많지 않다.

사회적으로 한때 유능했던 사람도 이제는 이름도 빛도 없이 잊히고, 점점 힘이 없어지는 경제력은 심리적인 유약함을 더해 준다. 점차 친구도, 가족도, 만날 사람도, 기회도 줄어드니 막막하고 외로운 날의 연속이다. 상실의 연속이다.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 이렇게 많은 것을 잃어가는 고령자는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닌, 답답하고 처량한 존재라고 볼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집이 아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돌봄을 받거나 수술이나 지병으로 병원에 오래 입원하게 되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답답함과 슬픔, 불행 덩어리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노년은 흥미롭게도 여유롭고, 안정되고, 행복하기까지 하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게 불편하고 외로워 불행하고 슬플 것만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나이 든 사람들이 흔히 농담처럼 젊은이들을 향해 하는 말이 있다.
"너희는 늙어 보았느냐? 나는 젊어도 보았다."
젊은 그들은 늙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절대 알 수가 없다.

존 릴런드(John Leland) 기자는 자신이 55세 되던 해, 꼬박 1년 동안 85세 이상 노인 여섯 명을 집중적으로 취재해 <뉴욕타임즈>에 6부작 기사로 연재했고, 이를 책으로 엮어 냈다. 취재 전, 그의 생각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년에 대한 이미지와 다르지 않았다. 나이가 85세가 넘으면 더 이상 기대할 게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다. 86세인 자신의 어머니도 홀로 고령자 아파트에 살고 있고, 수없이 낙상해 병원 신세를 지는 바람에 자신이 틈틈이 돌봐드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릴런드 자신의 결혼생활도 꼬일 대로 꼬여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85세 인생에 대한 예측이나 기대는 뻔한 것이었다.

《만일 나에게 단 한 번의 아침이 남아 있다면》이라는 그의 책 원제는 'Happiness Is a Choice You Make'이다. 행복은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라는 뜻의 이 책에서, 저자는 여든다섯, 그 너머(85 & Up)의 서로 다른 삶의 경험과 배경을 가진 노인 여섯 명을 인터뷰하며 결국은 자신의 삶이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알게 된다. 이 특별한 인생 수업을 통해 작가는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아가는 현명한 태도와 지혜, 삶의 가치에 대해 수없이 물으며 진중하게 깨달아 간다. 행복해야 할 이유에 대해 분명하고도 명철하게 일깨우는 그의 인터뷰는 기사 연재 당시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했다.

인터뷰에 응한 여섯 명은, 고령에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집 밖으로는 아예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 사람, 마작 선수, 홀로코스트 생존자, 차를 마시며 춤을 추는 사교 모임을 즐기는 사람, 동성애자 파트너를 떠나보내고 그를 추억하며 사는 남자 등 다양했다.

작가는 이 노인들과 시간을 보낼수록 인생의 지혜를 배워갔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은 관계를 정리하고, 정말 좋은 것만 남기며, 쓸데없는 경쟁을 하지 않으니, 젊은이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끼고 부정적인 감정은 덜 느낀다는 점이다. 현실에 만족하고 덜 불안해한다. 죽음에 가까워졌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적었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이 좋아하고 지금도 할 수 있는 무언가에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죽음을 말하지만, 그것은 곧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의 동의어였다.

자립적인 90세 할머니는 늘 잔소리를 하며 도와주려는 딸에게 말했다. "난 네 나이였던 적이 있지만, 너는 절대 내 나이였던 적이 없잖니."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노인들이 더 만족하는 이유는 '사회정서적 선택성(socioemotional selectivity)' 때문이다. 스탠퍼드 대학 장수 연구센터의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슨(Laura L. Carstensen)의 연구에 따르면, 시간이 유한하다고 느낄수록 의미 있는 관계와 현재의 만족에 집중하기를 선택한다고 한다. 고령자들은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당장 즐거울 수 있는 일에 에너지를 집중한다. 앞날에 갈 길이 먼 젊은이들은 비록 쓸모가 없어도 새로운 경험 지식을 쌓아야 하니 초조하고 불안한 것과 대비된다.

고령자들은 선택적으로 잊어버리기도 한다. 불행했던 과거를 한탄하며 후회하기보다는 행복했던 기억만 반복해 이야기하는 지혜로운 노년이 되길 바란다. 이러한 태도는 강화 효과까지 있어 실제로 자신을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 후회되는 일은 없느냐는 질문에, 어차피 과거로 돌릴 수 없으니 그럴 수는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요양원에서 지내는 헬렌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지내는 하위라는 할아버지와 결혼하겠다고 하여 딸과 갈등을 빚는다. 그러나 그런 장애가 할머니를 불행하게 하지도 않으며, 그 장애를 극복하고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그 상태,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사랑을 주고 돌봐주고, 그리고 사랑을 받는 오늘 이 순간이 그들이 선택한 행복인 것이다.

코넬 대학의 노년학 연구자 칼 필레머(Karl Pillemer) 교수는 인터뷰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태도를 크게 두 방향으로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과 '그래야만 행복'이다. 아마도 'in spite of' happiness와 'because of' happiness를 말하는 것 같다. 전자는 노년의 즐거움이고, 후자는 젊음의 괴로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마음먹기에 따라 선택할 수 있지만, '그래야만 행복'은 행복의 이유가 외부에 있다. 돈, 건강, 좋은 배우자, 좋은 집이 충족되어야 얻어지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감수하고'라고 번역하고 싶다.

사람들은 결혼한 부부에게 묻는다. 무엇이 좋아서 결혼했느냐고. 키가 커서, 성격이 좋아서, 친절해서, 잘생겨서, 나랑 닮아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두 'because of'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조건을 '감수하고' 함께하는 사랑이다. 키가 작지만, 집안이 가난하지만, 공부를 덜 했지만, 지금은 가진 게 없지만, 함께 살아가 보겠다는 결심, 그것이 진정 결혼의 조건이 아니었던가.

이것을 나이 듦에 적용하면, 노년의 행복은 몸이 건강해서, 친구가 많아서, 경제력이 막강해서, 미래가 창창해서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사라져 감에도 불구하고 자족하고, 더 소중한 가치를 찾아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음으로 행복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나이 들면 불행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이것이 인생의 비밀이고 신비함이다.

 

신은경
전 KBS9시뉴스 앵커
전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KYWA) 이사장
1981년 KBS 8기 아나운서, 3개월 연수 후 KBS 9시 뉴스 앵커로 12년간 뉴스 진행
《9시 뉴스를 기다리며》, 《홀리 스피치》, 《신은경의 차차차!》, 《내 나이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 《잠언 읽고 잠언 쓰자》, 《시편 읽고 시편 쓰자》 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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