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8시 전쟁 치른 삼남매네… '1시간 늦출'이 구세주 될까요 [젠더살롱]

강지수 2026. 1. 2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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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살롱] 핫이슈 된 '육아기 10시 출근제'
자녀 '초6 이하'면 대상... 노동부 문의 폭주
하루 1시간 늦은 출근 또는 이른 퇴근 가능
'중견·중소' 임금 삭감 없이... '기업에 장려금'
"업주 자율이라 퇴짜 놔" "대기업도 해달라"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의 글도 기고로 함께 합니다.
구글의 생성형 인공지능 제미나이로 그린 워킹맘 송지희씨와 삼남매 평일 아침 8시 풍경.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 하준이는 식탁에 앉아 태블릿PC를 보며 식빵을 먹고 있고, 유치원생 둘째 하음이는 잠옷을 입은 채 식탁에 엎드려 울고 있다. 네 살 막내 예음이는 머리 묶는 순번을 기다리다가 식탁 밑에서 잠들었다. 제미나이·강지수 기자

오전 7시 30분. 첫째 아들을 씻기고 옷까지 입히고 나면 남편이 먼저 일터로 떠납니다. 첫째를 식탁에 앉히고 밥을 차리니 속 모르는 얘기를 하네요. "엄마, 나 빵 줘."

우유 한 잔과 함께 식빵 한 장을 쥐어줬더니 이번엔 태블릿PC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먹는 둥 마는 둥이네요. 혼낼 시간도 없습니다. 벌써 10분이 흘렀습니다. 아이가 두 명 더 남았거든요. 둘째 딸과 막내딸을 깨워 얼굴만 간신히 씻기고선 식탁에 앉혔습니다.

시계를 보니 8시. 두 딸 유치원·어린이집 셔틀버스를 태우기까지 20분 남았습니다. 오늘 따라 둘째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투정입니다. "'토끼머리' 해줄게. 얼른 머리 묶고 원복 입자." 그새 딸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식탁에 엎드리네요. 시계 초침은 제 갈 길을 갑니다. 아뿔싸. 잠시 시야에서 사라졌던 막내가 식탁 밑에서 혼자 놀다가 잠에 들었네요. 10분이 또 흘렀습니다. 곧장 딸들 옷을 입히고 셔틀에 태워보내고 나서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면 저의 9시 출근은 사수할 수 있겠죠? 아직 제 머리는 산발이고 바지는 잠옷 차림이기는 하지만요.

식은땀이 줄줄 나는 이 풍경. 지난달 이하준(10)·하음(7)·예음(4) 삼남매 평일 아침 일상입니다. 세 아이의 엄마 송지희(40)씨는 "삼남매 워킹맘은 죄인"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습관이 된 지 오래입니다. 남편 이윤수(43)씨는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다섯 가족 생활이 어렵다"며 "내년엔 둘째가 입학하는데..."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낮 시간은 학교나 보육 시설이 있으니 문제없는데 아침, 저녁이 문제였습니다. 부부 중 한 명이 육아휴직을 해야 하나 이리저리 계산기를 두드려봤지만 답을 쉽사리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지희씨네 삼남매 아침 전쟁에 기적같은 소강상태가 찾아왔습니다. 부부가 동시에 1년간 '육아기 10시 출근제'를 이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모두 회사에서 '1호' 신청자가 됐습니다. 직원이 6명뿐인 웹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지희씨, 중소기업 중간관리자인 윤수씨는 지난해 가을 '10시 출근제'가 도입된다는 소식을 눈여겨봤습니다. 올해 1월 1일부로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인사팀과 대표님을 직접 찾았습니다. 기존에는 '오전 9시~오후 6시' 근무를 했었다면, 지희씨는 앞으로 오전 10시 출근(1시간 늦은 출근)을, 윤수씨는 오후 5시 퇴근(1시간 빠른 퇴근)을 합니다.

지희씨 부부만이 아닙니다. 맘카페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육아기 10시 출근제, '정상 출근 빠른 퇴근'도 가능한 거죠?" "휴직 고민 접고 써보렵니다" 등 관심이 줄을 이었습니다. 아빠들 관심도 뜨겁습니다. 5세 딸을 둔 이윤재(38)씨는 이 제도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딸이 어느 날 저녁 하원 후 울면서 말했어요. '아빠 나는 왜 어린이집에서 매일 꼴찌로 집에 가?'라고요. 올해는 제가 '1시간 빠른 퇴근'을 하고, 내년엔 아내가 쓰기로 했습니다."


