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정신과 의사가 첫 며느리 맞자마자 시킨 교육은?...이근후 박사의 '재미있게 늙는 법'

조태성 2026. 1. 2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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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로 하자면 한국 정신의학계의 '레전드'다.

정신과 의사 이근후 박사가 쓴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무려 40만 부나 팔려나갔다.

그러고보면 이근후 박사의 삶 자체가 재미이기도 하다.

이근후 박사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을, 조금은 느슨하게 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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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로 하자면 한국 정신의학계의 '레전드'다. 1960~70년대 교도소처럼 폐쇄형이었던 정신과병동을 개방형으로 바꿨다. 정신과 환자의 치료를 위해 사이코 드라마 형식의 치료법도 도입했다. 한국정신치료학회도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여러 업적들을 쭉 나열하면, 꽤 평탄하고 성공적인 인생이었다 할 만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주어진 인생을, 삶을 견뎌내려다 보니 그래서 뭐라도 재미있는 걸 찾으려다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이라 그런다.

되돌아보면 그렇다. 피끓던 20대 때 4·19 데모 하느라 5·16 뒤에 옥살이를 하고 나오니 의대생이라지만 딱히 갈만한 곳이 없었다. 애써 구직 편지를 써서 얻은 직장이 국립정신병원. '정신과 의사도 정신병자 아니냐'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정신과에 대한 이해 자체가 크게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대학병원도 아닌 국립병원으로 갔으니 나중에 의사로 자리 잡기도 애매하다 그랬다.

삶은 견뎌 낼 재미를 찾는 과정

그런데 그게 되레 도움이 됐다. 국립병원이다 보니 우리나라의 정책과 행정, 해외 정책과 사례를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 것. 이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 개방형 병동 등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우려와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상담하느라 정신과 환자들의 끝없는 넋두리에 지쳐가던 자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뭔가 재미난 일을 벌여야 했다. 쌓은 업적에 비해 그 뒤에 숨은 이유는 꽤 단순(?)했던 셈이다.

이런 태도가 글에 투영돼서 였을까. 정신과 의사 이근후 박사가 쓴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무려 40만 부나 팔려나갔다. '성공했다고 잔소리 늘어놓는 꼰대 할아버지'가 아니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재미있게 살기 위해 노력한 한 인간'이 담겨서다.

아흔 살 고령의 나이 때문에 시력을 잃은 지 제법 됐고 이런저런 병으로 이제는 병원에도 간간히 입원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이번에 또 다시 '오십부터는 단순하게 사는 게 좋다'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 또한 그래도 글 쓰는 '재미'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늙은이들이여 뭐가 됐던 재미를 찾으라. 늙어서 서럽다고 세상 욕하지 말고. 즐거워서 찾는 재미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해서라도 찾아야만 할 재미 말이다.

그러고보면 이근후 박사의 삶 자체가 재미이기도 하다. 등산을 하고, 산에 드나들다보니 석불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되고, 그러다 알게 된 네팔에 의료봉사를 하고, 한국전쟁 때 굶는 아이들을 거둔 어머니 덕분에 보육원 봉사도 한다. 또 제대로 된 의사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한 시간 덕분에 그림을 그리고 시 낭송회 모임을 열고 아내와 함께 가족아카데미아라는 연구모임도 운영하게 됐다. 영화연구동아리도 조직하고 76세 나이에 고려대 사이버대학 문화학과 최우등졸업생이 되기도 했다.

가족이 되레 비극의 씨앗임을 알라

거기다 이근후 박사는 두 아들, 두 딸 내외에다 손주까지 모두 13명이 한 집에 모여 산다. 부모의 요구로 시작된 게 아니다. 처음엔 맞벌이 부부인 자녀들의 육아 필요성 때문에 한데 모여 살게 됐다. 대신 규칙을 정했다. 가족 서로간은 철저히 분리한다. 각 가족 별 집 입구는 따로 냈다. 상대의 허락 혹은 초대가 없으면 서로의 공간은 절대 침범하지 않는다. 연락할 필요가 있을 때, 공동으로 의논해야 할 주제가 있을 때는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정신과 전문의 이근후 박사. 21세기북스 제공

