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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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숏폼의 시대다. 그저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독자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숏폼 플랫폼이 등장했다. 시작은 중국이었다. 2022년 출범한 '릴숏'이 선두 주자다. 릴숏은 2025년 1분기 기준, 무려 1억3000만 달러(약 1900억원)에 달하는 인앱 구매 수익을 올렸다. 과연 세계 최대 숏폼 플랫폼 '틱톡'의 나라답다. 릴숏에서 만드는 드라마는 2분 내외로 매우 짧다. 일주일 이용권이 약 20달러로 넷플릭스 구독료보다 비싸지만, 빠른 전개와 자극적인 흐름에 수많은 구독자가 모인다.
릴숏이 이 시장의 시초는 아니다. 2020년에 북미에서 만든 퀴비(Quibi)라는 플랫폼이 있었다. 하지만 시기상조였는지, 당시에 짧은 콘텐츠와 구독료가 경쟁력이 없었는지 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드림웍스 공동 창업자인 제프리 카젠버그와 이베이 최고경영자였던 메건 휘트먼이 개발한 OTT인데도 말이다. 현재는 릴숏의 뒤를 바짝 쫓는 플랫폼으로는 싱가포르의 '드라마박스'가 있다. 작년에는 국내 배우인 이상엽이 드라마박스의 <폭풍같은 결혼생활>에 출연했다. 우리나라에도 잇따라 숏폼 플랫폼이 생겼다. 왓챠의 '숏차', 스푼랩스의 '비글루', 폭스미디어의 '탑릴스'다. 아직은 시작 단계로, 중국 쇼트 드라마를 가져오거나 자체 콘텐츠를 만들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도 뛰어들었다. 넷플릭스는 15분 길이의 다큐멘터리와 3분 애니메이션 등을 제작했다. 디즈니플러스는 IP를 활용한다. 디즈니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짧은 스핀오프 영상을 선보인다. 거기에 메타는 인스타그램 릴스를 TV에서 볼 수 있는 앱을 출시한다. '인스타그램 포 TV'는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세로 비율 릴스 영상을 그대로 TV로 옮겨온다. 거실까지 숏폼이 장악한 셈이다.
줄줄이 숏폼 트렌드를 나열했지만, 사실 플랫폼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지금 숏폼이 호황기인 데다 새로운 유형의 미디어인 점도 맞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는 TV를 바보상자라고 했다면, 이제 휴대용 바보상자를 들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유용하다. 스마트폰 속에는 놀랍고 편리한 기술이 집약되어 있으니까. 그럼에도 숏폼을 떠올리면 우려가 된다. 나중에 2시간 분량의 영화도 못 보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젊은 세대의 문해력 저하는 지금도 충분히 우려스러운데 어쩌나. 나조차 무언가 찾거나 보기 위해 유튜브에 접속했다가 본래 목적을 잊고 숏폼에 빠지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뭐든 빠르고 간결하게 바뀌는 현상이 정답은 아니다.
숏폼이 하나의 선택지라면 괜찮지만, 모두 단순하게 변해버릴까 두렵다."
콘텐츠로서 문제점도 있다. 숏폼 드라마를 예로 들어보자. 단시간에 시청자를 몰입시켜야 하는 숏폼 드라마는 자극적인 소재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사한 설정과 전개가 반복될 확률이 높고, 종종 표절도 생길 수 있다. 이는 곧 질 낮은 콘텐츠 증가로도 이어진다. 저비용 제작도 문제다. 원고료나 저작권 수익 배분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한 경우도 많다.
뭐든 빠르고 간결하게 바뀌는 현상이 정답은 아니다. 숏폼이 하나의 선택지라면 괜찮지만, 모두 단순하게 변해버릴까 두렵다. 지금도 영화 줄거리 요약 영상을 보고 한 편의 영화를 다 본 양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럼 숏폼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까? 디에프정신건강의학과의원 청담점 원장이자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를 운영하는 오진승 원장에게 물었다. "짧은 시간 안에 요약한 정보를 쉽게 얻는 게 장점이죠. 재미있는 콘텐츠에 몰두할 때 부정적인 생각이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기분이 일시적으로 환기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숏폼에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 먼저 단기적인 측면에 대한 설명이다. "숏폼을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버립니다. 해야 할 일을 못하고 미루거나 수면을 방해받을 가능성이 크죠. 특히 잠들기 직전 스마트폰은 30분만 사용해도 양적·질적으로 수면 상태가 나빠질 수 있습니다. 피곤한 상태는 다음 날로 이어져 생산성이 떨어뜨립니다. 밀린 업무나 학업에도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 되는 겁니다." 끊임없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는 데 익숙해지면, 장기적으로 긴 글을 쓰거나 하나의 작업에 몰입하기도 어려워진다. "숏폼의 즉각적인 보상을 경험하면 뇌는 '당장 재미있는 것'에 과도하게 반응합니다. 지루함을 견딜 수 없는 상태, 곧 집중력 및 주의력 저하와 우울이나 불안, 스트레스 악화로 이어집니다."
급속도로 숏폼에 빠지는 이유는 뭘까. 하려던 일도 까먹고 번번이 숏폼에게 지는 내 모습이 싫어서 오진승 원장에게 답을 구했다. "숏폼은 뇌의 보상회로를 효율적으로 자극합니다. 보는 동안 틈틈이 관심 가질 만한 콘텐츠를 섞어줘요. 그럼 우리의 뇌는 '다음에 더 재밌는 게 나오지 않을까' '몇 초짜리 영상이니까 하나만 더 보고 자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숏폼에 빠져들게 되는 거죠. 마치 카지노 슬롯머신에서 무작위로 나오는 보상처럼 끊임없이 기대감을 갖고 도파민을 분비하게 만드는 숏폼 시청에 휩쓸리게 되는 것입니다."
덧붙여 이전보다 숏폼 시청이 과도하게 늘어날 경우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우울감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빠진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전문가 상담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숏폼이 하나의 미디어로 자리 잡은 지금, 아예 시청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적절히 시청하는 방법도 있는지 알고 싶었다. "'숏폼을 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나 의지로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지나치게 시간을 뺏기지 않도록 나만의 장치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숏폼 시청 시간을 정해둔다거나 침대에서는 손 닿지 않는 곳에 스마트폰을 두는 것이죠. 보통은 '지금 당장' 할 게 없을 때 숏폼을 봅니다. 그 시간에 간단히 홈 트레이닝을 하거나 명상, 독서 등 대체 활동을 정해두면 도움이 됩니다. 스마트폰에 중독됐다면 특정 시간대에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접속을 막는 앱을 이용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그럼에도 숏폼은 흥미롭다. 세상 돌아가는 일, 예능의 재밌는 핵심을 쏙쏙 뽑아 보여준다. 숏폼 드라마도 궁금하다. 한국에서는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뻗어나갈지 기대된다. 물론 잘해나가려면 제도적으로 안정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대세인 숏폼을 피할 수 없다면 '잘' 즐겨야 한다. 지혜롭게 소비하기 위해 나만의 규칙을 세우자. 점심시간에 밥 먹은 뒤 10분만 본다든지, 퇴근길에 몇 개의 영상만 본다고 정한다든지. 무방비하게 빠져들 게 아니라 적당히 즐기는 게 필요하다.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일 테니까. 독서도 장편영화도 숏폼 드라마도 모두 볼 줄 아는 어른 말이다.
CREDIT INFO
Editor 김지수
Images 미드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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