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칼럼] 분노를 소비하는 사회

충청투데이 2026. 1. 2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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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문원 청주산업단지관리공단 전무이사

인간이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두려움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다. 바로 분노다. 우리는 지금 분노를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SNS의 익명성 속에서,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사람들은 매일 분노한다. 뉴스의 댓글창은 새로운 광장의 확성기가 되었고, 그 안에서 분노는 개인의 외침을 넘어 집단의 심리로 확산되면서 유통된다. 그러면서 조회 수와 광고 단가를 끌어올리는 상품이 된다.

분노가 소비되는 경로는 명확하다. 자극적인 프레이밍, 단순한 선악 구도, 누군가를 즉각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가 분노를 호출한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이러한 분노를 선호한다. 격한 감정은 체류 시간을 늘리고 공유를 촉발한다. 결국 우리는 분노를 느끼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분노를 생산·재생산하는 소비자가 된다. 분노의 순환 고리 속에서 차분한 설명과 맥락은 설 자리를 잃는다.

이 과정에서 사회는 '즉각적 판단'에 익숙해진다. 사안의 복잡성은 축소되고, 책임 소재는 지워진다. 누군가는 가해자로, 누군가는 피해자로 빠르게 분류된다. 분노는 도덕적 우위를 부여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유를 멈추게 한다. 분노가 클수록 질문은 줄고, 질문이 줄수록 공론장은 거칠어진다. 그 결과 사회는 합의보다 단죄에, 해결보다 처벌에 기울어진다.

분노 소비의 또 다른 문제는 피로다. 분노는 강한 감정이기에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 더 센 자극이 필요해지고, 기준은 점점 높아진다. 어제의 분노는 오늘의 무감각이 된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조차 흥미의 재료로 소모된다. 공감은 형해화되고, 연대는 일회성 분노 표출로 대체된다. 분노가 많아질수록 사회적 신뢰는 줄어드는 역설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분노를 부정할 수는 없다. 분노는 부당함을 감지하는 감각이며, 변화를 촉발하는 에너지다. 역사적 진보의 많은 순간은 정당한 분노에서 출발했다. 문제는 분노가 목적을 잃고 소비될 때다.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분노, 책임과 대안을 묻지 않는 분노는 사회를 전진시키지 못한다. 분노를 소비하는 시대를 넘어서는 첫걸음은 '속도'를 늦추는 일이다. 화가 나는 순간 한 박자 멈추고, 사실과 맥락을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언론과 플랫폼 역시 분노를 키우는 장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클릭을 부르는 감정보다 이해를 돕는 정보, 분열을 조장하는 구도보다 해결을 탐색하는 보도가 공론장의 품격을 지킨다. 분노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그 분노를 무엇으로 쓰느냐는 사회의 선택이다. 소비되는 분노의 시대에서, 성찰로 이어지는 분노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분노가 아니라, 분노를 다루는 더 성숙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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