이를 위한 이근후 박사 본인의 자세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첫 며느리 맞았을 때 제일 처음한 게 '거절 교육'이었단다. 차마 말 못하다가 관계가 틀어지고 속병 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다. 제 아무리 시아버지라 해도 아니다 싶으면 딱 잘라 아니라고 말하도록 시켰다. 설마, 하는 며느리에게 각인키느라 고생 좀 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입에 발린 말이 좋은게 아니란 걸 알아서 그랬을까. 도울 수 있을 땐 돕지만 안되는 건 안된다고 딱 잘라 거절한다. 어찌나 똑 부러지게 거절하는지, 혹여 옆에서 이 장면을 목격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며느리가 되가지고 시아버지에게 어떻게 저렇게 말하느냐'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단다. 하지만 이런 걸 서운해하기 시작하면 가족은 절대 한데 모여 살 수 없다. 안된다는 걸 안된다 할 뿐이라고, 서로서로 인정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랜 정신과 치료 경험 끝에 "가족이 되레 비극의 씨앗인 경우가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근후 박사라면,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남 다른 얘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야금야금, 차선의 힘으로 일하라

일단 스스로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 쓸데 없는 자기 비하,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그렇다고 '난 노년 우울증을 이렇게 극복했다'고 스스로 과대 평가할 것도 아니다. 원래 노년은 적당히 힘 빠지고 또 우울하기도 한 시기다.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쓸데 없는 열등감, 혹은 우월감에 젖을 이유가 없다. 정반대 같지만 열등감과 우월감은 쳇바퀴의 한 쌍이다.

아래 체크 리스트를 들고 스스로를 점검해봐야 한다.

노년을 맞는 자가 체크 리스트
1. 있는 그대로의 욕구를 받아들인다.
2. 내가 나인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3. 내 몸과 마음을 귀하게 여긴다.
4. 타인을 나처럼 소중히 대한다.
5. 건강 계획을 세운다.
6. 좋은 관계, 나쁜 관계의 원인을 생각해본다.
7. 내 감정을 잘 다스리기 위해 노력한다.
8.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한다.
9. 돈 관리를 깔끔하게 한다.

마냥 쉬는 건 안 좋다. 뭐라도 사회활동을 하는 게 모든 면에서 유익하다. 하지만 무조건 바깥에서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이제 여유 시간도 많아졌으니 예전에 못해 본 이것만은 반드시 해낼 것이라는 식으로 강박관념까지 가질 필요는 없다.

이근후 박사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을, 조금은 느슨하게 하라고 조언했다. 그걸 '야금야금' 그리고 '차선'이라 표현했다. 뭔가 어마어마한 일을 단 번에 해내는 게 아니라 ①별 볼일 없다 해도 내 마음이 가고 편안한 일을 ②무리가 없고 부담이 없는 수준에서 ③야금야금해야 오랫동안 즐기면서 할 수 있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반드시 해내는 게 아니라 차선의 정도로만 한다.

일하는 노년. 좋다. 그러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젊은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열정적이 아니라 쉬엄쉬엄하는게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노년의 '일'을 위해 미리 생각해둘 것들
1. 하고 싶은 일을 다양하게 생각하라.
2. 여럿이 어울리는사교적 일과 동시에 혼자 할 일도 찾으라.
3. 책임과 의무가 따라야 한다.
4. 가능하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한다.
5. 지나치게 열성적이어서 주변이 불편해 하면 안된다.
6. 무슨 일이든 나중엔 체력이 떨어진다는 걸 기억하라.
노인들, 징징대지 말라

최악은 징징대는 것이다. 늙으면 당연히 힘들고 어렵고 서럽다. 하지만 그건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특히 이근후 박사는 "우리 세대의 전쟁과 가난은 훈장이 아니다"라고 힘줘 강조했다. 전쟁과 가난은 "단지 우리 세대의 시대적 어려움"이었을 뿐이고, 요즘 아이들은 요즘 아이들대로 요즘 세대의 시대적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우리가 예전에 이랬다' '우리를 왜 알아주지 않느냐'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 멀쩡하게 잘 뚫려 있는 중부고속도로로 씽씽 신나게 달리는 아이들한테 굳이 문경새재가 좋다고 거기로 넘어가자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건강이 안좋아 잠시 입원한 이근후 박사와 이메일로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건강상태 때문에 인터뷰는 집필 등을 돕는 분의 도움을 받았다.

-새로 내신 책은 '50'을 키워드로 삼았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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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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