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칼럼] 희망을 승인하시겠습니까?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회의실 어딘가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고 전해집니다.
Surrogate ≠ Clinical
(대리지표는 임상적 효과가 아니다.)
이 문장은 단순한 경고 문구가 아닙니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아두카누맙을 둘러싼 논쟁, 더 정확히 말하면 현대 의학이 어디까지를 '치료'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압축한 문장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FDA 승인은 하나의 상징이기에 2021년 6월 7일, FDA가 바이오젠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아두카누맙(Aducanumab, 상품명 Aduhelm)을 승인했을 때, 전 세계는 이 문장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약은 효과가 있다."
"이제 믿고 써도 된다."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그리고 사회에서도 FDA 승인은 일종의 종결 문장처럼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논쟁이 끝났다는 신호, 결정이 내려졌다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아두카누맙에서 FDA가 사용한 언어는 달랐습니다. 이 약은 전통적인 승인 경로가 아니라 가속승인(Accelerated Approval)이라는 예외적인 절차를 통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가속승인은 원래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에서, 명확한 임상적 이득을 끝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을 때 사용되는 제도입니다. 즉, "환자가 실제로 좋아졌다는 결과를 모두 확인한 뒤 승인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상황에서 허용되는 일종의 비상구입니다.
다만 아무 때나 열리는 문은 아닙니다.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임상적 이득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대리지표(Surrogate Endpoint)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대리지표란 환자가 실제로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직접 측정하는 대신, 그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여겨지는 생물학적 지표의 변화를 통해 치료 효과를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예를 들어 혈압이 낮아지면 장기적으로 뇌졸중 위험이 줄어들 것으로 판단하거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떨어지면 심근경색 위험이 감소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논리입니다.
이 개념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례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백신과 치료제 승인 과정입니다. 당시 우리는 "이 백신을 맞으면 2~3년 뒤 사망률이 실제로 얼마나 줄어드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시간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대신 백신 접종 후 중화항체가 형성되는지, 바이러스 수치가 감소하는지 같은 생물학적 지표를 근거로 "임상적 이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긴급사용승인이나 가속승인을 내렸습니다.
아두카누맙의 경우, 그 대리지표는 아밀로이드 베타 플라크 감소였습니다. 즉, FDA는 이렇게 말한 셈입니다. "환자가 실제로 좋아졌다는 증거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밀로이드는 줄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밀로이드 감소가 임상적 이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 문장은 과학적으로는 매우 조심스럽고, 규제적으로는 계산된 문장입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큰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왜 FDA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것은 이 약의 임상시험이 남긴 '찜찜함' 때문입니다.
아두카누맙 논쟁의 핵심에는 언제나 임상시험 결과가 있습니다. 두 개의 3상 시험, EMERGE와 ENGAGE는 거의 같은 설계로 진행됐습니다. 같은 약, 같은 환자군, 같은 평가 지표인데 결과는 갈라졌습니다. 한쪽에서는 고용량 투여군에서 인지 저하 속도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늦춰졌다는 해석이 가능했고, 다른 쪽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은 환자를 직접 보는 임상의에게 매우 불편합니다. 의사들이 가장 다루기 어려워하는 상태는 "분명하지 않다"는 결론입니다. 효과가 없으면 쓰지 않으면 되고, 효과가 있으면 쓰면 됩니다. 그러나 "어쩌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은 진료실에서 거의 쓸 수 없는 언어입니다.
FDA는 이 애매함을 대리지표라는 우회로로 넘겼습니다. 그러나 임상가들은 그 우회로 끝에 무엇이 있는지 쉽게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의사가 환자와 가족을 마주 앉아 설명할 때, FDA의 문장은 그대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진료실에서는 훨씬 더 단순하고, 훨씬 더 직설적인 질문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 약을 맞으면, 엄마가 얼마나 좋아지나요?"
"아빠가 혼자 밥 드실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나요?"
"요양원에 가는 시점이 늦춰지나요?"
