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팬덤 OS 선언한 카카오… “재료는 있는데 설계도가 없다”

'팬덤 생태계' 아닌 'OS'를 꺼낸 이유
24일 관련 업계에 의하면 정신아 카카오그룹 CA협의체 의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2026년 성장을 이끌 두 개의 핵심 축으로 '사람 중심의 AI(Human-centric AI)'와 '글로벌 팬덤 OS(Global Fandom Operating System)'를 제시했다.
사람 중심의 AI는 카카오 AI 사업전략의 일환이다. 이용자의 의도와 상황을 먼저 이해하고 다음 행동을 제안하는 '에이전틱 AI'를 말한다. 글로벌 팬덤 OS는 카카오의 슈퍼 IP, 플랫폼을 비롯한 풀스택 자산을 결합하는 생태계다.
팬덤 OS는 카카오 콘텐츠 사업부문을 하나로 연결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카카오는 분기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플랫폼 부문(카카오톡·카카오모빌리티·포털 다음 등)과 콘텐츠 부문(카카오엔터테인먼트·SM엔터테인먼트·카카오픽코마·카카오게임즈 등)이 각각 실적을 절반씩 담당한다.
정신아 의장이 팬덤 생태계가 아니라 OS로 표현한 것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이용자가 안드로이드 OS 속 다양한 앱·서비스로 활동하는 것처럼 글로벌 팬덤이 카카오 생태계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카카오가 콘텐츠 부문을 글로벌 팬덤 OS로 발전시킬 재료는 이미 완비된 상태다.
카카오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음악, 웹툰·웹소설, 영상 제작 등 K콘텐츠의 핵심 가치사슬을 내재화했다. 카카오페이지·카카오웹툰·멜론·베리즈·버블 등 특정 콘텐츠를 열렬히 소비하는 팬덤이 모이는 플랫폼도 다수 운영한다.
재료는 충분한데 연결은 안돼
문제는 해당 플랫폼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하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카카오는 현재 팬이 무엇을 소비했는지에 관한 데이터만 보유하고 있다. 멜론의 음원 재생 기록,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웹소설·웹툰 구매 및 대여 기록, SM엔터테인먼트의 음반·MD·콘서트 티켓 판매 데이터 등 다 따로 존재한다.
이 팬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와 다음 행동이 무엇일지를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맥락 데이터가 부족하다. 예를 들어 하나의 카카오톡 계정을 이용해 카카오페이지에서 웹소설과 웹툰을 보고 멜론에서 음악을 들으며 베리즈와 버블에서 K팝 아티스트 덕질을 하더라도 카카오 측에서는 이 모든 활동을 연결해서 볼 수 없다.
카카오톡 계정 이용자 A씨가 카카오페이지에서 어떤 장르의 웹소설·웹툰을 봤는지는 카카오페이지에만 남는다. A씨가 멜론에서 어떤 장르의 음악을 자주 듣는지는 모른다. 베리즈·버블에서 어떤 아티스트의 팬 활동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 SM엔터테인먼트의 어떤 아티스트 음반을 자주 샀고 무슨 공연을 봤는지도 알 수 없다.
이렇게 각각 플랫폼별, 사업별, 법인별로 있는 데이터가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팬덤이 언제·어디서·무엇을·어떤 경로로 활동했는지 맥락을 파악할 수 없다.
카카오의 각종 콘텐츠 플랫폼과 서비스를 하나로 묶더라도 OS라기보다는 백화점형 플랫폼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배경이다. 백화점처럼 고객이 어떻게 와서 무엇을 보고 어떤 상품을 샀는지 구매한 매장이 아닌 옆 매장에선 그 맥락을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 카카오에 의하면 같은 카카오 계정으로 로그인했더라도 서비스가 다르면 카카오 그룹 내부에서는 해당 이용자가 동일인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멜론에서 청량한 느낌의 걸그룹 노래를 자주 듣는 A씨와 카카오페이지에서 무협 웹툰을 자주 보는 A씨가 같은 계정이라도 같은 사람인지 모른다면 어떤 AI를 붙이더라도 개인화 서비스의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개인화의 한계, 데이터가 갈라져 있다
구글의 경우 2012년에 이미 개인정보 처리방침과 서비스 약관을 개정해 이 같은 맥락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한 서비스를 통합 관리하는 방식이다. 구글 인터넷 브라우저 크롬에서 어떤 웹사이트를 방문했는지, 유튜브에서 어떤 영상을 봤는지, 포털 구글에서 무엇을 검색했는지 등의 데이터를 모두 모아서 관리한다. 모든 제품·서비스에서 이용자를 한 명으로 간주해 데이터를 관리한다는 것이다. 구글이 맞춤형 광고 시장을 선점하고 AI를 빠르게 고도화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특히 카카오가 구현하려는 팬덤 OS에서는 팬 행동의 감정적 데이터가 필요하다. 팬덤은 일반 소비자와 달리 합리적 소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지 않고 가격 대비 만족감을 우선시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라면 3시간 뒤에 무료로 볼 수 있더라도 유료로 결제하기도 하고 더 좋은 자리에 앉으려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5만원 이상의 추가 요금도 지불한다.
카카오가 팬덤 OS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런 데이터를 모아 고객관계관리(CRM)처럼 팬덤관계관리(FRM)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객관계관리는 소비자가 자주 찾아와 더 많이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기술이다. 첫 구매 후 구매 감사 할인쿠폰을 지급하거나 리뷰 이벤트에 참여했을 때 포인트를 많이 적립해 주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할인쿠폰을 너무 자주 지급하면 스팸처럼 여겨지듯 CRM은 쿠폰 지급 주기까지 관리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업계 전문가는 "팬덤 OS가 서비스 묶음에 그치지 않으려면 팬으로 분류되는 소비자가 어떤 상태인지부터 분석할 필요가 있다"며 "카카오가 AI와 웹3도 팬덤 OS와 결합하려 한다면 멜론, 버블, 커머스, 카카오페이지 등 카카오 서비스와 서비스 사이 활동의 맥락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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