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경남연극제] 혼돈의 시대, 흔들리는 내 모습 직면하다

주성희 기자 2026. 2. 2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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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현대사회를 내비치다
창원 나비·진주 현장·거제 예도
통영 벅수골·마산 상상창꼬

44회 경남연극제가 '연극을 잇다 밀양을 잇다'를 주제로 26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밀양아리랑아트센터 공연장에서 열립니다. 올해는 한국연극협회 경남지회 소속 11개 지부, 14개 극단이 경연에 나섭니다. 올해 선보이는 새 작품은 한 편, 나머지는 모두 이미 선보인 적이 있는 작품입니다. 개막에 앞서 마음, 현대사회, 인간 내면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눠 경연작을 미리 살펴봅니다. 이번에는 현대사회를 조명하는 작품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현대사회에는 다양하고 기발하고, 때로는 섬뜩한 일들도 벌어집니다. 특정한 사건을 마주했을 때 현대사회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할 수 있을까요? 도내 극단들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했을지, 무대에서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창원 나비 <(당)신의 재판>
44회 경남연극제 창원 극단 나비의 출품작 <(당)신의 재판> 한 장면. /극단 나비

창원 극단 나비는 관객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연극 <(당)신의 재판>(이혜지 작·김동원 연출)을 선보인다. 나비는 <(당)신의 재판>을 2023년부터 창원 나비아트홀에서 선보이고, 42회 경남연극제에 출품하면서 작품을 발전시켜 왔다.

작품 배경은 국민참여재판이 열리는 재판장이다. 공연을 보러 온 관객 손에 토큰이 쥐어지면서 배심원이 되는데 이는 관객을 작품에 체험, 개입하게 하는 이머시브(immersive art·몰입형 예술) 연극 형식이다.

재판장에는 자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강서영이 선다. 뇌사에 빠진 후 강서영에게 심장을 기증하고 사망한 딸 최지아를 조사한 경찰은 강서영을 살해 용의자로 지목했다.

검사는 강서영이 심장병을 치료하려 최지아를 고의로 입양해 살해했다고 주장한다. 변호인은 이 사건은 우연일 뿐 살인과 무관하다고 열변한다. 관객은 양측 주장을 지켜보면서 옳다고 여기는 쪽에 투표하고, 그 결과가 즉시 공개되면서 분위기는 긴장감으로 고조된다.

작품은 재판장의 모습을 주요하게 다루지만, 피고 강서영의 삶을 극중극으로 보여주면서 사건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준다. 선택권이 주어진 관객은 재밌는 연극을 관람하는 동시에 선택과 책임의 무게를 지는 이중적인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연극은 28일 오후 7시 30분 밀양아리랑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펼쳐진다. 13세 이상부터 관람할 수 있다. 공연 시간은 1시간 40분이다.

진주 현장 <개는 물지 않는다>
44회 출품하는 진주 극단 현장의 <개는 물지 않는다> 한 장면. /경남연극제 집행위원회

진주 극단 현장은 <개는 물지 않는다>(차근호 작·고능석 연출)로 현대사회의 권력 구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질문한다.

주인공은 심부름 대행업을 하는 30대 중반의 이현중이다. 그는 자신의 반려견을 물어 죽인 진돗개를 대신 처리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그 진돗개가 사는 저택의 정원사로 위장 취직을 한다. 저택의 주인은 아버님이라 불리며 3층에 살고 있다. 1층에 요리사, 가정부, 기사가 살고 2층에는 집을 관리하는 부부가 산다. 3층에 사는 아버님과 진돗개가 같이 지내고 있다.

어느 날 혼자 남게 된 이현중은 진돗개를 처리하려다가 실패한다. 그때 아버님의 전화에 따라 지하에서 총을 든 상자를 가지고 오면서, 1·2층에 있던 이들과 대립 구도가 이어진다. 마침내 3층으로 올라간 이현중이 발견한 것은 자동 응답기, 녹슨 금고 뿐이다. 1층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뒤로한 채 이현중은 진돗개와 저택을 떠나게 된다.

작품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거대한 권력 구조를 고발한다. 또한 우리의 침묵과 욕망이 그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현장은 42회 경남연극제에 이어 올해도 <개는 물지 않는다>로 승부를 건다. 지난 공연과 차이점은 소리에 있다. 이현중이 처리해야 할 진돗개는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개의 소리, 다른 배우들의 반응으로 개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이때 무대 앞, 뒤, 옆에서 공간감적으로 들리는 개의 숨소리, 짖는 소리 등을 이전과 다르게 설계해서 들려준다. 이 작품을 감상할 땐 시각과 청각적 감각을 동시에 곤두세워 재미를 더한다.

현장은 다음 달 3일 오후 7시 30분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공연한다. 14세 이상부터 볼 수 있으며, 공연은 1시간 20분동안 한다.

거제 예도 <봄이 지나는…>
44회 경남연극제에 출품하는 거제 극단 예도의 <봄이 지나는>의 한 장면. /경남연극제 집행위원회

거제 극단 예도는 '화염의 시대'라는 부제를 지닌 <봄이 지나는…>(이삼우 작·연출)이란 작품으로 경남연극제 무대에 선다.

작품은 충청도 어느 마을이 배경이다. 이 마을은 대통령 당선인과 동일한 선택을 하는 곳으로 유명세를 치른다. 수십 년 동안 마을 주민이 뽑은 후보자가 대통령이 돼 왔다. 이 때문에 대통령 선거일이 되면 전국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아 관광지로도 알려져있다. 대통령 선거는 마을 이장인 필수와 마을 주민에게는 자부심이자 희망이다.