아두카누맙은 이 질문들에 명확하게 답하기 어려운 약이었습니다. 이 약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아밀로이드는 줄었습니다"라는 사실뿐입니다. 이 말은 진실이지만, 질문의 답은 아닙니다. 게다가 이 약은 단순히 주사를 맞고 끝나는 치료도 아니었습니다.
이 약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ARIA(Amyloid-Related Imaging Abnormalities)는 치료 과정에서 일부 환자의 뇌 MRI에서 관찰되는 일시적인 뇌부종이나 미세출혈 같은 영상 이상 소견을 뜻합니다. 대부분은 무증상이거나 경미하지만, 드물게 두통이나 혼동 같은 증상을 동반할 수 있어 정기적인 뇌 영상 검사로 미리 확인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즉, 이 치료는 단순한 '약 처방'이 아니라 관리 체계 전체를 요구했습니다. 의사는 약효뿐 아니라 위험, 비용, 생활의 변화까지 함께 설명해야 했습니다. 이 지점부터 치료는 의학적 판단을 넘어 윤리적 설명의 문제가 됩니다.
저 같은 완고한 임상가들에게 아두카누맙 논쟁이 특히 불편했던 이유는, 이 약이 희망의 언어로 포장됐기 때문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첫 발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이 말들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합니다. 희망은 설명이 불충분할수록 가장 쉽게 오해됩니다. 연간 수천만 원에 이르는 비용, 반복되는 검사, 부작용의 가능성. 이 모든 부담을 감당하는 것은 환자 개인이 아니라 가족 전체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게 됩니다. 효과의 크기보다 감당의 한계를 먼저 묻게 됩니다. 이때 치료는 더 이상 의학적 선택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바꾸는 선택이 됩니다. 지금까지 병은 비교적 공평하게 와서 공평하게 사람의 운명을 결정해 왔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생긴 것입니다.
제 주변에도 아두카누맙과 같은 '맙(mAb) 계열' 약제를 반대한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그 근저에는 과학의 기준이 있습니다.
"임상적 이득이 명확하지 않은 약을 승인하면, 앞으로 어떤 약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반면 찬성한 사람들은 환자의 시간을 말했습니다.
"이 병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기준이 완벽해질 때까지 환자는 사라집니다."
이 두 논리는 모두 옳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더 충돌합니다. 이 논쟁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위험을 사회가 감수할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아두카누맙의 실제 운명을 결정한 것은 FDA가 아니라 보험이었습니다. 미국 메디케어는 이 약을 일반 진료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데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 결정은 매우 현실적인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가능성만으로는 사회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현대 의학에서 치료는 승인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보험, 제도, 인프라가 함께 움직여야 비로소 치료가 됩니다. 아두카누맙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일부 희귀약 사용 사례가 보고되긴 했지만, 허가 신청은 철회됐고 약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약은 중요한 인식 변화를 남겼습니다.
첫째, 치매를 증상이 아니라 병리로 정의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점.
둘째, 치료 전 반드시 바이오마커 확인이 전제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점.
셋째, 약 하나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준비해야 하는 현실이 분명해졌다는 점입니다.
이 인식의 변화는 이후 등장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들을 바라보는 기준이 됐습니다. 한국의 치매 진료는 아두카누맙을 통해 미리 한 차례 흔들렸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두카누맙을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요? 아두카누맙은 성공한 약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약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치료라고 부를 것인가?
우리는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허용할 것인가?
우리는 희망에 얼마를 지불할 것인가?
이 질문들로 인해 알츠하이머병 치료는 더 이상 단순한 의학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아마도, 아두카누맙이 남긴 가장 큰 의미는 이 질문들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 현 용인효자병원 진료부장, 연세대학교 신경과 외래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동대학 석·박사 취득
2000년 세계적인 인명사전인 Marquis Who's Who 등재
2006년 대통령직속 산업의학 발달위원회 전문위원
저서 《프리온병, 가장 낯설고 가장 위험한 치매 이야기》, 《치매 부모님이 드시는 약 이야기》, 《담장 너머 치매》, 《우리 부모님의 이상한 행동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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