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 벽 깨진 비트코인…죽음의 소용돌이냐 매수 기회냐[3월, 재테크의 변곡점]

비트코인 가격이 1억원 아래로 급락하며 투자심리가 얼어붙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촉발됐던 암호화폐 투자 열풍의 상승분이 사실상 모두 사라진 가운데 레버리지 투자 청산과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가 겹쳤다.
저가 매수세 유입으로 일시적 반등에는 성공했으나 극심한 변동성 탓에 비트코인의 자산적 가치에 대한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디지털 금(金)’으로서 위상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자 가격 전망도 양극단으로 나뉘고 있다.
2월 12일 오전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전일 대비 2.73% 하락한 9934만3000원에 거래됐다.
올해 들어 비트코인 1억원 벽이 처음 붕괴된 건 지난 2월 6일이었다. 이날 오전 9시 비트코인 가격은 한국 시장에서 8900만원까지 하락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심리적 지지선이었던 ‘억 단위’ 시세가 깨지자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는 공포가 번졌다.
시장에서는 비트코인 폭락 사태가 전체 금융시장에 연쇄적인 파장을 일으킬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에 진입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트럼프 랠리’ 이전으로 회귀한 비트코인
글로벌 시장의 지표는 더욱 비관적이다. 2월 23일(현지시간) 한때 6만 4000달러 선이 무너졌다. 이는 지난해 10월 기록했던 사상 최고가인 12만4752달러 대비 무려 50% 가까이 폭락한 수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가상자산의 성지’를 외치며 치솟았던 상승분을 모두 반납한 셈이다. 이더리움은 장중 5.3% 하락하며 1902달러까지 밀려났고 리플(XRP)과 BNB 역시 10% 넘는 폭락세를 보이며 알트코인 시장 전체가 패닉 셀 국면에 진입했다.
온라인 외환 거래 중개사 FxPro의 수석 시장분석가인 알렉스 쿱치케비치는 “비트코인이 6만7000달러 아래로 떨어지며 3일 연속 음봉을 기록했다”며 “지난주 금요일(2월 6일) 반등분의 절반 이상을 이미 반납한 상태이며 이는 기술적으로 매우 위태로운 신호”라고 진단했다.
이번 하락장의 가장 큰 특징은 주식시장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다. 통상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살아나면 주식과 코인이 함께 오르던 공식이 깨진 배경에는 역설적이게도 ‘현물 비트코인 ETF 도입’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TF로 인해 비트코인으로 어마어마한 자금이 유입됐지만 기관투자가들에게 비트코인 시장의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거래의 ‘시공간적 제약’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온체인 데이터 분석업체 카이코(Kaiko)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 발견 기능이 뉴욕증시 개장 및 마감 시간대(뉴욕 시간 오후 3~4시)에 집중되면서 주말 거래 비중은 2019년 28%에서 최근 16%까지 급감했다.
기관들이 퇴근하는 야간이나 주말 시간대에는 시장을 지지할 매수세가 증발하는 ‘유동성 공동화’ 현상이 고착화된 것이다. 결국 큰손인 기관이 잠든 사이 발생하는 매도세가 평일 대비 11% 이상 높은 스프레드(거래 비용)와 결합해 폭락을 초래하는 구조적 취약점이 하락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즉 주말이나 아시아 시간대에는 시장을 받쳐줄 매수세가 약해져 작은 매도세에도 가격이 폭락하는 유동성 공동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제임스 해리스 테서랙트 CEO는 “평일에는 ETF가 가격을 지지해주지만 주말에는 이 ‘자연스러운 매수세’가 사라진다”며 “주말 동안 강제 청산이 도미노처럼 일어나도 이를 받아낼 ETF 자금이 없다는 것이 최근 급락의 주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워시 쇼크’와 75억 달러의 썰물
거시경제 환경 역시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1월 고용 지표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수치를 기록하면서 미 중앙은행(Fed)의 조기 금리인하 기대감은 줄어들었다. 시장은 당초 6월로 내다봤던 첫 금리인하 시점을 7월 이후로 늦추는 분위기다.
여기에 차기 Fed 의장 후보로 ‘매파’ 성향의 케빈 워시 전 이사가 지명된 것이 결정타가 됐다. 워시 지명자는 과거부터 긴축적인 통화 정책을 선호해온 인물로 그가 Fed의 키를 잡을 경우 유동성 공급이 더욱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을 덮쳤다.
이에 따라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는 지난해 10월 이후에만 75억 달러(약 10조원) 이상의 자금이 순유출되었다. 특히 블랙록과 피델리티에서 각각 하루 수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회수된 날에는 시장에 충격을 넘어선 절망감이 감돌았다.
특히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 “정부는 비트코인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한 구제금융을 집행할 권한이 없으며 개입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못 박으면서 하락세에는 더 속도가 붙었다.
이는 정부가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자산으로 관리해줄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맹목적인 믿음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었다.
공포 속 분할 매수 기회일까
영화 ‘빅쇼트’의 모델 마이클 버리는 가상자산 시장이 직면한 위기를 분석하며 ‘하락 3단계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는 비트코인이 7만 달러(1단계), 6만 달러(2단계), 5만 달러(3단계) 이하로 하락할 때마다 디지털 자산 보유 기업들의 마진콜과 실물 금속 담보 가치의 붕괴가 이어지는 ‘죽음의 소용돌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공포의 시나리오 속에서도 비트코인 최대 보유 기업인 스트래티지의 마이클 세일러 의장은 최근 약 9000만 달러를 투입해 1142 BTC를 추가 매입했다고 공시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이는 기관들의 이탈 속에서도 비트코인의 장기적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보여준 장면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2월 10일 비트코인 ETF 시장으로 약 1억6700만 달러의 자금이 일시적으로 다시 유입되는 등 분위기 반전을 꾀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지금이 분할 매수 전략을 펼쳐야 할 시기라는 분석도 있다. 아크인베스트를 이끄는 '돈나무 언니' 캐시 우드는 시장이 패닉에 빠졌던 지난 2월 13일 비트코인 급락으로 동반 하락했던 코인베이스 주식을 사들였다. 3개의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약 1520만 달러 규모를 매수했다. 불과 수일 전 약 3900만 달러 규모 주식을 매각하며 비중을 줄였던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글로벌 투자은행 번스타인은 최근 비트코인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연말 목표가를 15만 달러로 유지했다.
JP모건은 현재 비트코인 가격이 '생산 원가'를 밑돌고 있다는 점을 강력한 매수 신호로 해석했다. JP모건은 12일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 추정 추정 생산 원가를 약 7만 7000 달러로 분석했다.
2월 19일 기준 비트코인이 6만 6700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채굴 원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셈이다.
JP모건은 "역사적으로 생산 원가는 비트코인 가격의 하단 지지선 역할을 해왔다"며 현재 가격대가 바닥을 다지는 구간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다만 가격이 원가 아래로 장기간 머물 경우 한계 채굴자들이 이탈하며 원가 자체가 낮아질 위험도 있다고 JP모건은 덧붙였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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