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심야방송

신승훈의 노래 ‘라디오를 켜봐요’를 라디오에서 덜컥 듣게 되면 앗, 신기해라. “지금 라디오를 켜봐요.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노래가 그대를 향해 울리는 내 사랑 대신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아나요. 1분이 아쉬웠었던 그대와 내가 함께했던 날들이…” 옛날 길거리 벽에 붙어 있던 간첩신고 벽보. 밤에 이불을 옴팍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는 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 간첩이라는 설. 밤새 사랑에 눈물 흘리는 간첩도 있었더란 말이냐.
전쟁통에도 라디오는 송출되어 방방곡곡 쩡쩡 울렸다. 2차 세계대전 때 ‘안네 프랑크 일기’를 비롯, BBC 라디오 전파를 탄 소식들은 포탄 미사일보다 빠른 속력으로 날아갔다. 라디오는 결코 느림보가 아니야. 제아무리 테레비와 휴대폰 시대라도 쓰잘데없는 애물단지가 아니렷다.
친구가 긴 설 명절 휴일 동안 야외캠핑을 한번 가자길래 그러자 했는데, 블루투스도 되는 라디오가 한 대 있어 일찌감치 차 트렁크에 넣어두었다. 간첩도 아니면서 심야방송 듣는 걸 즐기고, 캄캄한 어둠 속 나긋한 아나운서의 소개로 흘러나오는 옛노래는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언젠가 라디오 심야방송에 초대되어 나간 일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랠 몇곡 들려주면서 얽힌 사연을 또 이야기해달라덩만. 사연이 징하게 많은 사람이라 한번 입을 열면 1박2일은 고사하고 3박4일쯤 필요해. 잠을 자려다가 흥미진진 솔깃해져서 죽은 나사로가 일어나듯 벌떡 일어날 얘기들. 식곤증에 졸던 학생들을 위해 노벨창작상 국어선생님의 첫사랑 얘기보다 더 재미나고 기이한 얘기가 수두룩박죽. 사연이 끝나면 신청곡 시간. 눈물콧물 짜면서 밤하늘의 트럼펫처럼 멀리멀리 울려 퍼지는 노래. 누군 “칫, 사연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누” 하면서 방송국에다 엽서를 보내기도 하지. 요샌 엽서 대신에 문자로 틱~ 몇자 보낸대. 에고, 정이 없다. 인생이 정으로 사는 거지.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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