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세대 발목, 이제 그만 잡자[메아리]

양홍주 2026. 1. 30. 18:3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0대와 20대, 공히 불운한 환경 겪은 세대
이제 '제한된 일자리' 놓고 경쟁하는 운명
청년에 치명적인 정년 연장, 급할 게 뭔가
편집자주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뉴스룸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일자리를 잃었거나, 취업을 준비 중이거나, 집에서 그냥 쉬는 '청년 백수'들이 지난해 11월 120만 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7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청년이 취업 공고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세대 간 '불행 배틀'이 벌어진다. 이런 식이다. 엑스(X)세대의 선공. '73년생. 제대 직전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 발생, 취업하려니 IMF사태 발발, 아시아 금융위기 때 실직. 나보다 불행한 세대 있나요.' 이에 맞서는 제트(Z)세대 역공도 만만치 않다. '00년생. 학창시절은 학원에서 날리고 힘들게 들어간 대학은 코로나로 짓밟혔다. 대기업들은 무경력 신입사원이라면 쳐다도 안 본다. 저희보다 불쌍한가요.' 50대와 20대. 이들은 직장이라면 고참부장과 신입사원만큼 격차가 크지만, 겪어온 시대적 배경은 우열을 가르기 힘들 만큼 공히 불운했다.

먼저 X세대. 대체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1998년을 예로 들면, 청년 실업률은 12~15%에 달했다. 100만 응시생을 넘나든 대입 좁은 문을 지나왔음이 무색했다. X세대가 일자리 찾느라 전전긍긍하는 동안 '월급 모아 집 사는' 세상은 저물고 있었다. '가난을 기억하는 최초 도시세대'라 불리는 이들에게 봄은 오지 않았다. 평생직장도 '하면 된다'는 신념도 무너졌다. 최대 낭패는 1969년생부터 국민연금을 정년 후 5년이나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는 거다. 경비 자리 하나를 놓고도 대졸자 500명이 경쟁해야 하는 세상에서(영화 '기생충'에서) 말이다. 하필이면 마지막 버스가 코앞에서 떠난 격이다. 억울할 만하다.

'희망조차 없었다'고 말하는 Z세대에겐 대신 '성장은 없다'는 뉴노멀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경제는 IMF위기 극복 후 V자 반등으로 성장률 7%를 넘나들더니, 고령화 그늘이 드리우자 2010년 이후 기세가 꺾였다. 2% 성장을 겨우 이어가다 Z세대가 성인이 될 무렵, 끝내 0%대로 향했다. 저성장이 아니라 무성장이다. '경력직 인턴'이란 유니콘만 취업시장에서 살아남는다. 무직청년 120만 명. 고용은 고작 44%. 부모들에겐 드문드문이라도 잡아 탈 수 있었던 일자리로 향하는 버스는 아예 끊겼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장면 중 하나는 약자끼리 싸움이다. 극히 제한된 재화를 놓고 경쟁하자니 이 다툼엔 생존이 걸리고 모두 피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가정에서라면 부모와 자식 사이로 만날, 이 두 불운한 세대가 지금 맞서는 구도가 딱 그렇다. Z세대의 신규 일자리, X세대의 정년 연장. 기업들이 제공할 파이는 더 커질 일 없는데, 부모와 자식이 이걸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한다. 세상사를 계층이나 세대 갈등으로 요약하는 건 권할 게 못 된다. 문제는 세상에 있는데,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게 부당해서다. 그래도 이 싸움에서만은 자식 세대 편을 들어야겠다.

최근 정부 여당이 정년 연장(65세)에 속도 조절을 하기로 했다. 인구 비율이 높은 X세대 뜻을 표심으로 읽었던 정치권이 '청년이 희생양일 수 없다'는 여론에 부딪치면서다. 그런데 청년 목소리를 경청하려 6개월 시간을 가지려는 여당에 노동계가 "왜 약속을 안 지키느냐"고 호통이란다. 정년을 늘리면 청년 일자리가 먼저 날아간다는 건 전망이 아니라 수치로 확인된 바다. 앞서 60세로 정년 연장 시 이전보다 청년 고용은 17% 가깝게 줄었다(한국노동연구원). 이대로라면 정년 65세 연장은 영락없이 자식 세대에겐 비수다. 부모 세대 뜻대로 정년을 급히 늘린들, 불황과 인공지능 발전으로 고용감축이 절실한 기업들에 그럴싸한 명분만 얹어 줄 뿐이다. 젊어서 기회가 많다느니, 부모세대가 더 불운했다는 말은 말자. 차라리 '시니어 군인'으로 복무하며 돈 벌고 싶다는 아재들이 응원받을 만하다. 얼마 전 부동산 수익 때문에 서울 청년안심주택이 고사 위기에 몰렸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제 제발 자식 세대 발목은 그만 잡자.

양홍주 논설위원 yanghong@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