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힐링트레킹 ] ② 트레킹과 등산의 뜻과 차이점

조태봉 작가 2026. 1. 2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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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의 트레킹 문화와 산수유람
등반 : 전문 장비를 가지고 바위를 오르는 행위(climbing)

[<사람과 산>  조태봉  작가]    조선시대의 트레킹은 '산수유람(山水遊覽)' 혹은 '유산(遊山)'이라는 형태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대부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유행이라는 표현보다는 일생일대의 숙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시대의 산수유람은 시간과 돈 그리고 위험성이 뒤따르는 힘든 일이었으며, 그 힘든 만큼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도로 개념이 부족했던 탓에 여행길은 험했고, 산길은 짐승들의 등장으로 더욱 험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당시 사대부들의 사상을 지배했던 유교라는 학문에는 자연숭배에 관한 정의들이 깊은 철학적 수준으로 존재하였기에 그 유람의 정신적 가치는 심오한 부분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자연숭배에 대한 철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사대부들은 오랫동안 준비하여 평생의 숙원인 먼 유람을 떠났고, 산에 오르는 것을 정신 수양의 한가지로 생각하며 위험을 무릅쓰면서 험한 산에 올랐다. 그들이 남긴 '산수유람기'나 '유산기'는 그들의 유람이나 산행을 기록으로 남긴 책들인데 현재 600여 편이남아있다.

유산기에 나타나는 선인들의 산행은 정상 정복에 전부를 걸지 않았다. 산행을 산꼭대기로 데려다주는 통쾌한 행위로 인식하는 대신, 산 자체와 교감하는 겸허한 인간 활동으로 여겼다. 다시 말해서 조선의 산행은 등산이 아니라 입산(入山)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산을 정복이나 건강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 게 아니라, 산 자체와 교감하고 동화하는 혼연일체의 사유로 산을 즐겼다(박원식, 2024). 금강산을 오른 홍인우는 금강산 유산기(유금강록)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한다. 높은 곳에 오르면 '멀리 가는 사람은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라'라는 뜻을 알게 된다.

또 물을 보면 '만물이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도다'라고 하신 공자의 오묘한 뜻을 알 수 있다. 산천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중도에 포기하거나 스스로 선을 그어 두고 나아가지 않는 우유부단한 성격을 상기시키게 된다. 또 한편으로 는 '하나를 완성한 후에 하나씩 나아가라'라는 가르침에 힘쓰게 된다. 여행이 어찌 명승지를 탐방하고 유람을 즐기는 데만 목적이있겠는가? 도덕과 지혜를 체득하고 사물의 이치를 궁리하는 데도 역시 일조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남긴 여행 기록에 관한 책들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당시의 '산수유람' 혹은 '유산'이라는 말뜻은 지금의 트레킹과 일치한다. 오히려 예전의 그 용어들은 지금의 '등산(登山)'이나 '등반(登攀)' 혹은 '산행(山行)'이라는 용어들보다도 지금의 트레킹(글로벌적인)과 더욱 일치하거나 깊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쓰인 ' 유(遊)'는 '떠돌다' 혹은 '즐기다'라는 뜻이며, '유람(遊覽)'은 그 '유(떠돌다)'라는 뜻에 '보다', '관람하다'의 뜻이 덧붙여진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한다'라는 뜻이다. '유산'의 경우도 말뜻을 풀어보면 '산을 떠돌다' 혹은 '산을 관람한다'라는 뜻이 된다. 이와 비교할 때, 지금의 '등산' '등반' '산행'이라는 단어를 풀어 보면 대체적으로 '오르다'라 는 뜻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을 오른다' 혹은 '바위를 오른다'의 뜻이다. 그나마 '산행'은 '산을 오른다'라는 뜻과 '산을 유람한다'의 복합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에 조선시대의 '유산(遊山)'과 유사하게 들린다.

지금 이 시대에 트레킹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쓰이는 '등산' '등반' '산악회'라는 용어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등반가(산악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단어들이다. 그 당시 산에서 필요한 것은 알피니즘(alpinism)보다는일본 제국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공격적이거나성과 중심의 목적성이었다.(主: 알피니즘; alpinism: 유네스코에서 정의하는 알피니즘은 산의 바위나 얼음 같은 지형을 통해 산의 정상에 오르는 행위를 말하며, 현대에는 그 오르는 기술보다도 산 혹은 자연을 향하는 과정에 대한 심미적인 사유와 태도를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당시 일본인들은 한국 땅에 대한 토지조사사업과 한국인들을 일본 황국 신민으로 연성하기 위한 현대적인 등산 기술이 필요했고, 서구 등산 기술을 배운 일본인 철도국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조선산악회(1931~1945)를 만든 것이다.

'등산이나 '등반'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에게서 그 기술을 배우면서 접한 일본식 단어들이다. 일본인들은 스위스 인근의 유럽 인들에게서 고산등반(마운틴니어링:mountaineering)기술을 배웠고, 그 기술들에서 핵심 기술인 클라이밍(암벽등반:climbing)이라는 용어를 일본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일본식 용어로 '등반(혹은 등산)'이라고 했다.

그 당시 조선산악회 소속의 일본인들이나 한국인들이 탐독하던 대표적인 등반 기술 서적은 영국인이 지은 '마운틴 크래프트; Montain Craft(1920년)'의 일본 번역본 '등산의 감독과 지도; 登山の 監督と指導(1932)'와 일본인 저서 '바위와 빙설의 등반기술; 岩と氷 雪への登攀技術(1939년)'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산악회'라는 단어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산악회(朝鮮山岳会)'에서 비롯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등산' '등반' '산악회'라는 용어들이 지금도 한국에서 는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에 의해서 전수된 등반기술에 대하여 민족적인 잣대를 들이대거나, 훌륭한 알피니즘을 간직한 등반가들을 흠집 내려는 게 아니다.

단지 그 시대의 공격적이거나 성과 위주의 등반이나 등산에 관한 태도 들이 지금까지 우리 트레커들의 마음속에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그것들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트레킹에 분명히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중에 '등산'이라는 단어는 지금도 전문 등산(mountaineering, climbing)을 하는 산악인이든,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산에 올라가는 트레커들이든 지금 한국에서 가장 많이 애용하는 단어다.

이러한 현상은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산에 대한 공격적이거나 정상 중심의 목적성이 지금까지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이러한 의구심은 현재 우리의 트레킹 문화에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힐링트레킹 ㅣ 트레킹과 등산의 뜻과 차이점 -  ⓷에서 이어집니다. ]

글.사진  조태봉 작가│대학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했으며 한국 최초의 트레킹 여행사를 23년간 운영했다.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국내외 트레킹을 경험했고, 명상에 심취하여 마음챙김명상국제지도자 Level 1(미국 브라운대학 명상지도자 등재) 자격을 취득했다. 2025년 집필한 『트레킹의 원리』는 서울대 이환종 명예교수와 조태봉의 공저이며 트레킹에 관한 기술 인문 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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