하지만 평화와 기쁨이 물러나고 악취가 마을을 뒤덮는다. 어느 날 마을 뒷산에 갑자기 생겨난 쓰레기 매립지 때문에 마을이 병든다.

이삼우 연출은 대통령 직선제로 바뀐 1987년 이후, 지역민이 선택한 후보자가 대통령 당선이 됐다는 실제 이야기를 접했다. 이 연출은 이 마을을 배경으로 삼고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다.

그가 보는 세상은 화염으로 가득 차 있다. 어느 지역이든 안전하지가 않다. 선과 악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정의는 실리라는 이름으로 가려졌다. 도덕은 다 옛말이고 오염된 듯 하다. 하지만 이 연출의 작품이 항상 그렇듯 어두운 사회를 그리지만 염세적이고 파멸로 끝맺지 않는다. 이 연출은 이 작품으로 희망과 평화를 간절히 전한다. 이 세상에 화염이 사라지길, 아이들이 살기 안전한 세상이 찾아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예도는 다음 달 5일 오후 7시 30분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공연한다. 10세 이상부터 볼 수 있으며 공연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통영 벅수골 <태극기가 바람에>
통영 극단 벅수골의 <태극기가 바람에> 한 장면. /경남연극제 집행위원회

통영 극단 벅수골은 <태극기가 바람에>(신성우 작·장창석 연출)로 우리 사회의 복잡한 갈등을 무대 위로 올린다.

작품은 태극기 부대에 속한, 지금의 대한민국이 싫은 노인이 나온다. 그는 같은 다리 밑에서 지내는 노숙자 숙자 씨에게 면박이나 당하면서 지낸다. 그런 노인 앞에 자신을 안기부 요원이라고 소개하는 한 남자가 나타나 007가방을 전한다. 노인은 진정한 애국자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자 안기부 요원의 지시에 따라 임무를 수행한다.

어느 날 비를 피해 노인, 숙자 씨가 있는 다리 밑으로 들어온 가출 소녀. 노인은 소녀가 오갈 데 없어 보이자 숙자 씨가 숨겨뒀던 돈을 꺼내주며 다리 밑에 머물 수 있도록 돕는다. 소녀는 자신을 도와준 태극기 부대 노인에게 마음을 열며 숨겨뒀던 먹다 남긴 초코바를 건넨다.

노인은 어째서인지 초코바를 먹고서 눈물을 흘린다. 오랜만에 만난 단맛, 떠나온 삶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와서다.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가출소녀와 태극기 부대 노인은 둘만의 우정을 가꿔나간다.

장창석 연출은 현대사회의 갈등이 분노와 혐오를 끌어안고 있어 이제는 증오의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생각 차이, 다름의 차이를 악으로 판단하는, 증오심을 정의로 여기는 상황은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장 연출은 <태극기가 바람에>로 증오를 끝낼 수 있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고 관객을, 사회를 설득하려 한다.

공연은 다음 달 6일 오후 7시 30분에 밀양아리랑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한다. 19세 이상부터 관람할 수 있다. 공연 시간은 1시간 30분가량이다.

마산 상상창꼬 <어느날 아침 깨어나 보니 AI가 되어 있었다>
44회 경남연극제에 출품하는 마산 극단 상상창꼬의 <어느 날 아침 깨어나 보니 AI가 되어 있었다> 한 장면. /경남연극제 집행위원회

마산 극단 상상창꼬는 연극 <어느 날 아침 깨어나 보니 AI가 되어 있었다>(민수인 작·김소정 연출)로 인공지능(AI)에 의지한 채 삶을 사는 인간의 모습을 전한다.

주인공 공기준은 대기업 연구직으로 일하며 가족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일에 지친 그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 사실을 안 가족은 공기준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는 앞으로 살 걱정을 앞세운다. 그 날 밤 사이 공기준은 AI로 변해버린다.

처음에 AI가 된 공기준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믿기 어려워하던 가족은 점점 AI인 공기준에 익숙해진다. 소비, 주식 투자, 건강 관리 등 삶의 전반을 맡기게 된다. 이전에 그의 월급으로 생계를 영위했던 것처럼 말이다.

익숙함도 잠시 공기준의 부모와 동생은 공기준이 설계한 삶에 불만을 말하며 의존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공기준은 자신의 해결책에 불만을 가진 가족을 한심하게 여기며 스스로 생을 마감할 것을 권한다. 이에 화가 난 가족은 전기합선을 일으켜서 공기준을 제거하기에 이른다.

이 연극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을 바탕으로 새롭게 꾸며낸 이야기다. 상상창꼬는 <변신>이 주는 주제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고 봤다. <변신>과 현시대를 상징하는 인공지능을 결합한 작품으로 자본주의가 지닌 물질문명과 그 잔혹성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자 한다.

작품은 인간이 인공지능화 된 모습을 배우의 신체 움직임으로 표현하면서 관객이 다양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돕는다. 또한 소설 <변신>에서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가 숨어있던 침대, 잠자 가족의 탐욕을 볼 수 있는 식탁은 이번 연극 무대 위에서도 볼 수 있다. 이소정 연출은 이러한 무대 장치를 신체 움직임과 적절히 활용해 격동적인 상황을 전달하고 있다.

공연은 다음 달 9일 오후 7시 30분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열린다. 12세 이상부터 볼 수 있고, 공연 시간은 1시간 20분이다.

경남연극제 모든 공연은 무료다. 예매 밀양문화관광재단 누리집(mycf.or.kr). 문의 0502-1410-5822.

/주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