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 할머니가 부르는 이름 [이길보라의 경계에서 자란다]

한겨레 2026. 2. 1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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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수어로 말하며 자란 나는 수어와 농문화를 아이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이길보라 제공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아이의 이름을 정할 때였다. 엄마에게서는 한국 국적을, 아빠에게는 일본 국적을 물려받아 복수국적자로 자라게 될 아이에게 어떤 이름을 주어야 할지 고민했다. 한일커플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경우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도 종종 쓰는 하나, 하루, 유나, 미나, 준 같은 이름들로 말이다. 나의 아이의 경우에는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조부모가 한국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이라는 거였다. 즉, 아이 이름은 우리 엄마도 부를 수 있는 이름이어야 했다.

나의 이름은 보라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을까. 자신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찾아오라는 숙제를 하며 부모에게 이름에 담긴 이유를 물었다.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잘 모르겠다고 말했고 아빠는 껄껄 웃으며 “기억 없다”고 손으로 말했다. 나는 자식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잊는 부모가 어디 있냐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도 내 이름이 왜 보라인지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알 것도 같았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진 농인 부모의 자녀 이름이 보는 감각과 연결된 ‘보라’가 된 것은 자명하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를 여러 방식으로 부를 테였다. 아기의 눈을 쳐다보며 여기 보라고 손짓한 다음 그들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방식인 수어 이름으로 부르고, 아기가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면 데프보이스로 소리를 내어 호명할 테였다.

수어의 세계에는 수어 이름(얼굴 이름)이 있다. 예를 들어 ‘보라’라는 이름은 한국 문자언어의 체계에서 만들어진 기호다. 이를 손과 손가락으로 한글의 모음과 자음을 표기하는 지문자로 변환하여 표기할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내 이름에는 받침이 없어 다른 이름과 비교해 표현하기가 어렵지 않음에도 ‘ㅂ’을 쓰고‘ㅗ’를 쓰고 ‘ㄹ’을 쓰고 ‘ㅏ’를 써야 한다. 언어의 경제성에 부합하지 않고 기억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수어 이름이 존재한다. 각 나라 혹은 문화권마다 이름을 짓는 방식이 다른데, 한국수어의 경우 외양적 특징과 성격을 부각한 손짓을 한 후 여성 혹은 남성을 일컫는 기호를 합친다. 최근에는 성별을 이분법적으로만 나눌 수 없다는 문제 제기에 성별을 나타내지 않는 중성적인 이름도 많이 생겼다.

수어 이름은 농사회에 진입했을 때 수어의 원어민인 농인들이 특징을 찾아 지어주는 경우가 많다. 나는 20대 초반에서야 수어 이름을 가졌는데, 내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아니, 30대 중반이 된 내 동생, 그러니까 나처럼 농인의 자녀인 동생에게도 수어 이름이 없는데 태아의 것을 벌써 짓는다고요? 나는 이름 없이 ‘아들’ 혹은 ‘동생’이라고만 호명되는 광희를 떠올리며 불쌍하고 웃기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수어 이름은 농인 부모로부터 받을 수 있을 것이므로 나는 문자언어로 된 이름을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가 속하게 될 여러 문화 속에서 통용될 수 있고 모두가 쉽게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짓고 싶었다. 고민 끝에 추려진 두 개의 이름을 엄마에게 제안했다. 엄마는 손으로 써본 후에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발음했다.

“시, 우!”

“서, 우!”

자음 시옷은 농인인 엄마가 발음하기에 다소 어려웠다. ‘시’는 입을 다물고 입술을 열어 이빨 사이로 공기를 내보내며 입술 근처에서 소리를 내면 되었지만 엄마는 자꾸만 목구멍 근처에서 소리를 냈다. ‘우’ 역시 입술을 동그랗게 하고 소리를 목구멍으로부터 입술 바깥으로 힘차게 내보내며 짧게 발음하면 되었지만 엄마는 높은 톤으로 목구멍 뒤에서 소리를 냈다. 열 번만 부르면 목이 쉴 것 같았다. ‘서’ 발음은 ‘시’보다는 나았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졸지에 발음 연습을 하고 있는 엄마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당신은 듣지 못하는 이름을 목에 피가 나게 불러보는 상황이라니.

엄마는 고민 끝에 시우가 좋다고 했다. 받침이 없어 발음하기도 어렵지 않고 멋지다고 했다. 정확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누가 들어도 ‘시우’를 부르는 것 같았다. 수어를 모어로 하는 농인에게 문자언어로 된 이름을 짓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자신은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아이를 부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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