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전략 바꾼 트럼프 "전면적 접근권 확대"

최익재 2026. 1. 24. 00: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린란드 사태 봉합 국면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 [AP=연합뉴스]
그린란드 사태가 해결 가닥을 잡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발 물러서면서 미국과 유럽 간 정면충돌은 일단 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사무총장과의 회담 후 “그린란드와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의 합의 틀(프레임워크)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다만 합의의 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을 철회하는 대신, 이 섬의 군사적 활용과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크게 확대하는 데 동의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부 사항은 지금 협상을 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린란드에 대한) 전면적 접근”이며 “그것에는 끝이 없고 시간제한도 없다”고 말했다. 그린란드에 대해 전면적이고 영구적인 접근권을 갖게 된다는 의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덴마크의 그린란드에 대한 주권 인정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폭스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그린란드를 획득하게 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될 수도 있다”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가능하다는 뜻이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다만, 그동안 우리는 우리가 원했던 모든 것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뤼터 사무총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그린란드 주권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각 “트럼프, 미군기지가 위치한 땅 주권 요구”
닐센 그린란드 총리. [AFP=연합뉴스]
그린란드 자치정부의 옌스-프레데릭 닐센 총리는 “그린란드 문제 해결을 위한 틀에 합의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 미 CNN 방송은 “합의의 틀은 구두로만 논의됐을 뿐 공식화된 문서가 없다”고 했다. 현재까지 외신들이 전한 구체화된 합의 내용은 1951년 덴마크가 미국과 체결했던 ‘그린란드 방위 협정’에 대해 추가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여기에는 그린란드에서 나토의 역할을 강화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그린란드 투자를 차단한다는 것이 포함된다. 나토의 역할 강화는 미군 기지의 역할과 기능 확대를 의미하고, 중·러의 투자 차단은 향후 희토류·석유 등 그린란드 자원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개발을 위한 사전 조치로 해석된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트럼프, 차세대 방공망 ‘골든돔’ 수차례 언급
특히 그린란드 내 미군 기지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 미국의 차세대 미사일 방공망인 ‘골든돔’을 언급해왔다. 골든돔은 미국 본토를 겨냥한 러시아와 중국의 미사일을 조기에 탐지하는 시스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원하는 모든 군사적 접근권을 갖게 될 것”이라며 “골든돔은 매우 놀라운 것이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그것(아이언돔)의 100배 정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전체가 아닌 미군 기지가 위치한 땅에 대한 주권 행사를 요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는 영국이 키프로스에서 보유하고 있는 군 기지를 모델로 삼은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영국 정부는 1960년 키프로스가 독립한 이후에도 현지에 있는 아크로티리 기지와 데켈리아 기지를 영국령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 덴마크 정부는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 안보·투자·경제 등은 무엇이든 협상할 수 있지만, 우리의 주권을 놓고는 협상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일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서 시민들이 ‘그린란드는 파는 물건이 아니다’라고 적힌 게시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문제에서 한발 물러선 이유는 유럽의 거센 반대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요구는 당초 ‘군사력을 사용한 강제 병합’ 또는 ‘그린란드 매입’이었다. 하지만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주요 8개국이 그린란드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자 강경 방침에서 그린란드에 대한 영구적·전면적 접근권 확보라는 플랜 B를 꺼내 들었다. 사실, 외신들은 강제 병합이나 매입의 가능성을 희박하게 봤다. AP통신은 “미국이 나토 동맹국이 덴마크의 영토인 그린란드를 침공한다면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린란드 매입 역시 덴마크 정부가 매물로 내놓지 않을 것이기에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요구를 최대한 관철하기 위한 사전 환경 조성을 위해 군사 행동을 거론하면서 무리한 조건을 내세웠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도 그린란드에 대한 덴마크 주권을 확실하게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향후 진행될 협상을 위한 계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그린란드 감시작전을 위해 파병된 덴마크 군인들이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병합 계획을 철회했다. [EPA=연합뉴스]

‘미국이 새로운 위협’ 유럽 내 분위기 확산
트럼프 대통령이 후퇴한 또 다른 이유는 ‘나토 붕괴론’ 때문이다. 80년간 유지된 나토가 해체될 경우 미국의 입장에서도 타격이 작지 않다. 러시아를 견제해왔던 유럽 각국의 미군 기지 운용 자체가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그린란드 사태로 미국과의 대립이 격해지자 일부 나토 회원국들은 유럽에 주둔 중인 미군에 대한 지원 중단이나 미군 기지에 대한 통제권을 회수하자는 방안도 거론했다. 현재 미군 유럽사령부는 2024년 기준으로 유럽 기지 31곳에 6만7500명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한 유럽 주요 8개국에 대한 추가관세 부과를 철회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자칫 대서양 무역 전쟁이 발생해 미국과 유럽은 물론 전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대가로 군사·경제 분야에서 유럽과 디커플링 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미국에 휘몰아칠 후폭풍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과 뤼터 사무총장의 회담 결과와 관련, 유럽 각국은 일단 안도했다. 당사자인 덴마크와 그린란드는 경계하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덴마크의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는 “영토 보존을 존중한다는 전제로 미국의 골든돔을 포함한 북극 지역 안보 강화 방안을 동맹국들과 건설적으로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닐센 그린란드 총리도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주요국들은 나토의 결집을 촉구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지난 며칠은 세계 무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큰일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며 “이제 우리는 본격적으로 어려운 일, 북극 안보를 위해 나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유럽 영토를 무력으로 점령하겠다는 모든 위협은 용납할 수 없다. (미국의 무력 병합 철회는) 우리가 가야 할 올바른 길”이라고 말했다.

「 “그린란드와 북극 지역에 대한 미래의 합의 틀이 마련됐다”
“그린란드에 대한 군사적 병합은 없다. 유럽 8개국에 대한 추가 관세도 철회했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린란드 주권을 존중한다면 안보 강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
- 덴마크 및 그린란드 정부

“이제 우리는 북극 안보를 위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 스타머 영국 총리
“(미국의 무력 병합 철회는) 우리가 가야 할 올바른 길”
- 메르츠 독일 총리
“동맹 간 대화를 지속하고 증진하는 것이 필수적”
-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긴장 완화의 길로 접어들었고 관세 철회는 긍정적”
- 스호프 네덜란드 총리

한편 전문가들은 그린란드 사태가 일단 봉합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트럼프 행정부 발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외신들도 유럽 국가들 사이에 미국을 새로운 위협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기간 동안은 이런 추세가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따라 유럽 내부에서는 힘을 키워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22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유럽의 군사적 재무장과 공급망 강화 등을 포함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유럽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고 했지만, 아직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다.

AP통신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손을 뗀다면, 당장 유럽은 러시아의 위협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을 요구할 때, 유럽 국가들이 한목소리로 미군 기지 철수나 관세 보복 등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도 미국과 정면 대결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최익재 기자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