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해라, 네 멋대로 봐라

2026. 1. 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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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필름 IN] 극장가 ‘어게인 누벨 바그’
다들 또 누벨 바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잘난 척을 시작했다. 영화광들은 원래 좀 잘난 척을 한다. 내가 영화광 출신이라 잘 안다. 영화광들은 영화 사조에 밝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같은 사조들이다. 그런 걸 알아야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냐고? 그런 일은 없다. 좋은 영화는 어떤 사조를 대표하고 자시고 상관없이 마음을 울릴 줄 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알아야만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이나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1954)을 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역사에 남은 영화는 그 자체로 훌륭하기 때문에 역사에 남는다. 영화는 영화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 ‘누벨 바그’(2025). 올해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사진 각 제작사]
다만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다. 영화 사조를 알면 영화가 좀 더 잘 보이기 시작한다. 영화도 역사다. 여러 혁명을 거쳐 진화해 왔다. 지금 유럽의 정치를 알기 위해서는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등을 알아야 한다. 지난 역사를 모르고 지금 역사를 이해하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영화 사조도 그렇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은 세트를 지어 놓고 조명을 치고 전문적인 배우를 캐스팅해 영화를 만들던 시대를 바꿨다. 2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인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 감독들은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자연광을 이용하고 비전문 배우를 고용해 거리에서 진짜 인생을 담아내려 했다. 요즘에야 이런 방식의 영화는 흔하다. ‘네오리얼리즘’ 이전에 그런 방식의 영화는 드물었다.

수많은 영화 사조 중에서도 가장 자주 이야기되는 것이 ‘누벨 바그’다. 누벨 바그는 어려운 단어가 아니다. 영어로 ‘뉴 웨이브’라는 뜻이다. ‘새로운 물결’이다. 영화사에 새로운 물결은 많았다. 이를테면 조지 루카스의 ‘스타 워즈’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도 새로운 물결이었다. 전례 없는 규모의 장르 영화를 만들어 전국 극장에 동시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를 탄생시켰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의 영화를 뉴 웨이브라고 부르진 않는다. 영화의 역사에 있어서 영화라는 매체의 성격을 아예 혁명적으로 바꿔버린 사조는 누벨 바그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다른 뉴 웨이브가 나와도 누벨 바그는 영원히 뉴 웨이브로 남을 것이다. 21세기 젊은 감독들이 심심할 때마다 누벨 바그 타령을 하는 이유다.

파격 실험으로 당시엔 이단아 평가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 ‘누벨 바그’(2025). 올해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사진 각 제작사]
지금 한국 극장계는 다시 누벨 바그 열풍이다.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1995~ 2013), ‘스쿨 오브 락’(2003)과 ‘보이후드’(2014)를 연출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신작 ‘누벨 바그’(2025)가 상영 중이다. 지난해 전 세계 비평가와 매체들이 꼽은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서 1위나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다. 골든글로브 어워드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다. 오스카 후보에서는 탈락했다. 오스카는 종종 이런 실수를 한다. 프랑스어로 만든 미국영화라 좀 애매하기도 했을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평론가로서 내가 꼽은 2025년 최고의 영화이기도 하다. 여러분이 평론가가 꼽은 베스트 리스트 같은 걸 선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평론가들은 굳이 어려운 영화들을 건져내어 자기 리스트에 넣는 버릇이 있다. 심지어 영화 사조 명칭을 그대로 딴 ‘누벨 바그’라는 영화라니, 당연히 어렵고 골치 아픈 영화일 거라 지레짐작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누벨 바그’는 어쩌면 여러분이 올해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귀엽고 웃기는 코미디 영화다.
영화 ‘누벨 바그’ 포스터. [사진 각 제작사]
영화 ‘누벨 바그’는 ‘누벨 바그’라는 사조를 만들어낸 여러 감독 중 하나인 장 뤽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1960)라는 데뷔작을 만든 과정을 그려낸다. 1950년대 프랑스에서는 젊은 영화평론가들이 직접 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카이에 뒤 시네마’라는 영화 잡지에서 영화평을 쓰던 젊은이들은 기존 영화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할리우드나 당대 프랑스 영화들이 문학 작품이나 각색해 고루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영화는 세트에서 정확한 조명을 쳐서 스타들을 기용해 만드는 일종의 문예 영화에 가까웠다. 영화 감독을 ‘작가’로 호칭하지도 않았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투영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작가’라 부른다. 봉준호도 작가고 박찬욱도 작가고 홍상수도 작가다. 영화의 ‘작가주의’다. 작가주의라는 말을 탄생시킨 사람들이 바로 1950년대 젊은 프랑스 평론가들이었다. 영화가 문학이나 미술이나 음악과 다름없는 예술의 위치에 올라선 것이 이들 덕이라고 말하는 것도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많은 젊은 평론가들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직접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끌로드 샤브롤은 ‘미남 세르주’(1958)로 데뷔했다. 아녜스 바르다는 ‘라 푸앵트 쿠르트의 여행’(1955)으로 데뷔했다. 홍상수 영화를 거론할 때 항상 등장하는 에릭 로메르는 ‘사자자리’(1962)로 데뷔했다.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독자들도 이름은 분명 들어봤을 프랑수아 트뤼포다. 그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400번의 구타’(1959)로 데뷔하자마자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계는 이들을 묶어 ‘누벨 바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았다. 기존 영화들이 다루지 않던 영역을 기존 영화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다. 비전문 배우를 고용해 야외에서 즉흥적으로 촬영을 했다. 찍은 장면들을 자유롭게 편집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했다. 누벨 바그가 ‘400번의 구타’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초조해진 남자가 하나 있었다. 같은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성격 모나기로 유명했던 장 뤽 고다르라는 남자였다. 그는 친구 트뤼포가 먼저 데뷔해 찬사를 듣는 걸 견디다 못해 자기도 얼른 영화를 한 편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가 누벨 바그의 대표작이자 여전히 젊은 감독과 영화광들이 참고하고 또 참고하는 ‘네 멋대로 해라’다.

