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와 ‘진실의 순간’: ‘엡스틴 파일’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한겨레 2026. 2. 1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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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국 현대사의 80년 동안 수많은 스캔들과 폭로가 있었다. 오래된 스캔들의 경우는 이제 전문가 이외에는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다. 예컨대 1966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사카린 밀수 사건’을 지금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카린 밀수 사건이 삼성 재벌과 박정희 정권의 합작품이라면, 1977~78년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은 현대 같은 재벌이 언론인이나 정부 고위직 관료들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보다 파장이 덜했던 그 시절의 수많은 재계와 정치계 사건들은 이제 다수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한국 현대사의 이 숱한 스캔들이 남긴 유산은 분명히 존재한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정경유착이라는 이 사회의 현실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으며, 재벌·정치인 등 지배세력들의 도덕성이나 게임의 룰이 공정할 것이라 믿지 않는다. 폭로와 스캔들이 키운 이러한 불신은 일면으로는 기득권에 대한 혐오와 판갈이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또 일면으로는 탈정치화와 원자화 성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비단 한국뿐이겠는가. 대형 경제·정치 폭로나 스캔들은 다른 사회에서도 대중적 의식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왔다. 아마도 20세기 가장 파장이 컸던 폭로는, 1956년 소련 공산당의 제20차 대회에서 니키타 흐루쇼프가 행한 그 유명한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 연설’일 것이다. 동서양의 많은 진보주의자에게 자본주의에 대한 좀 더 나은 대안으로 보였던 스탈린주의는, 이 연설에 의해 비밀경찰의 공포로 지탱된 ‘경찰국가’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소련 체제의 권위가 1956년의 폭로로 반쯤 무너졌다면, 그 주적이었던 미국 역시 1970년대 초반의 줄 이은 폭로로 치명타를 입었다. 1971년의 ‘펜타곤 문서’ 폭로는 미국의 역대 정권이 국민에게 거짓말을 일삼으며 베트남에서 ‘중국 견제’를 위한 불법 침략 전쟁을 벌여온 정황을 드러냈고, 1972~74년의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정부가 의회주의 정치의 기본적 룰조차 존중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미국 패권의 몰락 과정은 일차적으로는 경제·사회·정치적 원인에 의해 진행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미국의 권위를 무너뜨린 1970년대 초반의 일련의 폭로들 역시 역할이 컸다.

소련이든 미국이든 지배자들은 폭로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불가항력의 상황이 닥쳐야만 폭로가 가능해졌다. 소련의 경우, 1953년 이오시프 스탈린 사망 이후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반란이 일어나 어쩔 수 없이 수용소 문을 닫게 되면서 죄 없는 정치범들이 대거 귀향하게 된 상황이 발단이었다. 공산당은 이미 다수가 알아버린 스탈린 치하의 대대적 강제 노동이라는 현실을 해명하느라 급급했고, 결국 흐루쇼프는 당수로서 ‘스탈린 비판 연설’이라는 형태로 해명을 내놓은 것이다. 1970년대 초반 미국 또한 경제 위기와 베트남전쟁 패배라는 악재 속에서 지배층이 분열했고, 그 상황에서 주요 일간지들이 ‘펜타곤 문서’ 같은 폭로 문건을 실어준 것이다. 평소라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거대한 스케일의 폭로는, 이처럼 위기 상황에서 가능해진다.

이번 ‘엡스틴 파일’ 공개 역시 미국 사회와 정치 위기의 징후를 그대로 드러낸다. 양극화, 노동자 실질임금의 사실상 정체, 주택 가격 폭등 등 민생고 속에서 미국인들은 갈수록 정부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1958년에는 73%의 미국인들이 ‘연방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지금 이 정도로 순진한 사람은 불과 17%뿐이다. 안 그래도 불신과 환멸이 팽배해 있는 위기의 미국 사회에서, 이미 36명의 소녀를 성적으로 학대한 정황이 확인된 제프리 엡스틴이라는 희대의 성범죄자가 2008년에 징역 18개월이라는 믿기 힘든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것이나, 2019년 의문투성이의 자살을 했다는 발표는 권력층에 대한 불신을 극도로 높였다. 엡스틴이 만약 빌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빌 게이츠와 일론 머스크 같은 정·재계 거물들에게 포주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처럼 뻔뻔스럽게 오랫동안 인신매매와 미성년자 성학대를 일삼을 수 있었겠느냐고 묻는 이들이 다수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는 (아마도 트럼프 본인에게 불리한 부분들을 대대적으로 삭제한 채) 민심 수습 차원에서 불가불 엡스틴 파일을 공개했다. 이 공개는 미국 국내외 수억명의 대중에게 ‘진실의 순간’이 되었다. 그들은 자본주의 말기의 발가벗겨진 사회의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엡스틴 파일 속의 미국은 사카린 밀수 사건이나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 시절의 한국과 본질적으로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정경유착의 사회다. 재계 갑부들과 정치 보스들은 함께 어울려서 미성년자를 성착취한다. 성 매수를 기반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는 권력 카르텔에는 정·재계뿐만 아니라 법조계와 학계 인사들도 참여한다. 심지어 노엄 촘스키 같은 체제 비판자들도 권력 카르텔의 중심에 선 ‘마당발 포주’ 엡스틴과의 친분을 유지하며 피해자들을 개인 편지에서 희화화했다. 상당수가 가난한 나라 출신의 외국인인 피해자들은 스탈린 시대의 소련을 방불케 하는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다. 법치는 말뿐이고, 미국이라는 국가 권력이 아동 성착취범들의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엡스틴의 덜미가 잡히자 트럼프나 게이츠, 머스크 등은 1970년대 초반 워터게이트에 걸린 리처드 닉슨처럼 자신의 말을 번복하면서 거짓말투성이의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엡스틴 파일은 극도로 부패한 정·재계 보스들의 비공식적 네트워크가 법치나 민주주의와 무관한 방식으로 관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의 민낯을 보여준다. 천문학적인 돈 앞에서 법치가 무너지고, 제도적 민주주의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해 형해화하는 이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분노가 무력감이 아닌 정의 실현과 변혁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광장을 메우고 부도덕한 특권 카르텔에 맞서는 투쟁에 나서는 민중들만이 성범죄자들이 통치하는 무너져가는 패권 국가 미국에 다시 한번 진정한 민주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 그들에게는 지금까지의 한국 민주화 투쟁 경험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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