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로봇, 핵심은 '전력·부품' 밸류체인

고예인 기자 2026. 1. 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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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제품 ‘데모 경쟁’ 끝…센서·모터·배터리가 수익 좌우
공급계약·수율·원가 승부…부품업체가 먼저 웃는다
로봇 ‘두뇌’ AI칩·메모리, ‘심장’ 배터리 확보전 본격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현대차그룹

|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XR(확장현실)과 로봇, 휴머노이드 산업이 '미래 기술 쇼케이스'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수익 경쟁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와 제조 대기업들이 앞다퉈 시제품을 공개하며 시장 기대감을 키워왔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빠르게 냉정해지고 있다. 누가 먼저 공개했느냐보다 누가 안정적으로 납품하고 원가를 낮추며 물량을 키우느냐가 경쟁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빠르면 올해 XR·로봇·휴머노이드 시장의 무게중심이 완제품 중심에서 부품·공급망 중심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한다. 화려한 완제품은 산업의 얼굴이지만 실제 매출과 이익이 발생하는 구간은 센서·카메라 모듈, 모터·감속기·구동기, 배터리, 전력관리 부품, AI 칩·메모리 등 핵심 부품 밸류체인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 휴머노이드 승패는 '구동·센싱'

휴머노이드는 단순한 로봇의 확장판이 아니다. 사람 형태로 걷고 잡고 운반하고 회피하려면 다관절을 정밀하게 움직이는 구동계와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센싱 시스템, 이를 실시간으로 판단·제어하는 컴퓨팅까지 동시에 완성돼야 한다. 산업 생태계 관점에서 휴머노이드는 '완제품 산업'이 아니라 기계·전자·반도체가 결합된 시스템 산업에 가깝다. 이 때문에 상용화 국면에 들어갈수록 완제품 브랜드보다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먼저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휴머노이드의 상용화는 기술 시연보다 '품질 안정화'가 더 큰 관문이다. 동일한 구동 동작을 수천·수만 번 반복해도 고장이 나지 않아야 하고 센서와 카메라는 조명·환경 변화 속에서도 오작동 없이 데이터를 뽑아야 한다. 결국 완제품 경쟁의 마지막 승부처는 쇼룸이 아니라 공장과 품질 기준, 공급 계약서가 된다.

업계 관계자는 "휴머노이드는 한번 도는 데모보다 하루 수천 회 반복 작업에서 성능이 갈린다"며 "양산으로 가면 구조적으로 부품사가 먼저 웃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국내 부품 기업, 로봇·XR 공급망 진입 가속

국내 기업들도 '휴머노이드를 만들겠다'는 선언을 넘어 실제로 돈이 나는 밸류체인 구간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LG이노텍은 보스턴다이내믹스와 협약을 맺고 로봇의 '눈' 역할을 하는 비전 센싱 시스템(카메라·거리 인식 센서 등 로봇 시각 모듈)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LG이노텍이 휴머노이드 '아틀라스(Atlas)'에 탑재될 비전 센싱 모듈을 개발하고,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시각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소프트웨어를 맡는 구조다.

휴머노이드가 고도화될수록 카메라 모듈은 단순 촬영 부품을 넘어 인지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격상된다. 로봇이 사람 수준의 작업을 수행하려면 '고화질 촬영'보다 거리·속도·공간을 정확하게 감지하는 멀티 센싱 능력이 중요하다. 스마트폰 카메라에서 축적한 광학·모듈 역량이 로봇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전자부품 업체의 경쟁 무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XR 역시 플랫폼 경쟁 못지않게 하드웨어 원가 구조가 관건이다. XR 기기는 얼굴에 직접 착용하는 만큼 무게와 발열, 배터리 지속시간이 사용자 경험을 좌우한다. 디스플레이·광학계·방열·전력관리 부품의 조합을 최적화하지 못하면 기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대중화가 어렵다. 콘텐츠 생태계가 중요하더라도 제조 단가를 낮추면서 품질을 끌어올리는 부품 공급망이 완성돼야 시장이 열린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XR이 성장할수록 스마트폰처럼 핵심 부품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될 것으로 본다. 디스플레이와 광학 부품뿐 아니라 고집적 기판·방열 소재·정밀 조립 등 제조 역량이 요구되면서 국내 전자부품 기업이 '제조 스케일'과 '정밀 공정'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구간이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AI는 로봇의 두뇌, 배터리는 심장"…전력·반도체로 번지는 경쟁

XR·휴머노이드 경쟁이 부품 중심으로 내려갈수록 전력과 반도체 밸류체인으로의 확장은 더 빨라진다. 휴머노이드는 이동형 플랫폼인 만큼 데이터센터처럼 무제한 전력을 쓸 수 없다. 제한된 배터리 용량 안에서 최대 성능을 내야 하므로 고효율 전력 설계와 배터리 안정성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한다. 모터 구동을 위한 인버터, 전력관리 IC(PMIC) 등 전력 설계가 상용화의 병목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흐름에 맞춰 국내 배터리 업계도 로보틱스 시장을 차세대 먹거리로 보고 있다. 삼성SDI는 현대차·기아와 로봇 전용 배터리 공동 개발에 나서며 서비스 로봇에 적용할 고성능 배터리를 추진하고 있다. 로봇용 배터리는 공간·무게 제약이 크고 고출력·장수명 요구가 강해 단순 양산보다 고부가가치 경쟁이 가능하다는게 업계 판단이다.

반도체 생태계에서도 '로봇 시대의 인프라 부품'이 주목받는다. 삼성전기는 AI 확산에 따라 고성능 반도체에 들어가는 FC-BGA(고성능 반도체용 패키지 기판)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관련 사업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로봇과 XR이 엣지 단말로 진화하더라도 학습·관제·운영은 결국 데이터센터 AI 인프라와 연결될 수밖에 없고 이는 GPU·서버용 고성능 칩과 패키징 수요 확대를 동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가 보는 XR·로봇·휴머노이드 시장의 다음 단계는 명확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데모 경쟁의 시대가 끝나고 양산 경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승패는 발표 무대가 아니라 생산라인과 공급계약에서 갈릴 가능성이 커졌으며 기술 산업에서 최종 승자는 '가장 먼저 만든 기업'이 아니라 '가장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업'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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