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우리 집, 요즘 탄소랑 '절교 중'
에너지 효율 높이는 ‘그린 집수리’ 본격 추진
패시브 리모델링으로 주택 구조까지 바꾼다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 주민 참여가 핵심 과제
[지데일리] 도시의 오래된 집이 탄소중립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광명시가 이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다. 회색빛 콘크리트 외벽 뒤에 갇혀 있던 낡은 주택을 에너지 절약형 건물로 바꾸는 노력, 그 속에서 주민의 삶의 질과 환경 목표를 동시에 잡으려는 도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2026년, 광명시는 ‘집을 고치는 환경정책’을 도시재생 전략의 중심으로 올렸다.

광명시가 최근 발표한 ‘2026년도 광명시 집수리 지원사업’은 단순한 노후주택 개선 사업이 아니다. 시는 이번 사업을 “주거환경 개선과 에너지 효율 향상을 동시에 추진하는 탄소중립형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정의했다. 광명시는 주거지의 열효율을 높이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함으로써, 도시 전체의 온실가스 감축을 실질적으로 이끌어내겠다는 방침이다.
‘에너지 성능 직접 개선’... 그린 집수리 사업
가장 눈에 띄는 축은 ‘그린 집수리 사업’이다. 해당 사업은 단열공사, 단열창호 교체, 보일러 교체 등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직접적으로 끌어올리는 시설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대상은 준공 후 15년 이상 지난 노후주택으로, 시는 10호 내외를 선정해 총 8000만 원의 예산(전액 시비)을 투입할 예정이다.
지원 규모는 공사비의 50%, 최대 1500만 원까지다. 단, 시는 단순한 외형 개선에 그치지 않기 위해 세부 자재 기준을 엄격히 설정했다. 창호는 에너지효율등급 2등급 이상, 외단열재는 가등급 90㎜ 이상, 내단열재는 가등급 50㎜ 이상, 지붕 단열재는 가등급 170㎜ 이상을 사용해야 한다. 이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고시한 건축자재 에너지등급 기준(2020년 이후 적용 기준)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온실가스 인벤토리에 따르면, 전국 주거부문의 에너지 소비 중 난방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 광명시는 난방 효율 개선만으로도 가구당 연간 약 15~25%의 에너지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 관계자는 “그린 집수리 사업은 도시 단위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실행 모델”이라며 “주민이 도시를 바꾸는 주체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패시브 리모델링... ‘에너지 소비를 원천에서 줄이는’ 전략
광명시가 병행 추진하는 ‘패시브 리모델링 지원사업’은 단순히 단열재를 교체하는 수준을 넘어, 건물의 구조적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고급형 사업이다. ‘패시브(Passive)’ 건축 개념은 외부 에너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열 손실을 최소화해 냉난방 수요를 줄이는 친환경 건축 방식이다.
이 사업은 준공 후 1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을 대상으로 고효율 창호, 고기밀 단열재, 고효율 보일러, LED 조명 등 주요 설비 교체를 지원한다. 총 사업비는 2억 2천만 원(시비 1억 1천만 원 포함)이며, 20가구를 선정해 공사비의 50%, 최대 1천만 원까지 보조한다.
광명시 도시재생지원센터 관계자는 “패시브 기술은 단순한 리모델링이 아니라 주택의 구조와 에너지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라며 “탄소중립을 인프라로 구현하는 사례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패시브 리모델링은 대규모 신축단지보다 개별 노후주택의 에너지 성능을 개선함으로써, 도시 전체의 평균 탄소배출량을 빠르게 낮출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노후주택 외관도 새롭게, 소규모 집수리 사업
광명시는 외벽 도장이나 옥상 방수 등 외부 경관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소규모 노후주택 집수리 사업’도 병행한다. 이 사업은 준공 10~20년 이상 된 단독 및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하며, 총 1억 16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단독주택은 최대 1200만 원, 공동주택(공유부)은 최대 1600만 원 한도 내에서 공사비의 90%를 지원한다. 시는 단독 3호, 공동 5호 등 총 8호를 선정할 계획이다.
광명시에 따르면, 이번 세 가지 사업은 단순한 도시 미화 사업이 아니라 '생활단위의 탄소 감축과 도시재생을 결합한 실험적 모델'로 설계됐다. 지원 대상자 모집 공고는 광명시청 누리집의 고시공고 게시판에서 확인 가능하며, 신청자는 신청서를 작성해 도시재생지원센터로 제출하면 된다. 현장 실사와 집수리추진단의 심의를 거쳐 최종 선정한다.
탄소중립 도시로의 전환... 주거 역할이 커
탄소중립에 있어 ‘주거’는 가장 체감도 높은 영역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에너지 소비 중 주거·건물 부문은 22.4%를 차지하며, 그중 다수가 개인 소유의 노후주택에서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신축 중심의 탄소중립 정책이 오래된 도시지역에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기 때문에, 광명시의 선택처럼 기존 건축물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리노베이션형 탄소감축’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030년 이후에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건축물의 에너지 절약이 핵심이며, 단열 성능 향상은 온실가스 감축의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다. 이에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단위의 집수리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책적 의미, 주거 복지와 지속가능성의 결합
광명시의 이번 정책은 피상적인 환경 목표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래된 주택의 에너지 성능을 향상시키는 일은 곧 주거 복지 정책이기도 하다. 열 손실이 많은 주택은 난방비 부담이 커, 에너지 취약계층에게는 실질적인 생활 부담으로 이어진다.
국토연구원의 2024년 ‘한국형 패시브 리모델링 사례 분석’에 따르면, 단열 강화와 창호 교체만으로도 가구당 평균 연간 난방비가 약 30만 원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명시의 사업이 실제로 주민 삶의 질 향상과 경제적 안정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더불어 지역의 소규모 시공업체와 단열 전문기업에게도 새로운 일감이 생긴다. 시 관계자는 “지역 내 집수리 전문 인력과 중소업체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클 것”이라며 “환경정책이 곧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모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사업의 지속성과 주민 참여 확대가 관건
광명시의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과제가 남는다. 우선 지속적 예산 확보와 제도적 일관성이다. 도시재생사업은 초기 효과는 크지만 장기적 유지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광명시가 향후 국비 연계를 통해 안정적인 재정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으로 주민 참여의 제도화다. 집수리 사업이 일회성 지원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주민들이 에너지 절약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유지관리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에너지 컨설팅, 유지보수 교육 등 후속 프로그램을 병행해야 한다는 제언이 있다.
한국환경연구원 한 연구위원은 “탄소중립형 도시재생은 단순히 공사가 아니라 생활 방식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며 “주민이 주체적으로 관리하고 지역 전체가 지속 가능한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명시는 올해 상반기 안에 1차 대상자 선정을 완료하고, 하반기부터 공사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시는 실적을 토대로 2027년 이후 사업을 확대 추진할 방침이다.
탄소중립 시대의 도시, 그 출발점은 ‘집 한 채’일 수 있다. 광명시가 시도하는 이 변화는 화려한 신축 단지가 아닌, 오래된 골목의 집 한 채에서 시작되고 있다. 지역의 삶, 환경, 경제가 맞물린 복합적 전환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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