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엽전 닮은 떡국과 ‘낯선’ 새해… 우리가 몰랐던 설날의 모든 것

김다란 기자 2026. 2. 14. 00: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설날 ‘낯설다’에서 어원 설득력 높아
떡국 먹는 풍습 조선 중기부터 기록
설날엔 밥 대신 차례상에 올리기도
사랑의 떡국떡 나눔설 명절을 앞두고 6일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 커뮤니티센터에서 '사랑의 떡국떡 나눔 행사'가 열린 가운데 매곡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들과 동 직원들이 관내 취약계층 60세대에 보낼 떡국떡과 한과 등을 포장하고 있다.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명절 차례상 배치 원칙부터, 무병장수와 재복(財福)의 염원을 담아 엽전 모양으로 썰어낸 떡국까지 시대에 따라 형식은 변했을지언정, 설날의 본질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에 남도일보는 다양한 어원설 속에 담긴 설날과 떡국의 유래를 살펴보고, 자칫 헷갈리기 쉬운 차례상 차림법의 핵심 원칙을 정리해봤다.

◇ '설날'의 어원

12일 민속학계에 따르면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력으로 새해 첫 날인 1월 1일을 '설날' 혹은 '원일(元日)'이라 했다. 이 말의 어원(語源)에 대해선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진 게 없다. 다만, '섧다(서럽다)', '사리다', '낯설다', '선날', 나이 '살' 등에서 '설'의 어원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제기되고 있을 뿐이다.

설에 대한 어원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견해로는 '낯설다'에서 어원을 찾은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의 해석이 꼽힌다. 사전상에는 설은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 날이며 첫 머리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설은 '설다', '낯설다' 등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새해에 대한 낯설음, 즉 새해라는 문화적인 시간 인식 주기에 익숙하지 못한 속성을 가장 강하게 띠는 날이 바로 설날이기 때문이다.

설날의 유래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을 찾은 논문도 눈에 띈다. 이를 살펴보면 '고려사'에는 '구대속절(九大俗節)'의 하나로 기록됐고, 조선시대에는 '4대 명절'의 하나로서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여겨졌다.

또 '삼국사기'에는 신라에서 651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에 나와 앉아 백관들의 새해 축하를 받았는데 이때부터 왕에게 새해를 축하하는 의례가 시작됐다고 명시됐다. 7세기 초엽 이전의 역사를 기록한 '수서(隋書)'와 '당서(唐書)'에서는 설날에 관한 구체적 언급이 처음으로 보였고, '8월 15일이 되면 또 연악을 베푼다'라는 구절을 통해 국가 형태의 설날 관습이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백제에서는 261년에 설맞이 행사를 했으며, '왕이 정월 초하룻날에 큰 소매가 달린 자줏빛 겉옷(대수자포)과 푸른 비단 바지, 금꽃으로 장식한 검은 비단판, 흰 가죽띠, 검은 가죽신을 신고 남당에서 정사를 처리했다'는 기록도 제시되고 있다.
 

◇설날과 추석 차례상 차이

명절 차례상 차림은 가가례(家家禮)에 따른다. 지방에 따라, 가풍에 따라 조금씩 형식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대동소이하다. 설 차례상이 일반 제사상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메(밥) 대신 떡국을 올린다는 점이다.

설 차례상은 일반적으로 5열로 나눠 배치한다. 1열은 떡국 등 식사류, 2열은 주요리인 전과 육적(고기 구운 것), 소적(채소 구운 것), 어전과 어적(생선 구운 것) , 3열은 탕류, 4열은 식혜와 나물, 밑반찬류, 5열은 과일, 과자 등 후식으로 상을 차리게 된다.

각 어구를 기억하면 차례상을 차리는 건 좀 더 쉬워진다. 대체로 '반서갱동'을 참고해서 차리면 된다. 상을 차리는 사람이 봤을 때 밥(반)은 서쪽(오른쪽)에 놓고 국(갱)은 동쪽(왼쪽), 시접(수저그릇)은 가운데 놓아야 한다. 음양의 원리에 따라 죽은 사람은 산 사람과 반대로 하므로 꼭 지켜야 한다. 설엔 떡국이 올라간다. 조상들께 올리는 술잔도 함께 놓는다.

2열은 어동육서(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 두동미서(생선의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 4열은 좌포우혜 (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 5열은 조율이시(왼쪽부터 대추, 밤, 배, 곶감 순서), 홍동백서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등의 원칙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각 지방이나 전통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주의할 점은 과실 중 복숭아는 제사에 사용하지 않고 생선 중에 '치'로 끝나는 꽁치, 멸치, 갈치, 삼치 등은 사용하지 않는다.

장어나 붕어, 잉어, 이면수 등도 올리지 않는다. 고춧가루와 마늘 양념은 하지 않는다. 붉은 팥 대신 흰 고물을 써야 한다. 짜거나 맵게 양념하지 않고 간은 간장 대신 소금으로 맞춘다.

◇떡국 언제부터 먹었나?

떡국과 관련한 옛 문헌 자료가 많이 남지 않아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설에 떡국을 먹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나마 조선후기 서적 '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는 떡국을 자세히 소개했다. 떡국은 책에 새해 차례와 아침식사 때 없으면 안 될 음식이며, 손님 접대용으로 꼭 내놓았다고 적혀 있다. 동국세시기는 떡국이 겉모습이 희다고 해서 '백탕'(白湯), 혹은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는 뜻에서 '병탕'(餠湯)이라 적었다.

조선 중기 이식의 '택당집'은 '새해 첫날의 제사상을 차릴 때 병탕과 만두탕을 한 그릇씩 올린다'고 적었다. 조선 초기 서적에는 떡국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우리 민족이 조선 중기부터 설에 떡국을 먹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떡국의 기원이 중국 당나라 때 먹었던 '탕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구한말에 오면 떡국은 시장에서 사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흔한 음식이 됐다는 것을 당시 신문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옛날에는 떡국에 넣는 가래떡을 엽전과 태양의 모양처럼 동그랗게 썰었다. 이렇게 썰었던 이유는 떡국을 먹는 사람이 부자가 되고, 새해 태양의 기운을 받으라는 이유였다. 요즘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면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과거에는 나이를 물을 때 '병탕 몇 사발 먹었느냐'고 했다. 떡국을 한자로 첨세병(添歲餠)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먹은 떡국 그릇 수에 따라 나이가 더해지는 음식이라는 의미다. /김다란 기자 kdr@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