임금 삭감 없이 자녀 수 무관 최대 1년 가능

어린 자녀를 둔 직장인들의 마음을 제대로 겨눴기 때문일까요.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에도 문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문의글만 99개. 담당 부서에 유선 문의도 빗발친다고 해요. 노동부는 자주 묻는 질문을 추려 홈페이지에 게시했습니다. 함께 제도를 들여다볼까요?

그래픽=박종범 기자

우선 제도 타깃은 '12세 또는 초등 6학년 이하 자녀를 둔 중소·중견기업 근로자'입니다. 이들에게 1개월 이상 하루 1시간 임금 감소 없이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한 중소기업(우선지원대상기업)과 중견기업 사업주에게 근로자 1명당 월 30만 원의 장려금을 주는 거죠. 단축 근로 형태는 늦은 출근 혹은 빠른 퇴근이 모두 가능합니다. 출퇴근을 30분씩 쪼개어 '오전 9시 30분 출근, 오후 5시 30분 퇴근'도 되고요. 이렇게 최대 1년간 제도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3개월마다 한 번씩 신청하면 정부가 심사 후 장려금을 지급합니다. 총 근로자 수의 30% 한도(회사당 최대 30명) 제한과 근로자 출퇴근 기록을 관리해야 할 의무는 있습니다. 한 중견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제도를 쓰기 위해 취업규칙을 수정했다"며 "휴직 결원이 줄어들면 근무연속성이 유지된다는 차원에서 회사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법적 강제성은 없어 회사에 '허용 의무'가 없습니다. 회사와 자율적인 합의가 성사돼야 합니다. 즉 사업주가 거절하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이죠. 한 네이버 맘카페에는 "설득하러 갔는데 사장이 싫다고 하더라" "퇴짜 맞았다"라는 댓글도 여럿 보였습니다. 대기업 직장인도 적용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김이진(35)·윤나영(32)씨 부부는 "제도 취지가 좋아 알아봤는데 우리 부부가 다니는 대기업 계열사도 제외라고 해서 아쉬웠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존에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있었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근거한 '의무' 제도인데요. 직장인이 12세(초등 6학년) 이하 자녀 양육을 위해 최대 1년(육아휴직 미사용 시 최대 3년)간 주당 근로시간을 15~35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치명적인 단점은 '임금 삭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가령 주 근로시간이 40시간인 직장인이 주당 10시간씩 단축근무를 하면 나라에서 최대 55만 원까지 보전해줍니다. 대부분 제도 사용자들이 10시간 일할 때 벌 수 있는 돈보다 보전금액이 적어 가계 수입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당초 근로시간 단축제를 사용 중이더라도, 근로시간 단축 전 6개월을 '주 35시간 이상' 일했다면 10시 출근제를 바로 이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두 제도 동시 사용은 안 됩니다.


첫해 예산은 1734명분... 확대 여부 검토 계획

게티이미지뱅크

노동부에선 중소·중견기업 직장인의 일·생활 균형 문화 확산에 도움을 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과 달리 중소기업 등 영세사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 등으로 육아휴직을 못 쓰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노동부가 발주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수행한 '2024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육아휴직 대상자 모두 사용 가능하다'는 답변이 89.2%인 반면 5~9인 사업장에선 60.1%에 불과해 격차가 컸습니다.

올해 육아기 10시 출근제도 관련 예산은 1,734명분(31억 원)으로 책정돼 있습니다. 노동부는 올해 제도 도입 첫해인 점을 감안했지만 향후 현장 수요에 따라 확대 여부를 검토할 계획입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양육 부담을 현실적으로 줄여줘 출산을 장려할 수 있는 간접적인 효과까지도 기대해볼 수 있다"며 "아예 제도화해서 전체 사업장에서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짚었습니다. 예산 부담이 있다면 다른 형태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제언했습니다.

1시간의 '늦출'(늦은 출근)이나 '빠퇴'(빠른 퇴근)가 아침 전쟁을 끝낼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요. 지희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제가 '워킹'이나 '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나 하루하루 괴로웠습니다. 누군가에겐 '겨우 한 시간'이겠지만 우리 가정에 평화유지군이 돼 줄 거라 믿어요."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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