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취향 분석·로봇 바리스타가 커피 만드는 시대… 불완전한 인간이 건네는 온기 섞인 한잔 그리워질 것[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2026. 2. 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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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AI시대 커피의 의미
한국의 카페는 집도 직장도 아닌 ‘제3의 공간’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곁에 놓고 노트북을 펼치거나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타인 속에서 고독을 즐긴다. 게티이미지뱅크

과테말라 안티과(안티구아)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봤다. 화산재 토양에서 자란 최고급 원두로 유명한 마을, 카페는 만석이었지만 현지인은 거의 없었다. 알고 보니 인구의 4분의 1이 커피 산업에 종사하면서도 최상급 원두는 대부분 수출하고, 정작 현지인들은 가격이 저렴하고 보관하기 쉬운 인스턴트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커피 농장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맛있는 커피’를 즐기는 일은 외국인 여행자의 특권이었다. 그날 마신 커피가 유독 쓰게 느껴졌다.

지난해 한국의 커피 수입액이 18억6000만 달러(약 2조6500억 원)를 넘어섰다. 전년보다 35%나 증가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은 이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커피 시장이다. 인구 5000만 명이 연간 평균 405잔을 마신다. 커피 한 알 나지 않는 땅에서, 우리는 남녀노소 하루 한 잔 이상 커피를 마신다는 말이다.

한국이 세계 3위 커피 시장이 됐다는 소식을 듣자, 안티구아에서 마셨던 그 커피가 떠올랐다. 생산국과 소비국이 이렇게 다른 풍경을 가질 수 있다니. 내수 시장이 큰 브라질을 제외하고, 베트남이나 과테말라 같은 중소 생산국에서는 좋은 커피가 일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베트남은 세계 2위 커피 생산국이지만 주로 저가 로부스타 품종을 생산한다. 향 좋은 아라비카 품종은 수출하고, 현지인들은 연유를 듬뿍 넣은 진한 커피로 품종의 한계를 가린다. 과테말라도 마찬가지다. 최상급 안티구아 원두는 해외로, 생산자들은 저렴한 블렌드를 마신다.

그렇다면 순수 소비국은 어떨까? 핀란드는 1인당 연간 12㎏의 커피를 마신다. 하루 10잔에 가까운 양이다.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커피 소비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겨울이다. 스웨덴의 ‘피카(Fika)’, 핀란드의 ‘카하비타우코(Kahvitauko)’처럼 커피 휴식을 뜻하는 단어가 일상용어를 넘어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로 자리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한국은? 우리도 연간 405잔을 마시지만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의 카페는 집도 직장도 아닌 ‘제3의 공간’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이어폰을 꽂은 채 타인 속에서 고독을 즐긴다. 카페는 교류의 공간이면서 혼자 있기를 허락하는 장소다. 서울이 전 세계에서 스타벅스 매장이 가장 많은 도시라는 사실은 이러한 한국 특유의 카페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커피 시장은 중국이다. 로컬 브랜드 루이싱커피는 스타벅스를 추월했지만 방식은 전혀 다르다. 이곳에서 커피는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이동 중 마시는 음료’에 가깝다. 루이싱의 매장에는 좌석이 거의 없다. 모바일로 주문해 커피를 받아 들고 곧바로 떠난다. 한국의 카페가 시간을 머무는 장소라면, 중국의 커피는 시간을 아끼는 선택이다. 14억 인구가 커피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중국의 커피 소비량은 5년 새 26% 증가했다. 이 변화는 세계 커피 지형을 다시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제 커피는 또 하나의 변곡점 앞에 서 있다. 인공지능(AI) 시대다. 인간의 노동이 빠르게 AI와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다. 밤을 새워 각성하며 해야 했던 일들마저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가 눈앞이다. 카페에서도 AI가 취향을 분석해 원두를 추천하고, 로봇 바리스타가 30초 만에 라테를 만든다. 효율은 극대화된다. 노동을 위해 각성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와도, 우리는 여전히 커피를 마실까.

어쩌면 그때야말로 우리는 진짜 커피를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커피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즐기기 위한 커피 말이다. 기술이 완벽함을 구현할수록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 건네는 온기 섞인 한 잔을 더욱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출근길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 앞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한 스푼 더 커피 없는 커피가 온다

기후위기로 커피 생산이 불안정해지자 실리콘밸리가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스위스 스타트업 ‘아토모(Atomo)’는 커피 원두를 전혀 쓰지 않고 커피 맛을 재현했다. 대추씨, 치커리, 포도씨 등을 발효시켜 만든다. 시애틀의 ‘컴파운드 푸드(Compound Foods)’는 인공지능(AI)으로 커피 분자 구조를 분석해 식물성 대체 커피를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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