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토박이를 만나다

심규호 2026. 1. 2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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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 영화 안내판.

겨울밤이 깊었다. 당장이라도 큰 눈이 내릴 듯 하늘은 검은 회색빛, 싸락눈이 매서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불빛 환한 입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토박이местный』를 보기 위함이었다. 

지난 21일 늦은 7시. 이미 가득 찬 객석에서 더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첫 화면은 흥미롭게도 271명의 이름이 적힌 '사할린달력 보내기 후원자 명단'이었다. 개인당 1만원씩 모으자고 한 것이 1200여만원이나 되었으니 후원의 너비와 깊이가 만만치 않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남사할린)의 젊은 영화감독 안톤 도카와 세르게이 하 프로듀서가 제작한 영화 토박이를 한국에서 상영하자는 이야기가 오갔고, 그 시작을 제주에서 하게 되었다. 달력 제작과 배송 외에 남은 돈 490여만원은 사할린한인연합회 회장이자 제주의 며느리인 고영순(작고한 남편의 이름은 고운용)에게 전달되었다. 
세르게이 하 프로듀서(오른쪽)와 필자(중앙), 안톤 도카 영화감독(왼쪽).
영화는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사할린 한인들의 역사를 담았다. 그들이 왜 고향을 떠나 이름조차 낯선 남화태南樺太(남사할린)에 가게 되었는지, 어쩌다 국적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무국적을 거쳐 다시 러시아로 바뀌게 되었는지, 마찬가지로 그들의 상용어가 조선말에서 일본말로 그리고 다시 러시아말로 바뀌게 되었는지 영상과 사할린 출신 한인韓人 및 한인 연구자 36명의 발언을 통해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사할린뿐만 아니라 한국, 러시아 소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이어졌고, 시야는 사할린 곳곳을 헤매이다 한국, 일본, 소련,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로 확대되었다. 
기부금 전달. 영화 상영을 가능케 한 양성완 이사장과 고영순 사할린한인연합회 회장.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던 해에 필자는 이렇게 썼다. 

1945년 광복이 되어 온 나라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을 때, 사할린의 한인들 역시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기쁨을 만끽할 충분한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제 해방이 되어 번듯한 독립국가가 생겼으니 꿈에도 그리던 고향 땅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야 시간문제 아니겠는가? 패망한 나라 일본 사람들이 줄줄이 귀국선을 타고 있을 때 한인들은 곧 자신들을 데려갈 배를 기다리기 위해 코프샤코프 일명 망향의 동산에 올랐다. 그러나 사할린의 한인들을 태우고 갈 배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남은 것은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주장하던 일본의 외면과 조국의 무관심에 따른 무국적자 신세였다. 일본이 차지하고 있던 사할린 남부까지 독차지하게 된 소련은 한인들에게 소련 국적을 강요했지만, "혹시라도 적성국가의 국민이 되면 고향(남한: 주로 경상도 사람들이 많다)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끝내 무국적자로 남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1890년 사할린을 방문한 안톤 체호프는 그곳을 "러시아에서 가장 비참한 땅"이라고 말했다. 그 저주받은 땅에 한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39년,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는 꼬임에 빠진 까닭이었다. 이후 사할린의 상황이 입소문을 타고 번지면서 더 이상 아무도 모집에 응하지 않자 일제는 1942년 관에서 알선 형식으로, 그리고 1944년에는 무차별 강제 징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1만여 명은 사할린에서 다시 일본 내지로 이중 징용을 당해,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가입했다고 자랑하는 근대건축물, 이른바 군함도까지 끌려갔다. 아직까지 생사를 모르는 이들이 수천 명. 1945년 일본 패전 당시 사할린에 남은 한인은 대략 4만3천여 명이다. 

영화를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 

첫째, 사할린 동포 일부가 귀국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1992년 일본 적십자사가 돈을 대고, 한국 정부가 땅을 내놓아 정착촌을 만들어 1945년 이전 출생자만 영구 귀국할 수 있도록 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사할린 한인들의 갈망과 이에 따른 끝없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고마운 이는 '사할린 동포의 우편배달부'라는 애칭이 붙은 박노학 선생이다. 사할린 출신으로 일본에 거주했던 그는 사할린 동포가 고향에 보내는 편지를 받아 한국 고향으로 보내는 역할을 맡았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그의 아들 박창규 선생 또한 그 일을 함께 했다. 그들 부자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한국과 러시아, 사할린을 잇는 사할린 이산가족 찾기를 KBS 주관 사할린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가능했던 것이다. 
사할린 동포의 우편배달부 박노학 선생.

둘째, 사할린 동포 3, 4세대는 한국어를 잘 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1945년 해방 전이나 해방 후에도 한인들은 한국어에 능숙했고, 자제들을 위해 조선어학교를 세우고, 우리말과 글을 가르쳤다. 그러는 사이에 일본은 가고, 러시아가 들어왔다. 아이들은 커서 고등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한국어를 사용하는 대학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한인들은 자발적으로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한국어교육 대신 러시아어교육을 선택했다. 한인들이 원치 않았던 현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셋째,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24회 서울 올림픽은 소련이 참가하여 전국에 방영됨으로써 사할린 한인들이 서울의 발전상을 목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 전까지 유일한 귀국선은 북한으로만 향했다. 북한으로 간 이들은 북송선을 탔던 재일동포와 마찬가지로 '잘못 왔다'고 느껴야만 했다. 1990년 한국과 소련이 수교하면서 비로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생겼고, 다시금 한국어 교육과 문화 활동이 시작되었다. 러시아 연방 문화 공로자인 나탈랴 에이디노바 교장이 세운 에트노스 아동예술학교에 1995년 한민족문화과가 생겨 한인 아이들이 우리 문화를 배우게 된 것이 한 예이다. 
1995년 설립된 에트노스 아동예술학교 한민족문화과 학생들.

넷째, 현재 안산과 김포에 사할린에서 귀국한 이들이 거주하고 있다. 동포 1세는 거의 돌아가시고, 대부분 2세 분들이다. 이젠 이분들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이다. 그들의 자식과 손주들은 지금도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다. 그리운 고향땅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그들은 또 한 번 가족 간의 생이별을 겪어야만 했다. 그저 아이러니라고 말할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직항이 있었으나 지금은 러시아로 가는 비행기가 없어 중국을 거쳐 가야만 한다. 꼬박 하루가 걸리는 여정이니 노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 직항이 생기면 가장 좋겠고, 만약 지속된다면 1년에 한두 번 전세기라도 띄우는 것은 어떨까?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 영화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객석에서 누군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지금까지 잊고 있었습니다." 

사할린 한인, 재일동포, 중앙아시아 고려인, 중국 조선족 등등. 우리는 잊고 살았지 않았나? 오해하거나 애써 무관심하고, 심지어 조선족의 경우처럼 혐오하지 않았나? 퍽퍽한 우리네 삶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세상은 거대한 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쪽이 끊어지면 다른 한 쪽도 그리된다. 우리 동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까닭에 이번 영화 「토박이」는 여러 가지를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

돌아오는 길 여전히 밤은 어둡고 바람이 휘몰아쳤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우리 함께 있음을 느꼈음으로.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별꼴학교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문화답사기』,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