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빅뱅 같은 일출을 줄게[여행스케치]

● 그 일출, 끓며 넘치며
동남쪽 멀리 득량만(得糧灣)이 보인다. 장흥 출신 소설가 이승우는 한 작품에서 이런 광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산이 ‘자신의 품을 활짝 열어 옷자락 속에 품고 있던 바다를 꺼내 보인 것처럼 여겨졌다.’
구름 장막은 다 걷히지 않았다. 득량만 바다와 섬들 위로 몸을 막 일으킨 해가 그 틈새로 노랗다가 불그스름하다가 벌겋다가 시뻘건 색을 드러낸다. 빛이 용암처럼 끈적거리듯 퍼진다. 역광을 받아 어두운 구름층과 수평선 사이 좁고 평행한 공간에 붉은 우리은하가 생긴 듯하다. 득량도와 그 너머 고흥반도가 태초의 땅처럼 신비롭고 아득하다. 빅뱅 순간이 이랬을까.

다시 남으로 고개를 향한다. 능선이 아낙네 치맛자락처럼 부드럽게 사방으로 펼쳐지듯 내려온다고 해서 억부산(億婦山)으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역시 그렇다. 그 너머로 언덕 같은 산들이 구불구불 점점 낮아지며 끝내는 바다로 들어가 자취를 감춘다. 궁금해진다. 저것은 산줄기가 바다로 내려간 것이냐, 섬 줄기가 뭍으로 올라온 것이냐.

● ‘보배로운 숲’에서 소통을 느끼다
그 깨달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보림사(寶林寺)다. ‘왜 달을 보지 않고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느냐.’ 깨침은 경전(손가락)이 아니라 불성을 지닌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에 있다는 선불교(선종)는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이 땅에 퍼졌다. 9산선문이다.
그중 가장 먼저 오늘날 조계종을 연 승려가 도의(道義)다. 보림사는 도의선사가 개창(開創)하고 그의 3대 법손(法孫) 보조선사 체징(體澄)이 실질적으로 문을 열었다(이일야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 조계종출판사, 2016).

그런데 보림사 금당은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이다. 비로자나불은 선종과 대립하던 교종 중 ‘화엄경’을 근본으로 삼는 화엄종 부처다. 모순된 두 사상이 만나 하나를 지향하는 회통이다. 인간 본질은 부처라는 선종과 인간을 비롯한 온 세계가 불성의 현현(顯現)이라는 화엄종은 모두 ‘본래 부처’라는 생각에서 통한다(‘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

철로 만든 불상은 국내에 몇 없다. 높이 252cm, 약 1.5t의 철이 들어간 불상은 도금하지 않아 표면이 거칠고 투박하다. 더 인간적이다. 대적광전 마룻바닥에 앉아 지그시 바라본다. 고동색 철불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 매생이, 김, 굴
2년 전 장흥을 처음 찾았을 때도, 이번에도 첫날 점심은 굴구이였다. 드럼통을 30cm 높이로 잘라 철판을 얹고 그 위에 굴을 좍 깐다. 익으면 껍질이 살짝 벌어진다. 목장갑 낀 손으로 잡고 열어젖히면 매끄러운 굴 살이 반짝인다.


해산물 양식은 종류에 따라 기르는 수심이 다르다. 매생이, 김, 미역, 굴 순으로 깊어진다. 같은 바닷물이라도 깊이에 따라 길러내는 산물이 다르다. 그런 차이가 양식이라는 틀로 한데 묶여 밥상에 오른다.

● 섬을 핥는 바다 소리
지방 소도시에 이른바 힐링 치유 또는 웰니스 증진을 표방하는 시설이 늘고 있다.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 지원하는 사업이다. 스트레스 검사를 비롯한 건강검진, 명상이나 요가, 한방 족욕, 마사지 테라피 등을 받을 수 있다. 산이나 바다 기운도 받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는다. 장흥에도 힐링테라피센터와 원광대 장흥통합의료병원 마음건강치유센터가 있다.

사실 억불산 전날 일출로 유명한 소등섬을 찾았다. 일몰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물때를 못 맞췄다. 썰물이어서 소등섬은 갯벌에 ‘박혀’ 있었다. 장흥이 낳은 원로 작가 한승원은 고향 바닷가를 작품 배경으로 많이 삼았다. 한 단편에서 그는 ‘파도가 돌담을 핥을 때는 사르륵 소리가 난다’고 했다. 바닷물이 소등섬을 핥고 지날 때는 어떤 소리가 날까. 일출도 일출이지만 다음에는 그 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글·사진 장흥=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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