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치매 예방을 위한 퀴즈대회 열자

박지욱 신경과전문의·메디컬티스트 2026. 2. 26. 18:5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지욱 신경과전문의·메디컬티스트

“풍부한 인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치매에 덜 걸린다.” 신경과 의사들이 믿고 보는 학술지 뉴롤로지(Neurology) 2026년 2월호에 실린 논문의 내용이다. 미국의 한 연구팀이 30년 동안 약 2000명 정상 노인의 삶을 추적 관찰해서 얻은 결론이다. 건강을 위해 일부러 운동하는 사람이 더 건강한 것처럼 머리를 많이 쓰면 뇌도 더 건강하다는 말이다.

‘풍부한 인지 활동’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머리를 많이 쓰기’이다. 연구자들이 주목한 것은 18세 이전에는 외국어 배우기, 책이나 신문을 많이 읽기, 사전 가까이하기다. 청년기에는 잡지를 읽고(좀 더 전문적인 식견이 생긴다),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내 집처럼 드나드는 것이다. 노년기에는 독서와 글쓰기, 퍼즐 맞추기 같은 머리 쓰는 놀이를 즐겨 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풍부한 인지 활동을 한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알츠하이머 치매 발병률이 38%나 낮았고, 발병 시기도 5년이나 늦었다고 한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노인들의 뇌를 부검해보니 더 놀랄 결과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린 환자의 뇌에는 타우(τ)나 베타 아밀로이드(βA) 같은 퇴행성 소견이 많이 보이는데, 이런 이상 소견은 치매의 심한 정도와 비례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는 뇌가 비슷한 정도로 망가졌다고 해도 머리를 더 많이 쓴 노인들의 인지 기능이 더 좋았다. 인지 활동이 물리적인 퇴행(병리현상)을 이겨낸다는 말이다.

솔직히 신경과 의사로서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기분이다. 앞으로는 MRI 사진만 보고 치매가 왔네, 라는 진단을 섣불리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소식도 없다. 뇌졸중과 더불어 나이 들어 절대로 걸리지 않아야 하는 치매를 평소에 독서, 글쓰기, 놀이를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니까.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스마트폰부터 내려놓자. 우리를 옭아맨 알고리즘의 무간지옥에서 빠져나오자. 나의 소중한 시간과 인지력을 그렇게 허비할 때가 아니다. 그리고 책을 들고, 펜을 잡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전시회를 찾아 박물관·미술관에 가자(운동도 된다). 읽고, 보고, 쓰자(뇌 운동이다). 혼자 가지 말고 친구들도 함께 가자.

조금 더 강하게 할 수도 있다. 수동적인 독자나 감상자의 수준에서 머무르지 말고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읽고, 보고, 느끼자. 이건 왜 이렇지? 이름은 왜 이럴까? 무슨 사연이 있나? 서로 무슨 관계가 있나? 이런 호기심을 가지고 답을 찾는 과정이 있어야 뇌가 생각을 한다.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낱낱의 정보가 연결되어 하나의 지식으로 뇌에 자리 잡을 때 뉴런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연결되며, 새로운 시냅스가 생기고 뇌가 업그레이드된다. 무심코 흘려보내는 쇼츠와는 차원이 다른 인지 활동이다.

더 나아가 누구에게 이야기를 해준다거나 어느 자리에서 발표를 한다고 생각하면 더 집중할 것이다. 아니면 시험을 친다고 생각하면 집중력이 더더욱 높아져 뇌가 최대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이 되고 발표자가 된다고 생각하고 책을 보면 ‘고강도’의 인지 활동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노인들의 고강도 인지 활동을 돕기 위해 캠페인 하나를 제안한다. 가칭 ‘도전 실버벨’ 퀴즈대회다. 전국 각지의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에서 강연 북토크 독서교실이 수도 없이 많이 열리는데 퀴즈대회도 열어보면 어떨까.

너무 광범한 범위 말고 특정 주제에 관한 집중 탐구 퀴즈로 하자. 역사 박물관에서는 역사를 주제로,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자연사, 과학박물관에서는 과학, 미술관에서는 특별 기획전에 관한 주제로, 문예회관에서는 음악이나 연극을 다루는 것이다. 도서관도 할 수 있다. 책 퀴즈를 할 수도 있지만 좀 더 다양한 주제를 잡을 수도 있다. 수개월 전에 이런 주제로 퀴즈대회를 열겠다고 공지하고 참가자들이 공부할 시간을 주자. 참가 자격은 일단 노인으로 시작해보자. 대회 형식은 ‘OX 퀴즈’ ‘도전 골*벨’ ‘장*퀴즈’ 형식 뭐든 가능하다.

만약 이런 퀴즈대회가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한창 붐을 타고 있는 달리기 열풍에 못지않을 것 같다. 달리기 동호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 참가를 위해 접수 첫날 광클릭을 하고, 저녁 시간에 운동장 트랙을 가득 채우며 기초 체력을 단련하는 일의 뇌 확장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독서 인구가 늘고, 인지 활동이 활발해지고, 노년층이 머리를 많이 쓰는 노력을 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치매 발병도 줄어서 건강보험이나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 절감에도 기여할 것이다.


부산에서 시작해보자. 국립해양박물관의 ‘대항해시대’, 국립부산과학관의 ‘원자력의 역사’, 근현대역사관의 ‘개항과 근현대사’, 임시수도기념관의 ‘6·25전쟁과 부산’ 등등으로 시작해보자. 지금부터 준비하면 5월에는 첫 행사를 열 수 있을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식상한 이벤트에 돈을 쓰지 말고 이번에는 참신하고도 내실 있는 행사를 준비해보자. 일단 시작부터 한 번 해보자. 못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