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모욕 외교에… 한몸이던 ‘파이브 아이스’도 등돌렸다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2026. 1. 26. 00: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 英·캐나다와 갈등 심화
(왼쪽부터)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로이터·UPI ·AP 연합뉴스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영미권 5국의 안보 동맹체로 전후 자유 진영의 눈과 귀 역할을 해온 ‘파이브 아이스(Five Eyes·다섯 개의 눈)’가 중대 위기를 맞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립주의적이고 공세적인 대외 정책에 영국과 캐나다 정상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며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파이브아이스의 근간인 미국과 영국의 비밀 정보 교류 협정이 체결된 지 80주년 되는 해다. 혈맹 80돌을 기뻐해야 하는 뜻깊은 시기에 와해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된 모습이다.

파이브아이스의 원년 멤버이자 중심 축인 미국과 영국의 갈등은 올해 들어 걷잡을 수 없이 격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22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2021년)에서 함께 싸웠던 나토군을 언급하며 “우리는 그들이 필요했던 적이 없다. 그들은 전선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윤혜

이 발언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457명의 전사자를 낸 영국을 격분하게 만들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즉각 “모욕적이고 끔찍하다”며 반발했고, 헬기 조종사로 아프간에 파병됐던 해리 왕자까지 나서 “희생에 대해선 존중하는 마음으로 말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파장이 커지자 트럼프는 24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영국군을 사랑한다. 그들은 위대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영국은 이미 트럼프 2기와 심리적·실질적 거리 두기에 나선 상태였다. 최근 미국의 카리브해 마약 퇴치 군사작전에 대해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미국과 관련 기밀 정보 공유를 중단하는 초강수를 뒀다. 여기에 혈맹을 조롱하듯 한 트럼프의 발언은 불에 기름을 부었다.

또 다른 파이브 아이스 멤버이자 미국의 이웃 캐나다도 트럼프와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3~17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의 환대를 받으며 중국과 전방위적 경제 협력 확대 방침을 밝히자 트럼프는 캐나다를 겨냥한 적대적 조치를 쏟아냈다. 트럼프는 24일 트루스소셜에 카니 총리를 미국의 ‘주지사’로 지칭하며 “카니 주지사가 캐나다를 중국의 대미(對美) 수출 하역항으로 만든다면 모든 제품에 즉각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캐나다를 자국의 51번째 주로 간주한다는 특유의 비하 표현을 되풀이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휴전 후 평화 정착과 재건을 위해 출범시킨 ‘평화위원회’에 캐나다를 초청한 것을 철회한다고도 했다. 캐나다도 더 이상 미국을 동맹·이웃으로 간주하지 않는 모습이다. 카니는 지난 21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 경제 포럼 연설에서 트럼프를 겨냥해 “캐나다는 미국 덕분에 사는 게 아니라, 캐나다인이기 때문에 번영한다”고 말했다. 현 국제 정세를 ‘파열(Rupture)’로 규정한 그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전략이 될 수 없다”며 “중견국들은 뭉쳐야 한다. 우리가 식탁에 앉지 않으면, 메뉴판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시대 미국 주도의 질서에 미련을 버리고 반(反)트럼프 연대의 필요성을 주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동시에 불거진 ‘미국·영국’, ‘미국·캐나다’ 간 갈등으로 파이브 아이스가 결성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모습이다. 파이브 아이스는 과거에도 회원국 간 이견이 표출된 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갈등이 표면화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파이브 아이스는 국제사회의 여러 안보 동맹체 중에서도 차원이 다른 ‘혈맹’으로 인식돼왔다.

2차 대전 때 함께 피를 흘렸던 영국과 미국은 전후에도 핵심 정보 공유 필요성을 절감했고, 1946년 ‘비밀 정보 교류 협정’을 맺었다. 여기에 영연방이던 캐나다·호주·뉴질랜드가 순차적으로 합류했다. 민족(앵글로색슨계)·언어(영어)·종교(기독교)·정치 체제(민주주의)에서 동질성이 강한 5개국의 협력 수준은 여느 안보 동맹체와 달랐다.

냉전 시기 공산 진영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한 국제 정보 감시망 ‘에셜론’을 공동으로 구축·운영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때 미 정치권에서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과 일본 등 다른 자유 진영 국가들을 파이브 아이스에 참여시키는 방안이 수차례 거론됐지만 흐지부지됐다. 그런 혈맹이 트럼프 재집권 1년 만에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촉발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내의 갈등이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비용(Cost)’ 문제였다면, 파이브 아이스 위기는 피를 나눈 형제국 간 ‘신뢰(Trust)’의 붕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최우선 동맹조차 트럼프의 ‘거래주의’와 ‘모욕 외교’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각자도생의 길로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이브 아이스(Five 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국이 참여하는 영미권 정보 동맹. 1946년 미국·영국이 소련 등 공산국가와 냉전에 대응하기 위해 비밀 정보 교류 협정을 맺은 것이 시초로, 이후 나머지 국가가 합류하면서 1956년 5국 체제가 확립됐다. 파이브아이스 국가들은 미국의 최우방 동맹으로 대우받으며, ‘에셜론’이라 불리는 세계 최대 규모 통신 감청 시스템을 통해 전세계에서 수집한 기밀 정보를 공유한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원샷 국제뉴스 더보기(https://www.chosun.com/tag/oneshot/)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