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의 바다 스토리 <20>] 배를 움직이는 힘, 선박 연료유

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 2026. 1. 2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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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시대 바다에서 항해는 바람을 이용했다. 선박에서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선박 연료유는 기관부 영역이다.

차가운 해수와 외기에 의해 선박 바닥이 냉각되면, 연료유는 점점 굳어간다. 선박 회사는 선박 연료유를 가장 싸게 구매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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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범선시대 바다에서 항해는 바람을 이용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배를 앞으로 밀어내는 힘은 바람이 아니라 연료가 됐다. 증기선 시대에는 석탄이었고, 디젤엔진이 보급된 이후 오늘날에는 화석연료인 중유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선박에서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선박 연료유는 기관부 영역이다. 항해사가 바다를 읽는 사람이라면, 기관사는 연료를 읽는 사람이다. 통상 항해 중에는 FO(Fuel Oil)를 쓰고, 선박이 입항할 때는 DO(Diesel Oil)를 사용한다. 출항을 앞두면 기관사는 FO와 DO가 각각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확인해 항해사에게 알린다. 화물량과 함께 연료 잔량 등 선박 출항 상태가 신속하게 본사로 보내진다. 통상 출항항에서 도착항까지 무리 없이 항해할 수 있을 정도의 연료를 적재하고 있어야 한다. 대형 상선의 경우 보통 1000t 정도가 실린다.

김인현 -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다량의 연료를 담기 위해서는 막대한 공간이 필요하다. 선박 뒷부분에 있는 기관실만으로는 이를 모두 수용할 수 없다. 그래서 선박 바닥 전체에 연료 탱크 공간을 마련한다. 배 밑바닥 곳곳이 사실상 거대한 연료 저장고가 된다.

겨울이 되면 문제가 생긴다. 차가운 해수와 외기에 의해 선박 바닥이 냉각되면, 연료유는 점점 굳어간다. 굳은 연료는 자연히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연료 탱크 안에는 열을 가하는 장치, 이른바 히팅 코일(철심)이 설치돼 있다. 열을 가해 연료를 데우면 비로소 이동할 상태가 된다. 바다에서 추진력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이런 보이지 않는 연료 관리가 한몫한다.

선박 회사는 선박 연료유를 가장 싸게 구매하려고 노력한다. 연료비가 선박 운항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통상 싱가포르에서 구매해 왔다.

그런데 지금, 이 익숙한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탈탄소라는 거대한 과제가 선박 연료 분야에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소와 암모니아를 사용하면 이론적으로는 완전한 탈탄소 연료가 된다. 그 중간 단계로 액화천연가스(LNG)와 메탄올이 거론된다. LNG는 영하 162도로 냉각해야 액화가 가능하다. 선박 연료로 사용하려면 극저온 저장 탱크와 복잡한 냉각 시스템이 필수다. 이는 단순히 연료만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선박 설계 전체를 다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암모니아는 연소 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세대 연료로 주목받는다. 그러나 독성이 강해 인체에 해롭고, 연소 특성이 불안정하며, 질소산화물 배출 문제도 남아 있다. 항만 저장 시설, 선원 안전과 사고 발생 시 책임 문제까지 고려하면 암모니아는 기술을 넘어 해사 안전, 해양 환경, 책임법 체계를 다시 짜야 하는 연료다.

메탄올도 인기를 얻고 있다. 문제는 메탄올의 열량이다. 메탄올은 기존 벙커시유보다 에너지밀도가 낮다. 같은 거리를 항해하려면 현재보다 약 두 배의 연료가 필요하다. 이는 저장 공간도 두 배, 연료비 부담도 두 배가 된다는 뜻이다. 화물 적재 공간이 줄어드는 건 필연이다.

선박 추진을 위한 연료의 변화는 언제나 시장구조를 바꿔 왔다. 연료유는 단순한 기름이 아니다. 그것은 선박의 추진력이자, 선박의 구조를 바꾸고, 조선 산업을 일으키며, 싱가포르처럼 항만의 흥망을 좌우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해사 안전, 해양 환경, 책임법 체계까지 다시 쓰게 하고 있다.

범선시대에는 바람을 읽었다. 디젤 시대에는 연료를 읽었다. 그리고 탈탄소 시대가 시작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탱크 안의 양만 읽어서는 안 된다. 어떤 연료를 선택할지, 그 연료가 어떤 위험과 비용과 책임을 함께 싣고 올지까지 읽어야 한다. 배를 움직이는 힘이 바뀌고 있다. 이제 기관실에서 읽어야 할 것은 연료유 잔량이 아니라, 다가오는 바다의 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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