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인터뷰] 안도현 시인 “AI시대, 온몸으로 글쓰는 순간 경험해야”
오늘 잠들기 전에 적설량을 적어 보낼게요/금방 녹아서 사라지는 것을 꿈이라고 하나요/꿈의 해변에서, 곱아서 오그라든 손을 펴서 눈발처럼 길게 쓸게요.


이른바 '연탄 시', '너에게 묻는다' 등으로 널리 알려진 안도현 시인이 지난해 말 신작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를 펴냈다. 5년 만에 발표한, 그의 12번째 시집이다. 안 시인은 지난 20일 수원 팔달문화센터를 찾아 신작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 새해 희망과 연대의 가치 등을 시민과 공유하기도 했다.
23일 중부일보와 만난 안도현 시인은 "유튜브 영상에 맞춤형 인공지능까지, 사실 시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 세상에 종이나 활자 양식으로 승부한다는 게 과거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어 "거꾸로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이 세상 거의 대부분의 시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시를 읽기 위해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 속에 내가 쓴 시들이 들어 있다"며 "종이를 넘기면서 시를 읽는 시대에서 이제는 스마트폰 속에서 시를 읽는 시대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1981년 등단해 올해로 46년의 시력(詩歷)을 쌓은 안도현 시인은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 발전이 독서의 방식, 혹은 독서라는 행위마저 대체해 버린 시대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소소한 풍경이나 평범한 사물에 관념을 투영하고, 대중의 사랑까지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에 안 시인은 '시인의 역할'로 답했다. 그는 "특별한 성찰 과정이 있다기보다 일상에서 일반인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이를 뒤집어서 보여주는, 발상의 전환을 하는 게 시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고, 모든 시인이 이를 위해 노력한다. 나는 가능한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려는 시적인 전략(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편안하고 따듯한 소재로 한국 서정시의 지평을 넓히기까지, 안 시인은 시대 변화를 위한 투쟁의 펜촉도 날카로이 세워왔다.
죄 많은 수업시간 생각난다/저 아름다운 폭도들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다/떼지어 몰려와 내 몸에도 반짝이는 비늘을 입혀주고 같이 헤엄치자고/먼 바다에도 한번 데려가 달라고/이 세상에 해방이 어디 따로 없음을 알겠다.

특히 등단 이후 1980년대 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하던 중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활동을 이유로 해직됐을 당시의 심경도 시에 고스란히 기록했다.
쫓겨난 교문 밖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습니다/그대의 하늘 쪽을 바라보는 동안 이 엽서에 퍼담을 수 없을 만큼 눈이 내렸습니다/보고 싶다는 말만 쓰려고 했습니다/눈 덮인 학교 운동장을 맨 먼저 발자국 찍으며 걸어갈 아이를 멀찍이 뒤에서 불러 보고 싶다는 말은 정말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안도현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중 '겨울 엽서')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이기적인 현대인에 대한 비판 의식이 깔린 시 '너에게 묻는다'도 담겨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 '너에게 묻는다')
안 시인은 "19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 그중에서도 글 쓰는 사람들은 당시의 민주화, 자유 글쓰기, 사회 변화와 변혁의 문제를 (글쓰기와)연결 지으려 고민했다. 내가 쓰는 시가 어떻게 하면 우리 사는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민주화도 그렇고 분단, 노동 현장의 문제들이 문학과 별개가 아니라는 생각을 열정적으로 할 때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에 비해 가장 최근 신작에는 이전과 같이 '작고 쓸모없는' 존재에 주목하면서도 사회적 무게감은 덜고, 작고한 어머니를 비롯한 개인적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담았다. 안 시인은 "현재의 세상은 내가 20대였을 때보다 훨씬 더 민주화됐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모순과 부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12·3비상계엄보다 더 한 암흑이 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 회초리 같은 시를 쓰던 우리의 문학사가 있고,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시인들은 자신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6년에는 시뿐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도 썼다. 안 시인은 "당시만 해도 국내에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분야가 없었다. 어린 아이가 읽는 동화와 어른이 읽는 소설을 결합한 형식인데, '어린 왕자'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 (연어를)쓰게 됐다"며 "운이 좋아 책이 해외로도 많이 나갔다"고 했다.

시대는 빠르게 변했지만, 그럴수록 시 쓰기에 대한 안 시인의 집념과 사유는 깊어지고 있다.
안 시인은 "(신춘문예)심사를 하다 보면 심사위원들도 AI(인공지능)가 쓴 건지 인간이 쓴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AI라는 상상하지 못했던 신기술을 활용하려고 해야지, 기술에 기대서 윤리나 도덕의 문제가 발생하면 안 된다. 이 문제가 해결돼야만 AI와 인간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가 문학을 처음 쓴 시기만 하더라도 원고지에 글을 썼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접어드니 컴퓨터가 나와서 키보드로 글을 쳤는데, 40년 넘게 글을 쓴 지금 보면 펜을 한자 한자 눌러서 썼던 글에 훨씬 더 많은 애정이 간다"며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고 반추하는 양식이 아니다. '혼신을 다한다'는 표현이 있는데 글을 쓸 때도 자기 온몸으로 쓰는, 그런 순간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담=정진욱 사회부장
정리=강현수기자
사진=김경민기자안도현 시인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당선되며 등단,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비롯해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북항',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쓸데없이 눈부시는 게 세상에는 있어요'까지 12권의 시집을 냈다.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대상, 노작문학상, 이수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리중학교 국어교사,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등으로 일했다. 196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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