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잔] ECM 2342

2026. 1. 24.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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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 2010. ©안웅철
사진을 찍자마자 바로 볼 수 있는 폴라로이드 즉석 필름은 1940년대에 탄생한 혁명적 기술이었다. 특유의 색 번짐과 낮은 해상도가 빚어내는 흐릿한 분위기로 한때 수많은 애호가를 거느렸지만, 아쉽게도 개발자의 타계와 디지털 등장으로 쇠락의 길을 걷더니 결국 2008년 생산이 중단됐다. 그러자 이전 기술자를 주축으로 단종된 필름을 복원하기 위한 작전명 ‘임파서블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이 과정을 거쳐 재탄생한 즉석 필름은 기술력이나 잉크의 속성 등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드러냈다. 특히 기술적인 한계로 우연성은 커졌고, 색 번짐도 더욱 심해졌다. 평소 풍경 사진을 즐겨 찍던 안웅철은 오히려 즉석 필름이 지닌 불완전성을 즐겼다. 비 오는 날 창가에서 바라본 것처럼 물방울이 맺힌 듯 현상된 우포늪의 풍경은 사실 맑은 날 찍은 사진이다. 그는 이렇게 얻은 이미지를 스캔한 뒤 확대한 프린트로 보여줌으로써 즉석 사진의 예측 불가능한 질감을 더욱 부각했다.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낸다는 독일의 음반 회사 ECM은 절제된 재킷 디자인과 이미지로도 유명하다. 이 회사 설립자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만프레트 아이허는 어느 날 서울에 왔다가 안웅철의 폴라로이드 사진에 매료되었다.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하는 몽환적이면서도 낯선 풍경은 하나의 선율도 듣는 이마다 해석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그의 음악 세계와 연결되는 듯했다. 정명훈 최초의 피아노 솔로 앨범이자 ECM의 2342번째 앨범이면서 안웅철의 첫 ECM 재킷 사진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안웅철은 ECM과 협업 중이다. 1년에 한 번씩 자신의 사진을 골라 보내면, 아이허는 그중 서로 어울릴 법한 음반과 사진을 짝지어 화답한다. 아이허와의 협업 전에도 음악광인안웅철은 이미 ECM의 음반을 500장쯤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음반의 음악과 재킷의 이미지들이 자신의 사진에 영감을 미쳤다고 늘 생각한다. 자신의 사진이 누군가에게 그러한 것처럼.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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