왕가위·홍상수 등 ‘누벨 바그’의 후예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1960). 누벨 바그의 대명사다. [사진 각 제작사]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누벨 바그’는 그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젊고 야심차고 거만하고 초조한 천재가 ‘네 멋대로 해라’를 찍는 과정을 마치 그 시절 영화처럼 담아낸다. ‘네 멋대로 해라’는 경찰을 죽이고 도주하던 범죄자와 파리에 사는 미국 여성의 파국에 이르는 사랑을 그리는 영화다. 이런 시놉시스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장 뤽 고다르는 이전 영화들이 하지 않던 모든 기법을 동원해 영화를 만들었다. 정해진 시나리오는 없었다. 그날그날 각본을 썼다. 카메라가 마구 흔들리는 핸드헬드 기법을 썼다. 종종 배우들은 카메라를 똑바로 보고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고다르는 ‘점프컷’이라는 걸 거의 창조했다. 등장인물의 위치나 행동이 전혀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는 편집 방식이 바로 점프컷이다. 자, 여러분은 이쯤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계실 것이다. ‘그런 건 이미 다 요즘 영화나 뮤직비디오에서 지겹게 볼 수 있는데?’ 그렇다. 현대 영화에 쓰이는 대부분의 기법이 바로 ‘네 멋대로 해라’에서 시작됐다.

왕가위를 한 번 생각해 보시라. 그는 사실 장 뤽 고다르의 후예다. 편집은 마구 점프하고 튄다. 내레이션이 마구 삽입된다. 배우들에게 정확한 각본이 주어지는 일도 없다. 핸드헬드 때문에 관객은 종종 머리가 아프다. 심지어 왕가위는 촬영장에서도 인터뷰에서도 고다르처럼 항상 선글라스를 낀다.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가 없었다면 우리는 왕가위의 ‘중경삼림’(1994)과 ‘해피 투게더’(1997)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현대적인 영화 자체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홍상수 역시 누벨 바그의 후예다. 소시민들의 별것 없는 일상과 연애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 나아가는 홍상수의 영화는 에릭 로메르라는 누벨 바그 대가의 세계에 큰 빚을 지고 있다. 프랑스 비평가들이 그를 ‘한국의 에릭 로메르’라고 부르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영화 ‘누벨 바그’를 통해 우리가 지금 즐기는 가장 종합적인 예술이 하나의 시대를 접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현장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모든 혁명이 그렇듯이 사실 다 별거 아니었다. 고다르와 젊은 스태프들은 그냥 남들이 하지 않던 걸 해보고 싶었다. 나이 든 어르신들이 하던 것과 좀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그들은 현장에서 싸우고 욕하며 ‘이딴 게 영화가 되기나 할까’라는 의문으로 하루하루 촬영을 해낸다. 그들이 만드는 무언가가 영화의 역사를 통째로 바꿀 거라는 기대는 전혀 없이 말이다. 영화 ‘누벨 바그’는 그냥 그 순간들을 새롭게 상상해 담아낸다. 지나칠 정도로 귀여운 방식으로 말이다. 지금 한국 극장가에는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도 상영 중이다. 나는 그놈의 누벨 바그가 뭔지도 모르던 독자 여러분이 이 재미있는 사건을 목격하시길 바란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누벨 바그’를 본 후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를 보면 딱이다. 영화 역사의 반세기가 눈앞에서 하나가 되는 기적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네 멋대로 보라.

김도훈 영화평론가, 작가, 칼럼니스트. 영화 주간지 〈씨네21〉 기자, 온라인 미디어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지냈다.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 합시다』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낯선 사람』 『나의 충동구매 연대기』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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