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째를 맞은 차별금지법 발의에 부쳐 [프리스타일]

지난 연말, 기사를 쓰기 위해 이재명 대통령의 부처별 업무보고 영상을 몰아서 봤다. 짧은 시간 ‘정주행’하다 보니 대통령의 말에 관심이 쏠렸다. 특유의 거침없는 말투나 포퓰리즘 논란 때문은 아니다. 쏟아진 어록 가운데 이런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차별이 없도록’ ‘힘이 없어서’ ‘얼마나 서럽겠냐’ 등등. 비주류의 삶에서 비롯된 정치적 감각일까. 사안은 달랐지만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꽤 확고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면 이주노동자 임금 체불 문제나 혐오 표현 현수막을 언급하며 “수치스럽다”라고 꼬집는가 하면 재외동포 내 차별 대우를 지적하며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차별하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언급하며 “시험 잘 봤다는 이유로 덜 기여하면서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게 공정한 것이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듣자마자 ‘쇼츠감이네’ 하는 생각이 스친 사이다 발언이었다. 급기야 1월7일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중국인이 연루되어 있다는 질문에 이 대통령은 “(그래서) 어쩌라고요”라고 답했다. 혐오에 제대로 대응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통쾌함과 환호 뒤에 또 다른 ‘말’들이 떠오른다. 지난해 혐중 시위를 취재하며 알게 된 한 중국 동포 출신 취재원은 도처에 널린 혐오 발언과 행동들에 “온몸이 두들겨맞은 것 같았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대통령이 ‘깽판’ ‘수치’라고 직격한 혐중 시위와 현수막은 새해가 지나도 여전히 남아 있다.
‘통합 인사’로 주목받은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과거 성소수자와 이슬람 교도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한 국회 보좌진은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의 인권 의식을 따져 물을 의원들이 마땅치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도 차별금지법에 소극적이다. 실용주의가 최우선 가치가 된 정치권 ‘뉴노멀’ 앞에서 이런 이야기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까.
혐오에 대응하는 정치인의 존재는 소중하다. 권위자의 말 한마디가 상황을 반전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사람에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임시방편에 그치기도 한다. 2016년 일본은 재특회의 혐한 시위에 대응해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을 제정했다. 처벌 규정이 없어서 실효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있지만, 혐오에 대응하라는 전 국민적 요구에 정치권이 내놓은 답변이라는 점에서 복기할 만하다. 당시 법 제정에 관여했던 일본 시민사회 모임 ‘카운터스’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면 우산을 씌워서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사회에 필요한 건 소수의 ‘의인’을 넘어, 더 광범위하게 비를 막아주는 ‘우산’이 아닐까.
1월12일 진보당 손솔 의원 대표 발의로 제22대 국회 첫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다. 2007년 첫 발의 이후 올해로 19년째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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